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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이탈리아 경찰에 “전 세계 순례자들 위한 인내의 봉사에 감사”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8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창설 75주년을 맞은 바티칸 보안경찰 및 책임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만났다. 교황은 교황 자신을 비롯해 이탈리아 내 사도적 순방에 함께하는 교황의 협력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힘겨운 업무”에 감사를 표했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창욱

“성실, 전문성, 희생정신”으로 교황 및 교황의 협력자들의 안전 그리고 순례자들의 안전과 그들에게 봉사를 해준 데 대한 깊은 감사. 아울러 “다른 문화와 다른 지역 출신의 사람뿐 아니라 성직자들도 대해야 하는 의무를 실천하는 인내”에 대한 칭찬. 이 같은 매우 특별한 봉사에 임하는 경찰 조직의 창설 75주년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보안경찰 요원들과 책임자 및 그 가족들을 맞이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이나 이탈리아 내의 교구나 공동체를 방문할 때, 혹은 로마에서 이동하는 상황을 살피는 “힘겨운 업무”에 대한 감사였다.

가장 큰 가치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는 업무

바티칸 보안경찰의 업무는 “교황의 여정이 하느님 백성과 만나는 특수한 성격을 잃지 않도록 신중과 균형을 요구한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이어 바오로 6세 홀에 가족과 함께 모인 2500명의 바티칸 보안경찰 요원들과 책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의 업무는 가장 드높은 가치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는 일입니다. 인간적이고 영적인 가치 말입니다. 그 가치들은 여러분이 매일 받아들이고 증거해야 합니다.”

“종종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며 완수한 여러분의 노고가 생기 있는 그리스도인 신앙으로 고무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노고야말로 여러분의 가족이 여러분에게 기대했고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전하도록 부름 받은 가장 귀중한 영적 보화입니다.”

내무부 장관과 경찰청장의 인사

교황의 연설에 이어 프랑코 가브리엘리 경찰청장과 루치아나 라모르제세 내무장관의 인사말이 있었다. 루치아나 장관은 경찰이 맡은 이탈리아 국내에서의 교황의 보호 업무와 “가톨릭 신앙의 거룩한 장소에서 신실하게 삶을 펼쳐내는 순례에 대한” 경계 업무를 강조했다.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과 어려움에 처한” 시민들 곁에 있어야 할 경찰대원 중에서도 희생자가 생긴 것처럼 코로나19 대유행과 결부된 어려움도 떠올렸다. 아울러 루치아나 장관은 이 어려운 시기에 보여준 증거와 “보잘것없는 이들에 대한 연대와 민족 간 협력의 이유를 재발견하도록” 초대한 것에 대해 교황에게도 감사했다. 또한 유럽에서 온 기금으로 이탈리아가 “지리적 변방이나 영혼의 변방의 불편함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교황청과 이탈리아 간 “깊은 유대”의 흔적

교황은 “바티칸 시국” 보안경찰의 업무의 기원이 지난 1929년 라테라노 조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교황청과 이탈리아 간 존재하는 깊은 유대의 흔적 속에서” 75년 동안 전개됐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라테라노 조약이 사실 “바티칸 시국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이탈리아 정부의 감독 아래 순례자들과 관광객의 자유로운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성 베드로 광장에 대한 특별 자치권을 보장했다”고 말했다. 

1945년 3월 시작한 업무

교황은 “정치 및 사회 권력이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1945년 3월 바티칸 보안경찰대가 탄생했던 상황이 “국가 비상사태와 불안정한 시대”였다고 말했다. 당시 이바노에 보노미 총리가 직접 이끌었던 내무부는 “성 베드로” 공공보안 특수부를 세웠고, 이탈리아 경찰 병력이 오랫동안 성 베드로 광장과 바티칸 인근 지역 내에서 전개했던 업무를 강화하여 더 효율적으로 이끌었다.

독일 점령 기간의 신앙생활 

교황은 1943년 9월부터 1944년 6월 4일까지 독일 군대가 로마를 점령한 9개월의 힘겨웠던 기억도 언급했다. 사실 “독일군 편에서는 교황과 바티칸 시국의 주권과 중립성을 존중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점령 기간 내내 “성 베드로 광장에 그어진 이탈리아와 바티칸 시국 간의 경계선은 긴장과 두려움의 장소”가 됐다. “신자들은 기도하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쉽게 들어갈 수 없었고, 많은 경우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로마 탈환 후 초기 

로마 탈환 후 “전쟁은 양심에는 깊은 상처를, 거리에는 잔해를, 가정에는 가난과 고통을” 남겼다. 하지만 로마인들, 그리고 로마 시내에 올 수 있었던 순례자들은 “시민들의 수호자(defensor civitatis)”로 선포된 비오 12세 교황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라도, 성 베드로 대성전에 갈수록 더 많이 몰려왔다”고 교황은 떠올렸다. 이 같이 바티칸 내 새로운 보안경찰이 창설돼 수많은 순례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돌보게 됐다. 이들은 교황의 안전과 공공질서를 담당하는 바티칸 기관인 교황청 스위스 근위대 및 바티칸 시국 국가 헌병대와 협력해 “이탈리아나 교황청에 중요한 봉사 업무”를 수행했다.

이탈리아 내 교황의 방문 동안 신중한 경계임무

교황은 바티칸에서 일하는 (이탈리아) 경찰의 명칭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며 국내외적 상황이나 보안의 요구사항도 점차 변화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안경찰 업무를 맡은 분들의 정신은 소중한 업적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저는 다른 문화와 다른 지역 출신의 사람들을 대하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실천하는 인내에 경탄하는 바입니다.” 

“로마에서 이동할 때와 이탈리아 내 교구나 공동체를 방문하는 동안 저를 동행하는 여러분의 임무에 대해서도 감사를 전합니다. (그 임무는) 교황의 여정이 하느님 백성과 만나는 특수한 성격을 잃지 않도록, 신중과 균형을 요구하는 힘겨운 업무입니다.”

수호자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바치는 기도

교황과의 만남은 이탈리아 국가 경찰의 수호자인 성 미카엘 대천사에게 바치는 기도로 마무리됐다. 교황은 연설 말미에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을 지켜주시도록” 동정 성모님께 다같이 기도를 바치자고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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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9월 2020, 2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