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은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세상 치유”: 3.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사랑의 덕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코로나19 대유행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운 상황과 세상을 지배하는 커다란 불평등을 드러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그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었으며, 파괴적인 전파의 과정에서 커다란 불평등과 차별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점점 가중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대응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 세계를 무릎 꿇게 만든, 작지만 끔직한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법을 찾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사회적 불의, 기회의 불평등, 소외 및 가장 약한 이들에 대한 보호의 결핍과 같은 커다란 바이러스를 치료해야 합니다. 이러한 이중적 치료 대응에 있어서,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결코 없어서는 안 될 것은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195항 참조). 이것은 하나의 정치적 선택이 아닙니다. 물론 이념적 선택도, 정당의 선택도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선택을 처음으로 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조금 전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시작하면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구절을 통해 이를 전해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풍요롭게 하시려고 당신 자신이 가난한 이가 되셨습니다. 우리 중 하나가 되셨습니다. 이 때문에 복음의 중심, 예수님 선포의 중심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셨지만,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사람들과 같아지셨습니다. 특권의 삶을 선택하지 않으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필리 2,6-7 참조). 종이 되시어 자신을 버리셨습니다. 겸손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으며,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그리스도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셨을 때, 하늘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마태 5,3; 루카 6,20; 「복음의 기쁨」, 197항 참조).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그리고 소외된 이들 가운데 계셨으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애로운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444항 참조). 그리고 그리스도는 당시의 율법에 따라 불결한 사람들로 간주됐던 병든 이들과 나병 환자들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자주 불결한 사람으로 취급 당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들과 가까이 계시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셨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가난한 이들, 보잘것없는 이들, 병든 이들, 감옥에 갇힌 이들, 소외된 이들, 잊혀진 이들,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에게 가까이 있는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알아볼 수 있습니다(마태 25,31-36; 『가톨릭교회 교리서』, 2443항 참조). 우리는 우리 모두가 심판 받게 될 유명한 기준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바로 마태오 복음 25장의 내용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정통성의 핵심 기준입니다(갈라 2,10; 「복음의 기쁨」, 195항 참조).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이러한 우선적 사랑이 소수를 위한 일이라고 잘못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전체의 사명이라고 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이 말씀하셨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Sollicitudo Rei Socialis), 42항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는 가난한 이들의 해방과 진보를 위한 하느님의 도구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87항).
믿음, 소망, 사랑은 필연적으로 우리를, 단순히 지원이나 원조의 차원을 넘어(「복음의 기쁨」, 198항 참조),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 대한 이러한 우선적 선택으로 재촉합니다.[1] 이는 실제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걷고,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잘 아는 가난한 이들을 통해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도록 해야 하고, 가난한 이들의 구원 체험과 지혜와 창의성에 우리 자신이 “전염”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복음의 기쁨」, 198항 참조).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은 서로를 풍요롭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하는 병든 사회 구조가 있다면, 우리는 병든 사회 구조를 치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복음의 기쁨」, 195항 참조). 여기에 이르게 하는 것은 세상 끝까지 다다르고, 변방까지 다다르고, 실존적 경계에 도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요한 13,1 참조)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변방을 중심에 둔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시고”, “당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유하게 하신(2코린 8,9)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삶의 중심을 둔다는 걸 의미합니다.[2]
우리 모두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으로 돌아가 경제 활동을 재개하길 원합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상”에 사회적 불의와 환경 파괴가 포함되어선 안 됩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하나의 위기입니다. 우리는 이 위기를 거치면서 예전과 동일하게 남을 수 없습니다. 위기를 잘 극복하든지 혹은 잘 극복하지 못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불의와 환경 파괴를 개선하기 위해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겐 뭔가 다른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발전을 위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원조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요. 저는 원조를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원조 활동은 중요합니다. 이탈리아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조직 가운데 하나인 자원봉사를 생각해 봅시다. 네, 원조가 그런 일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상을 해야 합니다. 우리를 원조 제공으로 이끄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합니다. 경제는 더 이상 치유책이 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경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관련 없는 이윤 창출과 같은 사회의 독이 되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204항 참조). 이러한 유형의 이윤은 일반인에게 이익이 되는 실질적 경제와 분리되어 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 109항 참조). 게다가 때로는 공동의 집(지구)에 가하는 피해에도 무관심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윤리적-사회적 필요인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찬미받으소서」, 158항 참조)은 사람들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을 중심에 두는 경제를 생각하고 설계하라고 우리를 자극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한 사람들을 우선하면서 바이러스 치료를 계획하라고 권장합니다. 만약 가장 부유한 사람들에게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우선권이 주어진다면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만약 백신이 특정한 나라의 소유가 되고,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인 것이 되지 않는다면 매우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주시하고 있는 모든 경제 원조, 곧 대부분의 공적 자금이 소외된 이들을 포용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공동선이나 피조물의 보호에 기여하는 산업을 구제하는데 집중하지 않는다면, 추문(스캔들)이 될 것입니다(「찬미받으소서」, 158항 참조). 이러한 것들은 어떤 산업을 도와줄 것인지를 택하기 위한 기준입니다. 곧, 소외된 사람들을 포용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공동선에 기여하고, 피조물의 보호에 기여하는 산업을 택하는 것입니다. 4가지 기준입니다.
빈곤층과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불공평한 이 세상에서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된다면, 우리는 그 세상을 바꿔야합니다. 완전하고 거룩한 사랑의 의사이시고, 육체적・ 사회적・영적 치유의 의사이신 예수님의 모범에 따라(요한 5,6-9 참조), 예수님이 행하신 치유처럼, 이제 우리도 작고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을 치유하고, 크고 가시적인 사회적 불의로 인한 전염병을 치유하기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저는 하느님 사랑에서 시작해 변방이 중심이 되고, 꼴찌의 자리가 첫째의 자리가 되길 제안합니다. 우리가 심판 받게 될 기준을 잊지 맙시다. 바로 마태오 복음 25장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전염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실천합시다. 희망의 닻을 내리고 믿음으로 마련된 이러한 구체적인 사랑에서 시작하면 보다 건강한 세상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는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현 세상의 필요에 부응하여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길 바랍니다.
[1] 교황청 신앙교리성, 「해방신학의 일부 측면에 관한 훈령」(1984년 8월 6일), 5장 참조.
[2] 베네딕토 16세 교황,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주교회의 제5차 정기 총회 개막식 연설」(2007년 5월 13일), 3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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