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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페두사 7주년 강론 “난민들이 수용소에서 겪는 지옥 같은 생활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7년 전인 2013년 7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역사적인 람페두사 섬 사목방문이 있었다. 교황은 람페두사 섬 방문 7주년을 맞아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은 오로지 희망만으로 지중해를 건너는 사람들이 리비아의 “난민수용소”에서 겪었던 일의 “정제된” 버전만 우리가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주민들의 얼굴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라고 촉구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오늘 전례의 화답송은 우리에게 주님의 얼굴을 끊임없이 찾도록 초대합니다. “언제나 주님 얼굴을 찾아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분의 얼굴을 찾아라”(시편 105(104)). 이 탐색은 자기 존재의 궁극적인 목표가 하느님과의 만남이라는 것을 이해한 신앙인의 삶의 근본적인 태도를 구성합니다.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우리 여정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이 여정은 진정한 약속의 땅, 천상 고향으로 향하는 탈출기입니다. 하느님의 얼굴은 우리의 목표이며, 우리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우리의 북극성입니다.

호세아 예언자가 제1독서에서 언급한 이스라엘 백성은(10,1-3.7-8.12 참조) 당시 약속의 땅을 보지 못하고 죄악의 사막을 방황하던 길 잃은 백성들이었습니다. 번영과 풍성한 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으며, 그들의 마음을 거짓과 불의로 가득 채웠습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인 우리 또한 이러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웰빙의 문화는 우리 자신만 생각하도록 하며, 우리로 하여금 다른 이들의 울부짖음에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멋지지만 아무것도 아닌 비누거품 속에서 살도록 합니다. 그것들은 환상이며, 덧없고 공허한 망상에 빠져들게 합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 무관심의 세계화로 이끄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람페두사에서 한 강론, 2013.7.8.). 

호세아의 호소는 오늘 우리에게 회심에 대한 새로운 권유로, 주님의 얼굴을 보기 위해 우리의 눈을 주님께 향하라는 권유로 다가옵니다.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호세 10,12). 

하느님의 얼굴을 찾는 것은 주님과의 만남,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 주님의 커다란 사랑과의 만남, 구원하시는 그분의 권능과 만나려는 갈망에서 나옵니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열두 사도는(마태 10,1-7 참조)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들은 것처럼, 사도들의 눈을 바라보시고 그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셨습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얼굴을 보고,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의 이적들을 보았습니다. 은총과 구원의 시간인 주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에는 사명이 따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여라”(7절). 만남과 사명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이 개인적인 만남은 제3천년대의 제자들인 우리에게도 가능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찾고자 한다면, 하느님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만나게 하시는 가난한 이들과 병자들, 버림받은 이들과 외국인들의 얼굴 안에서 그분의 얼굴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만남은 사도들에게 맡겨진 동일한 사명을 우리가 위임받음으로 인해 우리에게도 은총과 구원의 시간이 됩니다. 

오늘은 저의 람페두사 섬 사목방문 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지난해 2월에 있었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Liberi dalla paura)”라는 주제로 열린 회의 참석자들에게 했던 말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합니다. “타인과의 만남 또한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와 만나길 원하시고, 도움을 바라시고, 배에서 내리길 요청하시면서 배고프고, 목마르고, 낯설고, 헐벗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우리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가 여전히 의문을 가지고 있다면, 여기에 주님의 명확한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좋고 나쁜 것 안에서 “너희가 해 준 모든 것 (…)”! 이 권고는 오늘 뜨거운 화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매일 우리가 하는 양심성찰의 기준점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리비아를 생각합니다. 리비아의 난민수용소와 그곳에서 행해지는 학대와 폭력의 피해자인 난민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이 가진 희망의 여정과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들, 그들에 대한 배척을 생각합니다. “너희가 해 준 모든 것은 (…)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저는 7년 전 그날을 기억합니다. 유럽의 남쪽에 위치한 그 섬을 기억합니다. (…) 몇몇 사람들이 람페두사에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는지에 대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저에게 통역해주는 통역사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끔찍했던 일들에 대해 자신의 언어로 저에게 말했고, 통역사는 통역을 잘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말하는 사람은 길게 말했지만, 통역사는 간단하게 통역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음, 이 사람의 언어는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긴 문장을 필요로 하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오후, 제가 숙소에 돌아왔을 때, 숙소 입구에 직원인 에티오피아 출신 자매님 한 분이 - 그분은 얼마전에 선종하셨습니다. 그분의 영혼의 안식을 빕니다 - 계셨습니다. 그 자매님은 람페두사에서 저와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언어를 알고 있었고, TV를 통해 우리의 대화를 들었습니다. 그 자매님은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에티오피아 통역사가 교황님께 통역한 것은 그 난민들이 겼었던 고문과 고통의 4분의 1도 안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통역사들이 저에게 전해준 것은 “정제된” 버전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이 최근 리비아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정제된 버전”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리비아 난민수용소에서 난민들이 겪고 있는 지옥 같은 생활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희망만으로 지중해를 건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계속 괴롭히고 있는 많은 불의로 인해 자신들의 땅에서 도망쳐 나올 수밖에 없는 모든 형제자매들 안에서, 우리가 당신 아드님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주민의 위로자(Solacium migrantium)이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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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7월 2020, 1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