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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게오르그 라칭거 몬시뇰과의 작별 인사

지난 7월 1일 96세로 선종한 게오르그 라칭거 몬시뇰의 장례미사가 레겐스부르크 주교좌성당에서 거행됐다. 지난 6월 18일 친형을 보기 위해 독일로 향하는 여정을 감수했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메시지를 보냈고,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가 장례 미사 중에 그 메시지를 대독하며 눈물을 흘렸다.

Amedeo Lomonaco / 번역 이정숙

“저의 형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이 순간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게오르그 라칭거(Georg Ratzinger) 몬시뇰의 장례미사. 깊은 슬픔에 빠진 게오르그 겐스바인(Georg Gänswein) 대주교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보낸 메시지를 대독하며 이 같이 운을 뗐다. 메시지에서 전임교황은 형을 기억하며 고(故) 게오르그 몬시뇰의 사제로서의 삶에 항상 음악이 동반됐다고 강조했다. 전임교황은 고인이 20년 넘게 거의 앞을 보지 못한 채 사제 생활을 이어갔다며, 음악가인 고인이 사교적이고 유머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아울러 전임교황은 무엇보다도 고인이 삶의 중심에 절제와 정직과 같은 가치를 지닌 하느님의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6월 22일 월요일 오전 독일에서 바티칸으로 돌아오기 전 형과의 만남이 영원한 작별 인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임교황은 “우리 둘 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다른 세상을 다스리시고, 우리에게 새로운 일치를 주실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전임교황은 끝으로 자신의 사랑하는 형 게오르그에게 그가 했던 것, 고통받았던 것, 자신에게 주었던 모든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레겐스부르크교구장 루돌프 보더홀처(Rudolf Voderholzer) 주교는 전임교황이 친형의 장례미사에 실시간 생중계를 통해 함께했다고 전했다. 

고 게오르그 라칭거 몬시뇰을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의 친형 게오르그 라칭거 몬시뇰의 선종에 대해 자신이 영적으로 그와 함께하고 있다는 서한을 보냈다. 지난 7월 2일 목요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에게 보낸 서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님은 사랑하는 친형 게오르그 몬시뇰의 선종 소식을 저에게 가장 먼저 알리는 섬세함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슬픈 때에 저의 진심 어린 애도와 영적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다시금 표명하는 바입니다.” “고인을 위한 저의 애도의 기도를 약속합니다. 생명의 주님께서 당신 자비의 은총 안에서 그분을 하늘의 고향으로 이끄시길 빕니다. 또한 그분에게 복음의 충실한 봉사들을 위해 준비한 상급을 베푸시길 청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또한 교황님을 위해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아버지를 부르며 그리스도인의 희망으로 힘입은 자애로운 천상의 위로를 청합니다. 희망과 평화의 원천이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있어 언제나 함께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식처럼, 또 형제처럼”이라는 의미있는 말로 서한을 끝맺었다. 

전임교황, 친형의 병문안 위한 독일 방문

두 형제의 우애는 항상 돈독했다. 두 라칭거 형제는 지난 1951년 6월 29일 프라이징 주교좌 성당에서 함께 사제품을 받았다. 지난 6월 18일 목요일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은 바티칸에 있는 자신의 숙소를 나와 병환 중에 있는 형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레겐스부르크에 방문했다. 전임교황의 독일 체류는 지난 6월 22일 월요일 바티칸 내 거처로 복귀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전임교황은 독일 여정 동안 친형의 병문안 외에도 가족과 관련된 소중한 장소를 방문할 수 있었다. 특히 지게트도르프(Ziegetsdorf)에 있는 부모님과 큰누이의 묘소를 찾았다. 또한 레겐스부르크 교외 펜틀링(Pentling) 소재 집에도 방문했는데, 이 집은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이 레겐스부르크 대학 교수로 재직할 당신 머물렀던 곳이다. 현재 이곳은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로 사용되고 있다. 

음악에 맞춰진 하느님을 위한 삶

게오르그 라칭거 몬시뇰은 1924년 1월 15일 독일 바이에른 주(州) 플레이스키르헨에서 태어났다. 11살 때 벌써 성당에서 오르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1935년 트라운슈타인 소신학교에 입학했으나, 1942년 나치 국가노동봉사단(RAD)의 일원으로 선발됐으며, 나중에는 나치 독일 국방군(Wehrmacht)에 강제징용돼 이탈리아 전선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1945년 3월 연합군의 포로로 붙잡혔는데, 석방되어 가족에게 돌아갈 때까지 몇 달 동안 나폴리 인근 포로수용소에서 지냈다. 그는 1947년 동생 요셉 라칭거(훗날 베네딕토 16세 교황)와 함께 뮌헨 두칼 게오르기아눔(Ducal Georgianum) 신학교에 입학했다. 이어 1951년 6월 29일 두 형제는 프라이징 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964년부터 1994년까지 30년 동안 레겐스부르크 주교좌성당 성가대인 “대성당의 참새들(Regensburger Domspatzen)”이라 불리는 소년합창단 단장을 역임했다. 그는 소년합창단을 이끌고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많은 공연을 했고, 도이치 그라모폰의 많은 음반 제작을 감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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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7월 2020,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