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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친밀, 정의, 자비, 그리고 기도의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8일 월요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탄생 백주년을 맞아 성 베드로 대성전 내 성인의 무덤이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하느님이 교회를 이끌도록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보내시어 당신 백성을 찾아 주셨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성인의 인품에 대한 세 가지 측면, 곧 기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친밀함, 자비와 분리할 수 없는 완전한 정의 개념을 강조했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우리가 화답송에서 노래했던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시편 149,4)라는 구절은 주님과 당신 백성의 상호관계를 노래한 후렴구이자 이스라엘 백성이 즐겨 되풀이했던 진리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상황이 좋지 않았던 순간에도 언제나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고, 그분이 이 사랑을 어떻게 드러내실지 기다려야 한다고 노래했습니다. 주님이 이러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사람인 예언자를 보내셨을 때, 하느님 백성의 반응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루카 7,16; 루카 1,68; 탈출 4,31 참조)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습니다.” 당신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군중도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똑같이 말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백 년 전 주님은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고, 한 사람을 보내시어 그를 주교로 삼으시고 교회를 이끌도록 준비하셨다고 말입니다. 이에 우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며 “주님은 당신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말을 되뇝니다. 주님이 당신 백성을 찾아주셨고, 한 목자를 보내셨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그런데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게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착한 목자의 “흔적”은 무엇입니까?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단지 세 가지만 언급해 봅시다. 예수회원들이 항상 문제를 언급하면서 (...) 세 가지를 말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 가지를 말해 보자면, ‘기도’,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친밀함’, 그리고 ‘정의에 대한 사랑’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늘) 기도했고 많이 기도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할 일도 많았고, 교회를 이끌기 위해 많은 일을 했던 분이 (...) 어떻게 많은 시간을 기도에 할애했을까요? 왜냐하면 그는 주교의 첫 번째 임무란 기도하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말한 것이 아니라 성 베드로 사도가 열 두 사도와 함께 부제들을 뽑으면서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교들은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 6,4 참조). 주교의 첫 번째 임무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를 잘 알았고, 이를 실천했습니다. 기도를 첫 번째 자리에 두는 주교의 모범입니다. 그는 주교가 저녁 양심성찰에서 이렇게 자문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오늘 나는 몇 시간 기도했는가?” (그분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흔적은 친밀한 사람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에게서 고립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만나러 다가갔고 온 세상을 여행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찾고, 발견하며, 가까이 다가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친밀함은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대하신 방법 중 하나입니다. 주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보아라, 나처럼 너와 가까이 계셔 주시는 하느님 같은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7 참조) 당신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친밀함은 훗날 예수님 안에서 더욱 밀접해지고 굳건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목자란 하느님 백성과 가까운 존재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다면 그는 (참된) 목자가 아닙니다. 한낱 우두머리이거나 관리자에 불과합니다. 그가 좋은 사람일지는 몰라도 목자는 아닙니다. 백성에게 가까이 있는 친밀함(이 필요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이러한 친밀함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멀리 있는 사람에게 가까이 있었습니다.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 가까이 있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세 번째 흔적은 ‘정의에 대한 사랑’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의란) 완전한 정의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정의를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회정의, 백성을 위한 정의, 전쟁을 멀리 몰아내는 정의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정의란) 완전한 정의였습니다! 이런 까닭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자비의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정의와 자비는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할 수 없으며,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의는 정의이고, 자비는 자비이지만,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다른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의와 자비의 사람에 대해 말할 때, 사람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도록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분이 어떻게 파우스티나 성녀에 대한 신심을 장려했는지 생각해 봅시다. 올해부터는 성녀의 전례 기념일(선택 기념일, memoria facoltativa)이 전 세계 교회에서 거행될 것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하느님의 정의가 자비의 모습, 자비의 태도를 갖추었다고 느꼈습니다. 이야말로 그분이 우리에게 남겨준 선물입니다. 곧, 정의로운 자비와 공정한 자비입니다.  * 편집주: 올해부터 성녀의 기념일(10월 5일)을 전 세계 교회에서 거행할 수 있다는 교령이 발표됐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특히 교회의 사목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기도의 은총, 가까이 다가감의 은총, ‘정의로운 자비’와 ‘자비로운 정의’의 은총을 베푸시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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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5월 2020, 2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