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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은 타인 향한 연민의 마음을 갖게 합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곤경에 빠진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순 제5주일 삼종기도에서 친구 라자로의 죽음을 전하는 요한 복음을 해설했다. 교황은 하느님의 사랑이 전능하고 우리 각자가 생명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강조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사순 제5주일 복음은 라자로의 부활에 대한 내용입니다(요한 11,1-45 참조). 라자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오빠였고, 예수님과 매우 친했습니다. 예수님이 베타니아에 당도했을 때, 라자로는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마르타는 스승을 맞이하러 달려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요한 11,21). 그러자 예수님이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 것이다”(요한 11,25). 예수님은 당신이 생명의 주인으로서, 죽은 이들에게도 생명을 줄 수 있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다음 마리아와 다른 사람들이 도착해 모두 눈물 흘리자, 예수님도 “마음이 북받치고 (...) 눈물을 흘리셨다”(요한 11,33.35 참조)고 복음은 전합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산란해지신 채, 무덤으로 가시어, 언제나 당신 말씀을 들어주시는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무덤을 열게 한 다음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그러자 라자로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요한 11,44) 바깥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생명이시고 생명을 주시지만 죽음의 드라마를 짊어지신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예수님은 친구 라자로의 죽음을 피하게 할 수 있으셨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때문에 받는 우리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짊어지길 원하셨고, 특히 죽음을 이기시는 하느님의 승리를 드러내길 원하셨습니다. 복음의 이 구절에서 우리는 인간의 믿음, 그리고 하느님과 하느님 사랑의 전능하심이 서로를 찾고 마침내 서로 조우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마치 두 개의 길과 같습니다. 곧, 인간의 믿음과 하느님 사랑의 전능하심이 서로 찾고 결국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마르타와 마리아의 절규에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부르짖는 우리의 절규에서 봅니다.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 하느님의 대답은 연설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하느님의 답변은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 믿음을 지녀라! 비록 죽음이 이긴 것처럼 보이더라도, 눈물 흘리는 가운데 계속 믿음을 지녀라. 너희 마음에서 돌을 치워라! 하느님의 말씀이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을 다시 가져가게 하여라.”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말씀을 되풀이하십니다. “돌을 치워라”(요한 11,39). 하느님은 무덤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게 아니라, 아름답고, 좋고, 기쁜 생명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다”(지혜 2,24)고 지혜서는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악마의 올가미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돌을 치우라고 부르심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위선으로 신앙을 살아가는 것은 죽음입니다. 타인을 파멸시키는 비난은 죽음입니다. 모욕과 중상모략은 죽음입니다. 가난한 이를 소외시키는 것은 죽음입니다. 주님은 마음에서 이러한 돌들을 치우라고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럴 때 생명은 다시 한 번 우리 주변에 꽃을 피울 겁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과 일치하는 사람은 생명과의 만남에 들어갑니다. 그리스도 없이, 혹은 그리스도를 벗어나면, 생명이 없을 뿐 아니라 죽음으로 다시 떨어집니다.

라자로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안에 완전히 스며든, 세례성사를 통해 믿는 이에게서 실현되는 다시 태어남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활동과 힘을 통해,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생명 안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됩니다. 곧, 생명을 위한 피조물,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피조물 말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삼으신 당신 아드님 예수님처럼 연민 넘치는 사람이 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우리 각자 시련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죽음에서 해방시키시고 생명의 승리를 만들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애틋함을 비추며 그들 가까이에 머물 수 있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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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3월 2020, 2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