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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느님과의 러브 스토리라는 걸 깨닫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6일 월요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신자들에게 “경배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느님과의 러브 스토리라는 것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번역 양서희 

오늘 복음(마태 2,1-12)에서 우리는 동방박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야기의 서두에서 동방박사들은 그들이 길을 떠나온 이유를 밝힙니다.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 경배는 그들이 떠나온 여정의 목적지이자 목표였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그들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했습니다(마태 2,11 참조). 우리가 경배하는 법을 잊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방향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께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복음은 동방박사들의 모습을 통해 경배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것에 대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먼저 헤로데 임금을 바라봅시다. 그는 경배라는 단어를 쓰지만, 오로지 동방박사들을 속이려는 의도로 사용합니다. 그는 동방박사들에게 아기를 찾으면 자신에게도 알려달라고 청합니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마태 2,8). 하지만 사실 헤로데는 자기 자신을 경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거짓말로 아기의 존재를 떨쳐버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헤로데의 이러한 모습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을 경배하는 법을 잊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경배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경배하는 법을 잊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은 우리 자신과 각자가 가진 능력을 확인하는 장이 되고 맙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경배하는 법을 모르고, 경배를 통해 기도하는 법도 모릅니다. 이것은 아주 무서운 위험입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그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복음의 관심과 우리 자신의 관심을 혼동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가 편리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종교적인 것들로 바꿔치기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웃을 섬기라는 하느님의 힘을 우리 자신을 섬기라는 세상의 힘과 혼동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헤로데 임금처럼 경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입니다. 그들은 매우 신중하게, 헤로데 임금에게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유다 베들레헴이라고 말합니다(마태 2,5 참조). 그들은 예언을 알고 있었고, 예언자들의 말을 정확하게 인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신학자들이었습니다. 훌륭했지요! 하지만 그들은 그곳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볼 부분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지식을 채우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가 한 걸음을 내딛지 않는다면, 우리가 이웃을 만나고 경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알 수 없습니다. 신학이나 사목 전략은, 우리가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아주 작은 의미, 혹은 아무런 의미도 드러내지 못합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우리도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은 똑똑하고 여행을 계획할 뿐 아니라, 경배를 위해 길을 떠나고 무릎을 꿇을 줄 알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경배를 하기 시작한다면, 그때 우리는 신앙이라는 것이 훌륭한 교리서 세트가 아니라,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살아계신 그분과의 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분의 모습 그대로를 보게 되는 일입니다. 경배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하느님과의 러브 스토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러브 스토리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좋은 생각들이 아니라 그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는 역량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삶의 중심에 두곤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신부로서 그분과의 사랑에 빠진 경배자가 되는 것이지요! 

새해를 시작하며, 신앙이 우리에게 경배하도록 한다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는 길에 놓인 유혹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경배하기 위해서는 아주 끈질긴 속박, 우리 자신의 노예가 되는 것에서 탈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경배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에 모시는 일입니다. 이는 모든 것을 그것들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돌려놓는 것, 무엇보다 하느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경배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획을 우리 각자의 시간이나 권리, 우리의 자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뜻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말씀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10). 너의 하느님이라는 말씀은, 경배하는 것이 ‘너’와 ‘하느님’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있음을 깨닫는 걸 뜻합니다. 그분과 자유롭게, 또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경배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그분께 내어드리고, 우리 삶 속에 그분께서 들어오시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분의 위로가 이 땅에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지요. 경배하는 것은 기도하기 위해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분의 친밀한 사랑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경배하는 것은 기도 지향 목록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의 지향을 갖고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 지향은 그분 곁에 머무르게 해달라는 지향입니다. 그것은 찬미와 감사로 더 커지는 기쁨과 평화를 발견하는 일입니다. 경배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변화시키시게 할 수 있습니다. 경배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 안의 어둠을 몰아내는 빛을 비추시고, 약함 속의 강함을 갖게 하시고 시험 속에서 용기를 지니게 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열어드리게 됩니다. 경배하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마비시키고 혼란스럽게 하는 쓸데 없는 것들과 중독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경배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경배하지 말아야 할 것들, 곧 재물이라는 신, 소비주의라는 신, 쾌락이라는 신, 성공이라는 신, 우리 자신이라는 신을 거부하는 법을 배웁니다. 경배하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분 앞에 무릎을 꿇고 낮은 자세를 취함으로써, 삶의 위대함이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그분의 현존을 발견하는 것을 뜻합니다. 경배하는 것은 모든 곳의 다리가 되는 사랑의 신비 앞에 선 우리 모두가 서로의 형제자매임을 깨닫는 일입니다. 선의 근원과 마주하는 일이자, 이웃에게 가까이 다가갈 용기로 드러나는 하느님의 친밀성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경배하는 것은 거룩한 말씀 앞에서 침묵하는 법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누군가를 상처 입히는 게 아니라 위로하는 말을 하는 법을 배웁니다. 

경배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것은 동방박사들처럼 행동하는 일이지요. 주님께 황금을 가져오고, 그분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고 그분께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분께 유향을 봉헌하고, 오직 그분과의 일치만이 우리의 삶을 천국으로 들어 높일 수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멍들고 상처 난 이들을 위한 몰약을 그분께 드리고, 당신께서 함께하시는 가장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돕겠다고 고백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청하기도 하고, 감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분께 경배의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우리는 경배를 통해 성장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배워야 할 지혜입니다. 경배를 통한 기도, 경배의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 각자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경배하는 그리스도인인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는 하지만, 경배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는 일상의 계획 안에 경배를 위한 시간을 내어두었는가? 우리 공동체 안에서 경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는가?” 우리가 오늘 시편을 통해 기도한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우리 교회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시편 72,11 참조). 경배를 통해 우리는 동방박사들처럼 우리 여정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처럼 우리는 “더 없이 기뻐”(마태 2,10)하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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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1월 2020, 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