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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향한 모든 폭력은 하느님에 대한 신성모독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및 제53차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교회의 여정을 가리키는 빛이신 동정 마리아를 바라보라고 권고했다. 교황은 마리아의 모범을 따라 착취 당하고, 멸시 받고, 학대 받는 여성들의 몸을 존중하는 한편, 종종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모욕 받는 여성들의 모성을 보호하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갈라 4,4). 예수님은 여인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어른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게 아니라, 복음이 우리에게 말한 것처럼 “(여인의) 태중에 잉태되었습니다”(루카 2,21). 그곳에서, 매일, 매달, 우리 인성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셨습니다. 한 여인의 태중에서 하느님과 인류는 결코 다시는 서로를 떠나지 않기 위해 하나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예수님은 하늘에서, 당신 어머니의 태중에서 취하신 육신 안에 사십니다. 하느님 안에 우리 인간 육신이 있습니다. 

우리는 새해 첫 날, 여인의 태중에서 축복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혼인을 기념합니다. 우리 인성은 항상 하느님 안에 있을 것이며, 하느님 안에서 마리아는 영원히 하느님의 어머니가 될 것입니다. 그녀는 여인이며 어머니이십니다. 이는 본질적입니다. 여인인 그녀에게서 구원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여인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여인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셨습니다. 하느님과 하나되길 원한다면 같은 길을 통해야 합니다. 여인이며 어머니인 마리아를 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인성을 엮으신 여인인 성모님의 표징 안에서 새해를 시작합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삶의 날들의 씨실과 날실을 엮고자 한다면 여인에게서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탄생은 여성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모욕 받고, 구타 당하고, 성폭행 당하며, 성매매에 내몰리고, 태중에 있는 생명을 죽이라는 강요를 받고 있습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여성에게서 태어나신 하느님에 대한 신성모독입니다. 인류를 위한 구원은 여성의 몸에서 왔습니다. 우리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 인성의 수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자주 여성의 몸이 광고와 수익과 음란물의 저속한 제단에서 희생되고 있는지요! 여성의 몸은 소비주의에서 해방되어야 하며, 존중과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여성의 몸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몸입니다. 이 몸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사랑이신 주님을 세상에 주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성의 모성은 모욕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성장이란 경제성장이기 때문입니다. 태중에 있는 생명에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여행의 위험에 처한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임신했어도 공허한 사랑의 마음을 지닌 사물이자 잉여인간의 숫자로만 간주됩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여성은 전체 피조물의 요약으로, 창조의 정점에 이릅니다. 실제로 여성은 자신 안에 창조 자체의 목적을 품고 있습니다. 곧, 생명의 출산과 보호, 모든 것과의 친교, 모든 것을 돌보는 것을 품고있습니다. 이는 오늘 복음에서 보는 것처럼, 성모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예수님 탄생에 대한 기쁨, 베들레헴에서 있었던 박대에 대한 슬픔, 요셉의 사랑과 목자들의 놀라움, 미래에 대한 약속과 불확실성 등을 마음속에 간직했습니다. 모든 일에 마음을 다했으며, 자신의 마음속에 모든 것을, 심지어 역경까지도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마음속에 모든 것을 사랑으로 정리하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마리아의 이 행동은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예수님의 사생활의 끝자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 2,51). 이러한 반복은 성모님께서 가끔 행하신 행동이 아니라 그분의 일상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게끔 해줍니다. 생명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은 바로 여성의 일입니다. 여성은, 삶의 의미란 사물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존재하는 일들을 마음에 간직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마음으로 보는 사람만이 잘 봅니다. 왜냐하면 “내면을 보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실수를 넘어 그를 보며, 형제가 갖고 있는 약함을 넘어 그를 보며, 어려움 중에서 희망을 보며,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볼 줄 압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각자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마음으로 볼 수 있는가? 사람들을 마음으로 볼 수 있는가? 나와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는가, 아니면 험담으로 그들을 파괴하는가? 무엇보다도, 주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가치들, 다른 관심들, 나에 대한 홍보, 재물, 권력을 내 마음의 중심에 두고 있는가?” 오직 생명을 우리가 중요하게 여길 때라야 우리는 생명을 보살필 수 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무관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 은총을 청합시다. 올 한 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자 하는 바람으로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우리가, 평화의 집이며 전쟁터가 아닌,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면, 모든 여성의 존엄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여인에게서 평화의 임금이 나셨습니다. 여성은 평화를 제공하며, 평화의 중재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 완전히 참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자신들의 선물을 전달할 수 있게 되면, 세상은 더욱더 일치되고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성의 성취는 전 인류의 성취입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한 여인의 눈에,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에 비추어졌습니다. 어머니에게서 처음으로 어루만짐을 받았으며, 그녀와 함께 첫 미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온유한 사랑의 혁명(la rivoluzione della tenerezza)을 시작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바라보는 교회는 그것을 계속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실 교회도 마리아처럼 여인이며 어머니입니다. 여인이며 어머니인 교회는 성모님 안에서 자신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합니다. 교회는 마리아를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으로 바라보고, 죄와 세속에 “아니오”라고 말하라는 부르심을 느낍니다. 교회는 마리아를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바라보고, 주님을 선포하며, 삶 안에서 주님을 낳으라는 부르심을 느낍니다. 교회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바라보고, 모든 사람을 아들처럼 받아들이라는 부르심을 느낍니다.

마리아에게 다가가면서 교회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중심을 재발견하며, 자신의 일치를 재발견합니다. 인간 본성의 원수인 마귀는, 차이들과 사상들과 당파적 사고들 및 정당들을 우선시하면서 인간을 유혹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시스템이나 프로그램, 성향이나 사상 및 기능성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교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교회의 핵심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붙들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어머니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자녀로서 하느님의 어머니께 우리가 신앙의 백성으로 하나될 수 있길 간청합시다. “오, 어머니, 우리 안에 희망을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일치를 가져다 주십시오. 구원의 여인이시여, 올 한 해를 당신께 의탁합니다. 당신 마음 안에 간직하십시오. 당신께 환호합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 모두 함께 일어나서 마리아께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고 세 번 외칩시다. [회중과 함께] “천주의 성모 마리아, 천주의 성모 마리아, 천주의 성모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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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1월 2020, 1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