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는 하느님과 사람들의 만남을 장려하는 일입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 12.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사도 10,34)
베드로. 성령이 이방인들에게 내리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성 루카가 사도행전에서 언급한 세상 안에서의 복음 여정에는 놀라운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최고의 창의성이 동반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녀들이 구원의 보편성으로 열리기 위해 모든 특수주의(particularism, 개별주의, 자기 중심주의)를 극복하길 원하십니다. 목표는 바로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모두가 구원되길 원하시기 때문에, 특수주의를 극복하고 구원의 보편성에로 열려 있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세례 받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이들을 향해 열려 있고, 모든 대인 관계를 형제애의 체험으로 바꾸어 주는 친밀감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살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87항 참조).
성령께서 역사 안에서 부추기시려는 이러한 “형제화(fraternizzazione)” 과정의 증인은 바오로와 함께 사도행전의 주인공인 베드로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전환점을 나타내는 사건을 겪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도발”의 역할을 하는 환시를 받습니다. 그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 등 다양한 동물들이 들어있는 큰 식탁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그 짐승들을 잡아먹으라고 권하는 목소리를 듣습니다. 베드로는 착한 유다인으로서 주님의 율법(레위 11장 참조)에 따라 속된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거절합니다. 그러자 목소리는 다시 강하게 들려옵니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
이 일을 통해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더 이상 정결과 부정의 범주에 따라 사건과 사람들을 평가하지 말고, 사람과 사람의 마음의 의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우길 원하셨습니다. 사실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옵니다(마르 7,21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환시가 있은 후, 하느님께서는 베드로를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군대의 백인 대장이며 (…) 신심이 깊고 하느님을 경외하며”, 유다 백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고 늘 하느님께 기도하는(사도 10,1-2 참조), 할례 받지 않은 외국인인 코르넬리우스의 집으로 보냅니다. 그는 유다인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방인의 집에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죄의 용서를 설교합니다. 베드로가 말하고 있을 때, 코르넬리우스와 그의 가족들에게 성령께서 내려오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사도 10,48 참조).
처음으로 일어난 이 특이한 사건을 예루살렘에 있는 형제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의 태도에 충격을 받고 그를 거칠게 책망합니다(사도 11,1-3 참조). 베드로는 관습과 율법을 넘어 행동했기에 형제들이 그를 책망한 것입니다. (하지만) 코르넬리우스와의 만남 이후 베드로는 더욱 자유로워졌으며, 하느님과 다른 이들과 더 일치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성령의 행하심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세운 것은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이방인들 사이에서 거룩한 축복의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는 조건 없는 부르심의 표징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사도들의 으뜸(베드로)에게서 우리는 복음 전파자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시는”(1티모 2,4) 하느님의 창조적 사업에 방해자가 될 수 없으며, 그 대신 주님과 사람들의 만남을 장려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사람을 어떻게 대합니까? 우리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방해하는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형제들의 하느님 아버지와의 만남을 방해합니까, 아니면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까?
오늘 모두 함께, 하느님의 창의성을 방해하지 않고, 하느님의 놀라우심에 감탄하도록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부활하신 분께서 자신의 영을 세상에 부어 주시어 자신이 “만민의 주님”(사도 10,36)임을 알리시고, 또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운 방법들을 인식하고 장려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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