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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요새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천막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0월 2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는” 교회가 아니라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교회의 본성과 시노드의 본질에 대해 강조했다. 주교들과 사제들에게는 친교의 책임을 상기시켰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  13. “하느님께서 (...) 다른 민족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사도 14,27).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선교, 예루살렘 사도 회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가, 자신을 변화시킨 예수님과의 만남이 있은 후에, 바르나바의 중재 덕분에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받아들여졌고, 그리스도를 선포하기 시작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의 적대감으로 인해 바오로는 자신의 고향인 타르수스로 가야만 했습니다. 바르나바는 하느님 말씀의 긴 여정에 바오로를 참여시키기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우리가) 일반알현 교리 교육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 사도행전은 하느님 말씀의 긴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은 선포되어야 하며, 어디에서나 선포되어야 합니다. 이 여정은 강력한 박해 후에 시작됩니다(사도 11,19 참조). 하지만 박해는 복음 선포에 대한 좌절을 불러 일으키는 대신 하느님 말씀의 좋은 씨앗을 전파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박해를 피해 떠나야 했지만, 하느님 말씀과 함께 떠났으며, 어느 곳에서나 말씀을 전파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먼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 도착하여 만 1년 동안 그곳 교회 공동체가 뿌리를 내리도록 가르치고 돕습니다(사도 11,26 참조). 그들은 유다인 공동체와 유다인들에게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처럼 안티오키아는 신앙인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두 복음 전파자인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설교 덕분에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습니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사도 11,26 참조). 

사도행전을 통해 교회의 본성은 요새가 아니라 자신의 터를 넓히고(이사 54,2 참조)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천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깥으로) 나가는” 교회가 아니라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간을 넓혀가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교회가 아닙니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교회입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46항). 교회는 항상 문이 열려 있습니다. 여기 이 도시에서 문이 닫혀 있는 교회를 보거나, 제가 있었던 교구에서 문이 닫혀 있는 교회를 보았는데, 이는 나쁜 신호입니다. 교회는 항상 문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교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그 표시는 바로 교회의 문이 항상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 누군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을 찾고자 성당에 찾아왔을 때 차갑게 닫혀 있는 문을 마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47항).

그런데 열린 문의 새로움은 누구에게 열려 있는 것입니까? 이방인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들이 유다인들에게 말씀을 전파했지만, 또한 이방인들도 와서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방인들에게 문이 열려 있는 새로움이 매우 활발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부 유다인들은, 구원 받기 위해선 할례를 통해 유다인이 되어야 하고, 그런 다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사도 15,1)라고, 곧 (할례를 받지 않으면) 세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유다인의 의식이 있어야 하고, 그런 다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일부 유다인들의 입장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사도 회의와 예루살렘에 있는 원로들에게 상의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언급한(갈라 2,1-10 참조), 교회 역사상 최초의 공의회인 예루살렘 공의회 혹은 예루살렘 사도 회의입니다.  

매우 섬세한 신학적, 영적, 규율 문제들이 다뤄졌습니다. 곧,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모세의 율법 준수 사이의 관계가 다뤄졌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사도 회의 중에 있었던, 어머니-교회의 “기둥들”인 베드로와 야고보의 연설이었습니다(사도 15,7-21; 갈라 2,9 참조).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말고, 단지 우상숭배와 그 모든 표현을 거절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논의를 통해 공동의 길이 도출되었으며, 결정된 사항은 안티오키아로 보낸 편지를 통해 승인되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는 우리에게 차이(점)들을 다루는 것,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것”(에페 4,15)을 찾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빛을 비춥니다. 갈등 해소를 위한 교회의 방법은, 성령의 빛으로 수행된 식별에 근거하는 것, 주의 깊고 인내로이 경청하고 대화하는 것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사실, 성령께서 닫힘과 긴장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시고, 진실과 선과 일치에 도달하도록 우리 마음 안에서 역사(활동)하십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에 보낸 편지는 공동합의성(la sinodalità)을 이해하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편지를 쓴 방식이 흥미롭습니다.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 결정하였습니다”(사도 15,28). 이것이 바로 공동합의성이며,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의 의미)입니다. 이와 같지 않다면 공동합의성이 아니라, 토론장이며, 국회(의회)이며, 또 다른 무엇일 것입니다. (…).

모든 그리스도인, 특히 주교들과 사제들의 친교의 소망과 책임을 강화해 주시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언제나 많은 자녀들을 두고 “기뻐하는 어머니”가 되게 부름 받은 교회의 풍요로움을 맛보고 나타낼 수 있도록, 믿음 안의 형제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과 대화하고, 경청하고, 만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청합시다(시편 113,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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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0월 2019, 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