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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들은 ‘(상본 속) 성인들’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25일 수요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일반알현에서, 루카 복음사가가 전해주고 있는 교회의 일곱 봉사자들(부제들)을 뽑은 내용과 최초의 그리스도교 순교자인 스테파노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사도행전 대목에 관해 설명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

9.  스테파노는 ‘섬김(diakonia, 디아코니아)’과 ‘순교’ 사이에서 “성령이 충만하였다” (사도 7,5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사도 행전을 통해 우리의 여정을 계속해 나갑시다. 이는 세상 안에서의 복음의 여정입니다. 성 루카는 생생한 사실에 기반하여 이 여정의 결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발생한 몇 가지 문제들을 보여줍니다. 문제들은 처음부터 항상 있었습니다. 대립과 분열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에서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조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히브리인들뿐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와 감수성 및 다른 종교를 가진, 히브리인 아닌 디아스포라 출신의 그리스인들(그리스계 유다인들)도 받아들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들을 “이방인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러한 공존은 약하고 불안정한 균형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어려움들에 직면하여 “가라지”가 나타난 것입니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최악의 가라지는 무엇입니까? 불평과 험담의 가라지입니다. 그리스계 유다인들은 자신들의 과부들이 홀대 받는다고 불평합니다. 

사도들은 어려움을 잘 고려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 식별 과정을 시작합니다. 사도들은 복음의 “질주(corsa)”뿐 아니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 교회 전체의 평온한 성장을 위한 다양한 임무를 나누는 것에서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사도들은 점점 주요 소명이 기도와 하느님 말씀의 설교, 곧 기도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임을 인식했습니다. 사도들은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사도 6,3)을 찾아내어 (직무를 맡김으로써)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들은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은 후 식탁 봉사를 수행합니다. 이들은 이러한 것, 곧 봉사를 위해 세워진 부제들입니다. 교회 안에서 부제들은 사제 다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직무입니다. 제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봉사를 위한 직무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봉사를 수호하는 이들입니다. 부제가 제대에 가까이 가기를 너무 좋아하면 실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제의 길이 아닙니다. 말씀에 대한 봉사와 자선에 대한 봉사 사이의 이러한 조화는 교회의 몸을 자라게 하는 누룩을 보여줍니다.

사도들은 일곱 부제를 세웠고, 일곱 “부제들” 중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스테파노와 필리포스가 구별됩니다. 스테파노는 능력과 용기(parresia, 담대함)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지만, 가장 완고한 저항을 만납니다. 그를 저지하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반대자들이 무엇을 합니까? 그들은 한 인간을 죽이기 위한 가장 비열한 방법을 택합니다. 곧, 중상 모략, 혹은 거짓 증언을 택합니다. 우리는 중상 모략이 항상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악마적 암(cancro diabolico)”은 한 사람의 평판을 파괴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고, 또 교회의 지체를 공격하며, 비열한 이익이나 자신의 불성실함을 은폐하기 위해 누군가를 대상으로 진흙 싸움을 벌이려고 서로 동맹할 때 공동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힙니다. 

거짓 증인들과 모함으로 예수님과 모든 순교자들에게 한 것과 똑같은 방법, 곧 거짓 증인들에 의해 고발당해서 최고 의회에 끌려 온 스테파노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거룩한 역사를 상기하면서 설교합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파스카 신비는 전체 계약의 역사의 키워드입니다. 이처럼 풍성한 천상 은총 앞에서 스테파노는 예언자들과 그리스도께서 다루신 적이 있는 위선을 용감하게 비난합니다. 스테파노는 역사를 상기하면서 반대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예언자들 가운데 여러분의 조상들이 박해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들은 의로우신 분께서 오시리라고 예고한 이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러분은 그 의로우신 분을 배신하고 죽였습니다”(사도 7,52). 스테파노는 모호한 말을 사용하지 않고 분명하게 진실을 말합니다. 

이로 인해 최고 의회에서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난폭한 반응을 보였고, 스테파노는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돌팔매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테파노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참된 “소질(stoffa)”을 보여줍니다. 그는 도망치지 않고,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호소하지도 않으며, 대신 주님의 손에 자신을 생명을 맡겼습니다. 그 순간 스테파노의 기도는 아름다웠습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그리고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아드님처럼 (사람들을) 용서하면서 숨을 거둡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스테파노의 이 말들은, 좋은 설교가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에 우리 각자의 삶을 맡기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용서하고, 우리 신앙의 질(質)을 바라보게 해주는 이들을 용서하는 것뿐이라고 우리를 가르칩니다.

초대 교회 때보다 오늘날 더 많은 순교자들이 존재합니다. 어느 곳에나 순교자들이 존재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많은 순교자들이 존재하고,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의 씨앗”(테르툴리아누스, 『호교론』(Apologetico), 50,13)인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어 있으며, 하느님 백성들에게 성장과 결실을 보장합니다. 순교자들은 “(상본 속) 성인들”이 아니라, 살과 뼈가 있는 (실제) 사람들입니다. 요한 묵시록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습니다”(묵시 7,14). 그들은 진정한 승리자들입니다.

우리 또한, 어제와 오늘의 순교자들을 바라 보면서, 복음에 대한 매일의 충실함의 순교와 그리스도를 닮는 순교를 받아들이면서, 충만한 삶을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주님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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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9월 2019, 0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