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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노에서 미사를 거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알바노에서 미사를 거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신앙을 속되게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하느님 자비의 집입니다”

심판관으로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형제로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감시하는 감찰관이 아니라, 모두의 선을 증진시키는 사람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9월 21일 토요일 오후 알바노에서 거행한 미사 강론을 통해 이같이 역설했다. 교황은 신앙을 부수적인 것들로 채우거나 공동체를 사교모임으로 만들지 말라며, 교회가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는 장소임을 기억하라고 권고했다.

Debora Donnini / 번역 이창욱

교회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위해 존재한다.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나 잊혀진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알바노에서 원고 없이 즉흥적으로 한 말씀으로 더 풍요로워진 강론 전체는 복음이 들려주는 자캐오의 사화(루카 19,1-10 참조)를 통해, 세상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사명에 초점을 맞췄다. 교황은 피아자 피아(piazza Pia)에서 거행된 미사에 앞서, 성 판크라지오 주교좌성당 안에서 사제들과 함께 기도의 시간을 보냈다. 11년 전, 같은 날에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도 주교좌성당의 중앙제대를 축성한 바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린 사람에게 가서 말하십시오

교황은 강론에서 자캐오가 비록 작은 체구였지만 예리코를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던 것을 떠올렸다. 동향인들의 눈에 자캐오는 “구원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던 세리들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위를 쳐다보시며 그의 집에 머무르고 싶으시다며 얼른 내려오라고 초대하셨다. 죄와 험담들의 방해와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가장 큰 죄인”을 기억하신다.

“여러분의 주교좌성당 축성 기념일에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합니까? 모든 교회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교회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는 기억을 사람들 마음 안에 생생하게 새겨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는 우리 각자에게,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도, 다음과 같이 말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여러분은 사랑 받았고 예수님에게 이름을 불리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님처럼 여러분의 도시를 ‘지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가장 잊혀진 사람에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 당신을 기억하십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수치심이나 두려움, 고독의 나뭇가지 뒤에 숨어있는 사람에게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먼저”가 삶을 변화시킵니다. 사랑의 대용품으로 자신을 내팽개치지 마십시오

자캐오가 예수님이 어떤 형태의 스승님인지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 동안, 주님께서 직접 그를 먼저 찾아주셨음에 주목하는 것은 흥미롭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먼저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느님의 “먼저”를 발견할 때, “무엇보다 먼저 우리에게 도달되는” 그분의 사랑을 발견하게 될 때, 삶이 변화된다. “자캐오처럼 삶에서 의미를 찾지만 의미를 찾지 못하고, 부(富), 경력, 쾌락 그리고 일종의 약물의존 같은 ‘사랑의 대용품(surrogati di amore)’으로 자신을 내팽개친다면,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십시오.” 오로지 예수님과 함께할 때 “항상 사랑 받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부수적인 많은 것들로 신앙을 복잡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교황은 교회처럼,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오신 것인지, 그분이 먼저인지, 아니면 “우리의 조직”이 먼저인지 자문하라고 권고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될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든 회심은 자비의 선행(先行)에서 생겨나고, 마음을 사로잡는 하느님의 따뜻한 애정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자비로운 시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면, 신앙을 세속화시키고, 복잡하게 만들며, 문화적인 토론이나 능률주의적 관점, 정치적 선택, 정당 선택 (...) 등 (신앙을) 수많은 부수적인 것들로 채우는 위험을 떠안게 됩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 신앙의 단순함, 무엇보다 먼저인 것, 곧 하느님의 자비와 깊은 만남을 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중심에 두지 않는다면, (이러한 것이) 우리의 모든 활동의 시작과 끝에 있지 않다면, 하느님을 ‘집 바깥으로’ 내모는, 다시 말해 당신의 집인 교회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으로 만드는 위험을 떠안게 됩니다. 오늘 말씀의 초대는 ‘하느님에게 자비를 받도록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자비를 가지고 오십니다.”

교회는 타인에 대한 험담의 장소가 아니라 환대의 장소가 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캐오에게 그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말씀하실 때, 사랑 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셨다. 이런 상황에서 자캐오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이는 5분의 1을 보태어 되갚기를 요구했던 율법 규정(레위 5,24 참조)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교황은 자캐오가 “사랑을 찾았기” 때문에, 집이라고 느끼기에, 그런 말을 했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이웃과 지인이 교회를 자기 집처럼 느낀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교황은 이같이 감탄하는 한편, 불행하게도 우리 공동체는 많은 사람에게 있어 이질적이고 매력 없는 곳으로 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때로 “우리 또한 사교모임(폐쇄된 집단), 엘리트끼리 친밀한 장소를 만들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집에 대한 향수를 가졌지만 사랑 받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설 용기조차 내지 못한 형제들도 많다. “어쩌면 그들을 나쁘게 대했거나 바깥으로 쫓아버렸거나, 그들에게 성사생활만 요구했던 사제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주 안 좋은 일이지요. (...) 그래서 그들은 멀어져 간 겁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계속 설명했다.

“주님께서는 당신 교회가 사람들이 사는 집 가운데 하나이기를, 인생의 나그네인 모든 사람이 우리 가운데에서 사시러 오신 그분을 만나는 환대의 장소가 되길 바라십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교회는 결코 타인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캐오에게 하셨듯이,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는 곳이어야 합니다.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그를 돌보려고 도와주기 위한 순간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위에서 아래로 바라보아선 안 됩니다. 그가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오직 그 순간에만 그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결코 심판관으로서 바라보지 말고 형제로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감시하는 감찰관이 아니라, 모두의 선을 증진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모두의 선을 증진시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많은 도움을 주는 한 가지는 혀를 놀리지 않는 것입니다. 타인의 험담을 하지 않는 겁니다.”

험담하려는 사람을 치료하는 좋은 약은 혀를 절제하는 것이라고 교황은 원고에 없는 내용을 말하며 제안했다. 우리는 “수많은 이론을 고안해내고 인터넷에서 답변을 찾으려 시간을 쓰는 복잡한 그리스도인”이 되라고 부르심 받은 것이 아니라, 열심히 나무로 올라갔던 자캐오처럼, 부모와 친구가 필요한 “어린이”처럼 돌아가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 또한 하느님과 타인이 필요하고, 그 누구도 원수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 교황은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한 게 있으면 선으로 되갚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나간 악의 노예가 아니라, 자캐오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은 사람”이라며 “할 수 있는 선행만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찾고 (그를) 구하기를 회피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아니라”고 교황은 경고했다. 교황은 알바노 주교좌성당이 “모든 교회처럼, 주님의 자비가 먼저 느껴지고 집으로 받아들여지며, 주님께서 기억해주신다는 것을 각자 안에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되고”, 교회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 곧 “구원이 삶 속에 들어왔기에 기뻐하는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하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알바노교구장 세메라로 주교 “선교적 삶의 형태 받아들일 것”

미사 말미에 알바노교구장 겸 6인 추기경 평의회(C6) 사무총장 마르첼로 세메라로(Marcello Semeraro) 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이번 방문을 요청하도록 용기를 북돋웠던 두 가지 상황을 떠올렸다. 한편으로는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인 9월 21일이라는 날짜가 교황이 (사제직으로) 부르심 받은 성소와 연결되는 날이다. 사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태오의 부르심에 대해 설명했던 성 베다의 강론에 나오는 말씀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를 교황 문장 모토로 채택했다. 이 날짜는 새 주교좌성당을 축성했고 따라서 성당의 봉헌기념일이 되었던 날로, 지난 2008년에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방문했던 날과도 연관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는, 알바노와 로마 간의 강력한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문제를 해결해내지 못한다면, 적어도 희망의 표지를 남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세메라로 주교는 이같이 말하며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대한 도움을 언급했다. 아울러 알바노 라치알레의 시민들 안에서 교회의 책임이 「복음의 기쁨」(Evangelli gaudium)뿐 아니라 교황의 다른 문헌을 통해 교황이 요청한 선교 방식을 수용하면서, “생명력 있는 사목(pastorale generativa)”을 통해 우리 시대의 존재론적 주변부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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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9월 2019, 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