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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참된 겸손의 길은 하느님과의 친교로 인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일 연중 제22주일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우월성을 주장”하기 위해 매일 같이 윗자리를 찾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행동은 형제애를 파괴하고 시민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25분 동안 엘리베이터에 갇혀 있는 바람에 몇 분 늦게 집무실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선 늦게 온 점에 대해 사과를 드려야겠습니다. 사고가 있었습니다. 저는 25분동안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정전으로 엘리베이터가 멈췄던 겁니다. 하느님 덕분에 소방대원들이 왔고 25분간의 작업 후에 엘리베이터가 작동했습니다. 그분들께 많은 감사를 드립니다! 소방대원들께 박수를 부탁 드립니다!

오늘 복음(루카 14,1.7-14 참조)은 잔치에 참석하신 예수님을 보여줍니다.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서 열린 잔치였죠.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어떻게 달려가서 서두르는지 바라보시고 관찰하십니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퍼져 있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식사에 초대받았을 때만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윗자리를 찾습니다. 실제로, 윗자리를 고르는 행동은 시민 공동체든 교회 공동체든 공동체를 아프게 합니다. 형제애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람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곧 항상 위를 향해, 위로 올라가려고 끝없이 애쓰는 사람들 말입니다. (...) 이런 사람들은 형제애를 병들게 하고, 형제애에 해를 입힙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짧은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첫 번째 비유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에게 하신 비유입니다. 그에게 윗자리에 앉지 말라고 권고하십니다. 왜냐하면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루카 14,8-9 참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반대되는 태도를 취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루카 14,10).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타인의 관심을 끌거나 타인의 배려를 받으려 하지말고, 그들이 먼저 우리에게 관심을 주고 배려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겸손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우리는 겸손의 길을 배워야 합니다! 겸손의 길이야말로 가장 진정한 길이고, 진정한 관계를 맺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참된 겸손이란 ‘겸손한 체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에몬테 지방에서는 이를 ‘무냐 과챠(mugna quacia, 성인인양 눈을 지그시 감고 겸손한 체 하는 것, 혹은 겉으로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믿을 수 없거나 위험한 인물)’라고 부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겸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겸손해야 합니다.

두 번째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했던 사람에게 사람들을 초대하는 선택의 방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루카 14,13-14).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항상 그러셨던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논리를 드러내시며, 완전히 세태를 거슬러 가십니다. 아울러 이러한 당신의 연설을 해석하기 위한 키워드도 덧붙이십니다. 어떤 키워드입니까? 하나의 약속입니다. 만일 네가 그렇게 한다면,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루카 14,14). 이 말씀은 그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인간적인 보답보다 훨씬 뛰어난 신적인 보상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네가 나에게 어떤 것을 해주기를 바라면서 나는 네게 이런 호의를 베푼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태도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겸손한 관대함입니다. 사실 인간적인 답례는 통상적으로 관계를 왜곡시키고, “계산적”인 관계로 만들며, 관대하고 무상적이어야 하는 관계 안에 개인적인 이익을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훨씬 더 큰 기쁨을 향한 길로 우리를 열어주시기 위해 사심 없는 관대함으로 초대하십니다. 이 기쁨은 하늘나라의 잔치에 우리 모두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기쁨입니다.

“피조물 중에 가장 겸손하고 가장 높으신”(단테, 『천국』, 33,2) 동정녀 마리아께서 (우리로 하여금)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인식하고, 다시 말해 보잘것없는 자들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조건 없이 내어 주는 것을 기뻐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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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9월 2019, 2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