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00746_13022013AEMb.jpg

교황, 전 세계 사제들에 서한 “여러분의 봉사에 감사 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스의 본당 신부 선종 160주년을 맞아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고된 노고와 낙심에도 매일 성사를 집전하며 하느님 백성을 동행하는 모든 사제들을 지지하고 가까이 있으며 격려한다”고 강조했다.

Sergio Centofanti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 세계 본당 신부들의 주보성인인 아르스의 본당 신부 비안네 성인의 선종 160주년을 맞아 사제들에게 서한을 보냈다. 교황은 서한에서 공동체의 일상생활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소란스럽지 않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 “형제 사제들에게”, 그리고 “하느님 백성을 돌보고 동행하고자”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매일 우리에게 얼굴을 내미는 이들에게 격려와 가까이 있음을 표현했다. 이어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피곤이나 고된 노고에 찌들어 있을 때, 병에 걸렸거나 절망에 처했을 때, 주목 받지 못하고 희생되었을 때와 같은 수많은 경우에도, (주어진) 사명을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을 위한 봉사로 받아들이며, 비록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제의 삶 중 가장 아름다운 페이지를 써 내려가는 여러분 각자를 생각합니다.”

고통

교황의 서한은 성 학대 스캔들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했다. “최근 우리는 일부 성직자들의 권력남용을, 그리고 양심의 학대와 성 학대의 희생자들인 우리 형제들의 외침을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외침은 종종 침묵을 강요받고 소리 죽인 부르짖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발생한 피해를 부정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과 자신의 존재 모두를 계속해서 온전히 봉헌하는 수많은 사제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 또한 부당”할 것이라고 교황은 강조했다. 그런 사제들은 “때때로 초대받지 못하며, 멀리 떨어져 있거나 방치돼 있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역이나 상황에서 자신의 삶을 자비의 활동”으로 만든다. 교황은 “그들의 용기와 지속적인 모범에 대해” 감사를 전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교회 정화의 시기가 우리를 더욱 기쁘고 소박한 사람들이 되게 해주는 한편, 머지않은 미래에 많은 결실을 맺게 될 것”이라고 썼다. 또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를 정화시켜주시며 우리 모두를 그분께 되돌아오도록 회심시켜주시기” 때문에, 용기를 잃지 말라고 초대했다. “그분 없이 우리는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우리는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감사

두 번째 키워드는 “감사”다. 교황은 “성소가 우리의 선택이라기보다, 주님의 거저 베푸시는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주님을 섬기기 위해 온 생명을 봉헌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체험하는 “그 빛나는 순간으로 돌아가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품 안에서 성장한 ‘네’라고 응답하는 순간으로 돌아가자”고 권고했다. 교황은 어려움의 순간, 부서지기 쉽고 연약한 순간에 “모든 유혹 중에서 가장 최악의 유혹은 절망으로 뒤죽박죽된 상황에 머무는 것”이라며 “그분과 그분의 백성을 위해 목숨을 걸도록 우리를 초대하신” “주님의 행보에 대한 감사의 완전한 기억을 우리의 삶에서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감사는 항상 강력한 무기입니다. 오직 우리가 용서, 인내, 끈기와 우리가 받은 연민에 대해서처럼, 사랑, 관대함, 연대와 신뢰의 모든 행위에 대해 구체적으로 감사하고 관상할 단계에 이를 때에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과 사명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쇄신할 정도로 신선한 바람을 우리에게 선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게 됩니다.”

교황은 “맡은 바 책임에 충실한” 형제 사제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어 “불확실하고 덧없는(gassose)” (것을 좇는) 문화와 사회에서 목숨을 내어주는 기쁨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의미심장한 일”이라고 역설했다. 또 교황은 사제들이 사람들을 돌보고 “회심의 여정에서 그들을 동행하면서”, “엄격주의나 방임주의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면서, 매일 미사를 거행하고 고해성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열성을 다해, 모든 이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했다. “여러분이 가슴 속 깊이 감동하면서, 죄에 빠진 이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상처를 돌봐주는 모든 순간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 (...) 이런 일보다 더 급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곧, 고통 받는 형제의 몸에 다가가고, 가까이 있으며, 함께하는 것입니다.”

목자의 마음이란 “신자들과 하나됨을 느끼고 (자신도) 그들에게서 나온 존재임을 잊지 않는 영적인 맛을 들인 마음이며 (...) 복음의 맛을 간직하지 않은 특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엄격하면서도 소박한 삶의 양식을 살아가는 마음”이라고 교황은 강조했다. 나아가 교황은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의 성덕”에 대해서도 감사하자고 초대하며 “큰 사랑으로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 빵을 집에 가져가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 병자들, 계속해서 미소 짓는 연로한 수녀들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용기

세 번째 키워드는 “용기”다. 교황은 사제들에게 용기를 심어주길 원했다. “우리가 부르심 받은 사명은 괴로움, 고통, 몰이해에서 면제되는 게 아닙니다. 그와는 반대로 주님께서 그것들을 변화시켜주시고 우리를 그분에게로 더욱 더 동화시켜주시도록 우리를 내어 맡기기 위해 그것들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십니다.” 사목자의 마음을 어떻게 갖출 수 있는지 알기 위한 좋은 테스트는 “어떻게 우리가 고통을 직면하고 있는지 자문해보는 것”이라고 교황은 말했다. 사실 때때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듯이,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을 못 본 척 하는 레위인이나 사제처럼 행동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고, 때로는 합리적으로 고통에 접근해 분석하고 진부한 표현으로 도피함으로써(“인생이 그런 거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운명론에 자리를 내어주는 일도 있다. “혹은 단지 고립과 소외만 키우면서 좋아하는 것만 선택하는 시선에 다가서기도 합니다.”

교황은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노스가 “악마의 가장 소중한 특효약”이라고 정의한 것, 다시 말해 “동방 교부들이 태만이라고 불렀던 달콤한 슬픔”을 경계했다. “슬픔은 일할 때나 기도할 때 계속 나아갈 용기를 마비시키고, 억울함과 적대감을 부추기며, 변화와 회심의 모든 시도를 무력화합니다.” 교황은 습관성(l’abitudinarietà)에 도전하는 한편 “부활하신 분의 살아있는 말씀의 외침과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우리 스스로 움직이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를 일깨워주시고 우리의 무감각을 깨워주시도록” 청하라고 초대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어떻게 기쁨이 거듭 나는지를 관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기쁨은 “주의적(主意的)이거나 주지적(主知的)인 노력으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신뢰로 생겨난다”면서 “그 신뢰란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를 계속 행동하도록 자극하게 만든다는 자각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교황은 기도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주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제자들임을 떠올리는 우리의 축복받은 불안정을 경험하게 된다”면서 “아울러 우리를 오직 자신의 힘에만 의지하게 만드는 이들의 프로메테우스적 경향에서 해방시켜준다는 것도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사목자의 기도는 “하느님 백성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고 구체화됩니다. 사람들의 상처에 기쁨의 표징을 가져다 줍니다.” (기도란) “주님이 (우리가 만든 분이거나 선험적인 분이 아니라) 희망의 여정을 우리에게 제시해주시는 바로 그분이심을 인정하며, 우리 모두를 쉽고 신속하고 미리 만들어놓은 답변을 찾거나 원하는 것에서 해방시켜주는” 신뢰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식해야 하지만, 당연히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그 연약함을 변화시켜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사명을 향해 나아가게 해주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용기 있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교황은 두 개의 건설적인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 번째는 예수님과의 관계다. “사제적 여정을 식별해줄 한 명의 형제를 두십시오. 함께 대화를 나누며 조언을 구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영적 동반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두 번째는 하느님 백성과의 관계다. “신자들과 사제들 혹은 공동체로부터 고립되지 마십시오. (마음이) 닫힌 그룹이나 엘리트 그룹에 갇히지도 말아야 합니다. (...) 용기 있는 사목자란 항상 바깥으로 나가는 사목자입니다.” 교황은 사제들에게 “부끄럼 없이 인간적인 불행에 가까이 머물기 위해서는 고통 받는 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며 “그들에게 성찬례를 베풀기 위해 그들의 삶을 자신의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왜 안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교황은 “하느님 나라가 오늘날 일으키고 싶어하는 새로움을 기다리며, 열리고 신뢰 가득한 관계와 소통의 장인(匠人)”이 되기를 요청한 것이다.

찬미

교황 서한의 마지막 제안은 “찬미”다.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향한 시선을 열어주고 현재에 희망을 줄 수 있는 찬미를 가르쳐주시는” 성모 마리아를 관상하지 않고 감사와 용기에 대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마리아를 바라보는 것은 따뜻한 애정과 사랑의 혁신적인 힘을 믿는 것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혹시 가끔 우리가 늘 먼지투성이 역사의 길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며 우리의 계획과 우리 자신 안에 갇히고 고립되려는 유혹을 느낄 때, 혹은 싸우고 기다리며 사랑할 의지도 없이 불평이나 반대나 비판이나 비아냥거림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할 때 (...) 당신 백성 가운데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를 관상하고 기념하기 위해 깨어있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온갖 ‘티끌’에서 우리의 눈을 정화시키도록 마리아를 바라봅시다.”

교황은 서한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했다. “형제 여러분, 한 번 더, ‘여러분 때문에 끊임없이 감사를 드립니다(에페 1,16)’ (...) 이 감사가 우리의 형제들을 희망 안에 기름 붓는 사명에 한 번 더 용기를 주고 찬미를 불러 일으키도록 합시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선사하실 수 있는 연민과 자비를, 자신의 삶을 통해 증거하는 이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에는 출처를 밝혀주시고, 임의 편집/변형하지 마십시오)

04 8월 2019, 2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