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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 6세 교황 성 바오로 6세 교황   (@L'Osservatore Romano)

온유하고 혁신적이며 참된 그리스도인 성 바오로 6세 교황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편집장 안드레아 몬다는 41년 전 1978년 8월 6일 선종한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모습을 소개했다. 그는 1900년대 ‘가톨릭 운동’ 역사의 참된 주인공이었다.

Andrea Monda / 번역 이창욱

1978년 8월 6일은 성 바오로 6세 교황(세속명: 조반니 바티스타 몬티니)의 ‘천상 탄일(dies natalis)’이다. 1900년대의 이 위대한 인물에 대한 이해는 하느님 백성 안팎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과의 영적인 가까움을 전혀 숨기지 않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6년 재임기간 동안에는 그 이해가 더욱 증폭됐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선임자인 성 요한 23세 교황의 선종 이후 중단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무사히 재개했고,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을 반포했으며, 최초의 해외 사도적 순방과 교회 일치 운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1897년 9월 26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브레시아 주(州) 콘체시오에서 태어나 냉전과 같은 가장 어두운 시기 중 하나로 기록됐던 그 끔찍한 해에 선종함으로써 20세기의 3분의 2를 거쳐간 그의 삶은 풍성한 모자이크화처럼 수많은 측면을 탐구할 수 있는 인물이다.

정치적 차원 

그 다양한 측면 가운데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말년 생애에서 필자는 그의 정치적 차원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5월 22일부터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실린 사회학자 주세페 데 리타(Giuseppe De Rita)와의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서다. 여기엔 이탈리아와 유럽의 위기, 서양 사회에 대한 커다란 난관의 순간에서 가톨릭 신자들의 역할에 관한 대화가 담겼다. 데 리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는 자연스럽게 성 바오로 6세 교황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1925-1933년 이탈리아 가톨릭 대학 연맹(Federazione Universitarià Cattolica Italiana, 이하 FUCI)의 전국 지도신부를 맡았던 순간부터 1900년대 정치에서 가톨릭 운동사의 참된 주역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 토론에 발제자로 참여한 약 25명의 학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특히 사회 투자 연구원(Centro Studi Investimenti Sociali, CENSIS)의 설립자 주세페 데 리타는 이탈리아 정치가 알치데 데 가스페리(Alcide De Gasperi)가 이끈 기독 민주당(partito della Democrazia cristiana)의 출범을 통해 전쟁의 비극에서 이탈리아가 벗어나는 데 있어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활동이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 강조했다. 이 견해는 이탈리아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긴 역동의 시기에서 또 한 명의 중심인물은 알도 모로(Aldo Moro)였다. FUCI에서 활동하던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몇 년 동안 알도 모로를 알았고, 끝까지 그와 함께했다. 5월 13일 라테라노 대성전에서도 기념비적인 언급을 통해 그를 기억했다. “주님께서는 이 착하고, 온유하며, 지혜롭고, 무고하며, 친구였던, 알도 모로의 안전을 위한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새로운 욥처럼,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기 불과 3개월 전인 1978년 비극적인 봄에 일어난,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악(알도 모로의 암살)에 대해 하느님께서 갚아달라고 탄원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인터뷰 시리즈는 오늘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 괄티에로 바세티(Gualtiero Bassetti) 추기경의 언급으로 끝을 맺는다(세 번째 페이지에서 읽을 수 있다). 바세티 추기경은 다른 대담자들에 의해 부각된 예언이라는 주제에 관한 몇 가지 실마리를 얻으면서, 오늘날의 이탈리아를 위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활동적인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온유하면서도 혁신가들입니다. 신앙과 절제된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에 온유해야 합니다. 혁신이란 세상(세속)의 정신, 곧 이기주의, 허무주의, 소비주의와 외국인 혐오주의를 반대하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예언적인 시선이 필요합니다.” 이탈리아 주교회의(CEI) 의장이기도 한 바세티 추기경은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정치가) 조르조 라 피라(Giorgio La Pira)를 언급했지만, (그 인물에 대한) 묘사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모습에도 아무런 문제없이 적용할 수 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온유하고 혁신적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인 오늘 성 바오로 6세 교황의 천상 탄일을 기억한다. 지난 1978년 8월 6일 고령의 교황은 삼종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훈화를 마무리했다. “그 무엇과도 비할 데 없는 운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영예롭게 했거나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서 받은 책임인 말과 행동으로 논리적인 결과에 맞게 살아간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그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운명을 이미 맛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교회 전체도 그렇게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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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8월 2019, 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