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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하느님과의 일치라고 말씀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월 28일 연중 제17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시는 루카 복음을 설명했다. 교황은 아이들이 아빠에게 수없이 “왜”라고 묻듯이, 아버지와의 소통에 들어가고 그분과 인격적인 관계를 이루기 위해 멈추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고했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루카 11,1-13 참조)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시는 상황을 들려줍니다. 제자들은 히브리 전통에 따른 기도를 바치면서, 이미 기도할 줄은 알았지만, 그들도 예수님의 기도와 똑같은 “품격(qualità)”을 지닐 수 있기를 열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기도가 스승의 삶 안에서 본질적인 차원임을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분의 모든 중요한 행위는 잠시 멈추어 기도를 길게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울러 제자들은 그분께서 당대의 다른 선생들처럼 기도하신 게 아니라, 아버지와의 긴밀한 관계를 이루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매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의) 감미로움을 완전히 맛보기 위해, 이러한 하느님과의 일치의 순간에 참여하기를 열망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제자들은) 외딴 곳에서,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시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묻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명료한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기도에 대한 추상적인 정의를 제시하지도 않으시고, 기도에 관한 기술이나 무엇인가 “얻기” 위한 효과적인 기술을 가르치지도 않으십니다. 반면에 그분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기도의 체험을 하도록 초대하십니다. 아버지와 직접 소통하게 하시며, 그들 안에서 하느님, 곧 아버지와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십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 기도의 새로움이 있습니다! 기도란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대화입니다. 경청에 의해 뒷받침되고 연대적 책임에 열린, 신뢰에 토대를 둔 대화입니다. 성자와 성부의 대화이며, 자녀들과 하느님 아버지의 대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전해주십니다. 이 기도는 아마 천상의 스승님께서 당신의 지상 사명 중에 우리에게 남겨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자의 신비와 형제의 신비를 우리에게 계시하신 다음, “주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하느님의 부성(父性) 안으로 들어가게 하십니다. 저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치실 때, 우리를 하느님의 부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자녀다운 신뢰의 길을 통하여, 그분과 직접적이고 기도하는 대화로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기도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대화, 아들과 아버지와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에서 청하는 것은 독생 성자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곧 이름이 거룩히 빛나고(이름의 성화), 하느님 나라가 오시며(하느님 나라의 도래),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고, 용서와 악으로부터의 해방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청하는 동안, 우리는 받기 위해 손을 펼칩니다. 아버지께서 성자 안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선물들을 받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모든 기도의 요약입니다. 우리는 항상 형제들과의 친교 안에서 아버지께 기도를 바칩니다. 때때로 기도할 때 분심이 생기는 일도 일어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아버지”라는 첫마디에 멈추고,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부성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청하는 친구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끊임없이 간청하여라.” (저는) 세 살배기 아이들의 행동이 불현듯 떠오르네요.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질문하기 시작하는 모습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시기를 “‘왜요?’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기면) 아빠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아빠, (이건) 왜 그래요? 아빠, (저건) 왜 그래요?” 아이들은 이렇게 설명을 청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그 설명을 끝까지 다 듣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을 해댄다는 겁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아이들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그 많은 답들이 (핵심이 아니라는)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들은 단지 아버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왜요? 왜 그래요? 왜요?”라고 묻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의 기도 중에 우리가 첫 번째 말마디에 잘 머문다면, 우리가 아이였을 때 아버지의 시선을 끌어오려고 했던 것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버지, 아빠”라고 부르고, “왜 그래요?”라고 물으면, 그러면 그분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겁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복음을 살기 위해 예수님과 일치하여 “주님의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여인이신 마리아께 우리를 도와주시라고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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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7월 2019, 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