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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지시적 태도를 극복하면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십시오”

교황은 6월 12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알현 훈화를 통해 공동체 차원의 식별을 강조했다. 교황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DNA 안에는, 다양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질에 얽매이지 않으며 하느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일치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다고 강조했다. 훈화를 마치면서 존 통혼(John Tong Hon) 추기경과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과 함께 바티칸을 방문한 홍콩의 다종교 대표단에게도 인사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 2 :

“마티아가 (...)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사도 1,2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우리는 “여행”을 따르는 교리 교육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 여행은 바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복음의 여행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은 복음의 여행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복음처럼 더 멀리, 더 멀리, 더 멀리 (…) 갔습니다.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실, 부활은 다른 여러 사건들 중 하나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원천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명하며, 친교를 이루어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중심으로, 수동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친교를 강화하면서, 하느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준비합니다.

그 첫 번째 공동체는 120 여 명의 형제자매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숫자는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를 나타내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12라는 숫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선택하신 열두 사도들 때문에 교회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난의 고통스러운 사건 이후에 주님의 사도들은 더 이상 열둘이 아니라 열한 명이 되었습니다.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유다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다는 이미 주님과 타인과의 친교에서 벗어났고, 혼자 일했으며, 자신을 고립시키고, 가난한 이들을 이용하면서까지 돈에 집착했습니다. “친구”(마태 26,50)에서 적으로 변하고, “예수님을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사도 1,16)로 변하면서, 교만의 바이러스가 정신과 마음을 감염시키게 하면서까지, 자기 자신을 조건 없이 내어 주는 지평을 상실했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최측근 그룹에 속하고 예수님의 직무에 참여하는 큰 은총을 받았지만, 그리고 어느 순간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신의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루카 9,24 참조). 그는 온 마음으로 예수님께 속해 있었던 것을 중단하고, 그분과 그분 제자들과의 친교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그만두고 스승 위에 올라섰습니다. 그는 스승을 팔아 넘겼고, “부정한 삯”으로 밭을 샀지만, 그 땅은 소출을 내지 못했으며, (오히려) 자신의 피로 물들었습니다(사도 1,18-19 참조).

유다가 삶보다는 죽음을 선호했고(신명 30,19; 집회 15,17 참조), 암흑과 폐허와 같은 악인들의 길을 따랐다면(잠언 4,1; 시편 1,6 참조), 그와 반대로 열한 제자는 생명과 축복을 선택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에서부터 교회에 이르기까지 세세 대대로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데 기여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열두 사도 중 한 사람의 배신으로 상처입은 공동체 앞에서 유다의 직무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누가 유다의 직무를 대신할 수 있는가? 베드로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새로이 사도단에 들어올 사람은 (예수님께서) 요르단에서 세례 받으신 때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곧 예수님의 승천까지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사도 1,21-22 참조). 열두 사도 그룹은 다시 구성되어야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공동체 차원의 식별이 시작됩니다. 공동체 차원의 식별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곧 일치와 친교의 관점으로 현실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후보자는 요셉 바르사빠스와 마티아 두 명이었습니다. 공동체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유다가 (…) 내버린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사도 1,24-25). 주님께서는 제비 뽑기로 마티아를 뽑으시고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열두 사도의 그룹이 재구성되었습니다. 열두 사도의 그룹은 사도들이 제공하는 첫 번째 증언인 친교의 표징이자 분열과 고립, 그리고 사적인 공간을 절대화하는 생각을 이기는 친교의 표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열두 사도들은 사도행전에서 주님의 방식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대한 믿을만한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자신들이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 일치의 은총을 통해 당신 백성들 가운데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계신 분을 돋보이게 합니다. 그분은 누구이십니까? 그분은 바로 주 예수님이십니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 아래에서 살기로 선택합니다. 형제들과의 일치 안에서 말이죠. 형제들과의 일치가 자아의 진정한 선물이 가능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우리 또한 자기지시적 태도들(atteggiamenti autoreferenziali)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은총을 가두지 않고 열등감에 빠지지 않으면서 부활하신 분을 증언하는 아름다움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사도단이 재편성된 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DNA 안에서, 다양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물질과 은총에 얽매이지 않으며 증인들이 되게 하는, 다시 말해 살아계시고 역사 안에서 행하시는 하느님의 빛나는 증인이 될 수 있게 하는 일치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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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6월 2019, 1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