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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진리와 사랑의 언어로 말하면 모두가 여러분의 말을 알아들을 것입니다”

교황은 6월 19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알현 훈화를 통해 성령이 “친교의 주인공”이라며, 인간의 한계와 “모든 스캔들”을 넘어설 수 있게 교회를 도우면서 교회가 성장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성령 강림을 설명하면서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을 이어갔다.

번역 김호열 신부

사도행전에 대한 교리 교육:  3. “불꽃 모양의 혀들”(사도 2,3)

인간의 말을 불타오르게 하여 복음이 되게 하는 성령 강림과 성령의 역동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부활절 50일 후, 이젠 사도들의 집이나 마찬가지인 곳, 주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계시는 곳인 다락방은 사도들을 응집시키는 요소입니다. 그곳에서 사도들은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바를 넘어서는 사건을 겪습니다. 그들은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기도는 모든 세대의 제자들을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허파’입니다. 기도 없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도 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공기입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 삶의 허파입니다. 제자들은 기도 중에 발생한 하느님의 개입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개입은 닫혀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개입입니다. 숨(ruah)과 태초의 입김을 떠올리는 바람의 힘으로 닫혀 있는 문을 열어 젖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떠나기에 앞서 약속하신 ‘힘’을 이루십니다(사도 1,8 참조).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사도 2,2).

바람에 이어, 불타지 않은 떨기나무와 십계명이 선물로 주어진 시나이 산을 떠올리는(탈출 19,16-19 참조) 불꽃이 내려왔습니다. 성경 전통에서 불은 하느님의 현시와 함께 합니다. 불꽃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미래를 여는 생생하고 살아 있는 당신의 말씀을 전하십니다(히브 4,12 참조). 불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밝게 비추며, 감미로운 하느님의 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인간적인 일들에 대해 저항하게 만들며, 정화시키고 새롭게 생기를 돋아나게 하는 하느님의 보살핌을 표현합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온 반면, 오순절에 예루살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를 세우시려고 선택하신 반석, 곧 베드로가 말을 합니다. 힘없고 심지어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말은 성령의 불꽃을 통해 힘을 얻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회심시켰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1코린 1,27).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의 불꽃과 오순절을 가득 채우고, 성령으로 충만한 부활하신 분의 말씀의 힘을 나타내는 ‘불’에서 태어납니다. 새롭고 확고한 계약은 더 이상 돌판 위에 쓰여진 율법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새롭게 하고 육신의 마음에 새겨진 하느님의 영의 행동에 근거를 둡니다.

사도들의 말은 부활하신 분의 영으로 충만했습니다. 새롭고 다른 말이었으나, 모든 언어로 동시에 번역된 것처럼 이해되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사도 2,6) 들었습니다. 이는 보편적인 언어인 진리와 사랑의 언어에 관한 것입니다. 심지어 문맹들도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리와 사랑의 언어는 모든 사람이 알아듣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마음의 진리와 진실과 사랑과 함께 간다면, 모든 사람이 여러분을 이해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을 할 수 없을 지라도, 진실되고 사랑스러운 애정만 있으면 됩니다.

성령께서는 다양성을 통합하고 조화롭게 구성하는 교향곡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실 뿐 아니라,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미하는 악보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성령께서는 친교의 주역이십니다.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 노예들과 자유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려 모두를 한 몸으로 만드는 화해의 예술가이십니다. 성령께서는 몸의 일치와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조화롭게 하심으로써 신자들의 공동체를 세우십니다. 성령께서는 인간의 한계와 죄, 그리고 모든 스캔들을 뛰어 넘을 수 있도록 도우시면서 교회를 자라나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놀라워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이 취했는지 물어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다른 모든 사도들을 대신해서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건을 성령의 새로운 강림을 예언한 요엘 예언서 3장에 비추어 다시 설명합니다. 곧, 예수님의 제자들은 술에 취하지 않았으며, 꿈과 환시를 통해 하느님 백성들 가운데서 예언을 불러 일으키는 “성령으로 절도 있게 취한 것”(la sobria ebbrezza dello Spirito)이라고 암브로시우스 성인이 정의한 대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 예언적 은총은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그 순간부터 하느님의 영은 구원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 마음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으나 하느님께서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사도 2,24) 다시 죽음에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달된 것입니다. 성령을 부어 주신 분은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찬미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강림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직접 오시며, 우리를 당신께로 끌어들이십니다”(강론, 2006년 6월 3일). 성령께서는 거룩한 끌림을 발휘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예수님)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또 역사를 움직이며 새로운 삶을 걸러내는 과정을 시작하도록 우리를 참여시킵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영만이, 그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부터 시작해 모든 상황을 인간화하고 형제화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넓히고, 우리 감정을 그리스도의 감정과 일치시켜, 변화시키는 그분 말씀을 부끄러움 없이 선포하고, 삶에서 만나는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사랑의 힘을 증거할 수 있도록, 우리가 새로운 성령 강림을 체험할 수 있기를 주님께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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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6월 2019, 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