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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나폴리 컨퍼런스, 교황의 신학을 중심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는 6월 21일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를 방문하고 지난해에 이어 교황청립 남부이탈리아신학대학의 예수회원들이 주최한 컨퍼런스에 참가한다. 이번 컨퍼런스는 현실과 관련된 신학을 강조하기 위해 개최됐다. 특히 대화와 교류의 발상지이지만 오늘날 죽음과 갈등의 무대가 된 지중해의 상황에 입각한 몇 가지 쇄신이 눈에 띈다.

Gabriella Ceraso / 번역 이창욱

“그리스도인 신앙의 깊이에서 출발한 신학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현실을 반영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교황님을 연구하도록 이끄는 목표이며 교회의 삶 안에서, 전체적이고 신학적인 분위기에서, 참된 혁신을 나타내는 목표입니다.” 에밀리아 로마냐 신학대학에서 신학사상사과 기초신학을 가르치는 파브리치오 만드레올리(Fabrizio Mandreoli)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적 제안”으로 정의되는 내용을 요약하며 이같이 말했다.

상황 신학

이러한 의미에서 신학대학과 신학연구의 쇄신은 교황령 「진리의 기쁨」(Veritatis gaudium)에 포함된 메시지와 동일하다. 교황령은 우리가 살아가는상황에서 하느님 말씀의 구체성을 얻기 위해 시대의 표징을 식별하는 “상황 신학(teologia del contesto)”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지중해의 상황에서 본 「진리의 기쁨」 이후의 신학”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나폴리 컨퍼런스가 마련됐다. 교황은 포질리포의 교황청립 남부이탈리아신학대학에서 오는 6월 21일 금요일 12시경에 참석하기로 했다. 6월 20일 목요일에 개최되는 이번 컨퍼런스는 영해(Mare nostrum)의 새로운 경계를 특징짓는 도전들, 곧 이민, 상호문화, 대화 등을 먼저 규명한다. 그런 다음 긴장해소의 해결책으로서의 대화와 식별의 장소, 그리고 만남의 장소인 예술 영역에서의 가능한 해결책도 제시한다.

하지만 교황이 제시한 새로운 신학, 다시 말해 지중해의 현실과의 “타협안”이 어떻게 적용되는가? 고립이 아니라 손을 맞잡고 선교활동, 만남, 모든 분야에 대한 대화에 토대를 둔 교황의 가르침과 완전히 연결되는 「진리의 기쁨」 안에 교황이 표현했던 메시지의 근원은 과연 무엇인가? 바티칸 뉴스는 컨퍼런스에서 “지중해 상황에서 어떤 신학을?”이라는 주제로 발제할 파브리치오 만드레올리 교수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만드레올리 교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학적 제안을 설명하면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하 파브리치오 만드레올리 교수와 나눈 일문일답: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큰 제안은 교회의 삶 안에서, 그리고 전통 안에서 성찰하는 제안이지만, 현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검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학이 쇄신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백성이 이미 행하고 있는 모든 체험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체험 안에서 사람들의 문화, 그들의 복합적인 일대기와 복음의 선포 사이의 종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이 진정으로 인간의 삶을 건드리는 이러한 체험을 경청할 때, 우리는 신학을 쇄신하도록 도와주는 기준, 전망, 자극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교회의 삶에서도 이런 일이 좋지 않을까요?

“아주 좋을 겁니다. 교회 전체뿐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에 반대되는 인상을 종종 가지고 있는 사회생활에서도 삶과 구조를 쇄신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기준이나 관점들, 문제들이 교회의 삶 안에, 교도권의 문제 안에, 공동체 생활 안에, 신학교 생활 안에 들어올 수 있는 방편이 됩니다.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실재(현실)가 생각(관념)보다 먼저 옵니다. 반면 우리는 가끔 생각이 모든 현실을 ‘쓸어 담아버린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교황님께서 자주 사용하시는 표현들, 이를테면 “책임을 진다” “타협한다”는 표현과 관련이 있지 않나요?

“매우 그렇습니다. 저는 교황님께서 로마교구를 대상으로 연설하셨을 때 사용하신 표현을 매우 좋아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영성(생활), 교회생활, 놀라지 않을 정도로 인간 삶의 무질서를 지배하고 지탱해줄 수 있는 신학입니다. 인간의 무질서에 관한 용기입니다. 복음은 그 무질서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지중해와 같은 상황에서, 소위 “현실과의 타협”일 수도 있는 「진리의 기쁨」 이후의 신학은 어떤 기여를 해야 합니까?

“첫 번째 도전은 항상 신앙 안에 일치되어 있지만 상황 안에서, 감수성 안에서, 복합적인 신학의 풍요로움을 되찾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신학을 행하는 사람의 모든 주제는 매우 강하다고 느낍니다. 우리의 상황은 신학자들, 학생들, 교수들이 필요하고, 이러한 상황에 이끌린 연구가들이 필요합니다. 물론 지중해에서는, 이러한 커다란 다양성 안에 신학을 행하는 주체들의 다양화가 요청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곧 신학을 탈-성직화하는 겁니다(de-clericalizzare la teologia). 신학적인 관점에서 다른 요소가 필요합니다. 곧, 우리는 교황이 ‘모든 분야에서의 대화’라고 부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에 뿌리를 두고 세상에 주의를 기울이며 소외된 이들을 선택하는 겁니까?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 그들이 무슨 할 말이 있는지 경청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외된 이들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가부장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학대학을 대상으로 한 이것은 ‘마음을 열고, 네트워크를 이루십시오. 하지만 항상 올바른 방향을 잡으며 뿌리를 그리스도에게 접목시키십시오’라는 의미입니까?

“네, 바로 그것입니다.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ietà)와 마음을 열기, 초학문적 연구(transdisciplinarietà), 모든 분야에서 대화하기, 특히 자기지시성(autoreferenzialità)과 자기만족(autosufficienza)의 둥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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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6월 2019, 16: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