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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예수님은 종교면 기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증거자를 원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 강론을 통해 “주님, 당신께서 저의 삶입니다”라고 매일 고백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회심한 두 죄인”의 삶의 증거자, 용서와 예수님의 증거자에 관해 설명했다. 이어 31명의 신임 관구장 대주교들을 위해 팔리움을 축복하고 나누어줬다.

Alessandro Di Bussolo / 번역 이정숙

삶의 증거자, 용서의 증거자, 예수님의 증거자들인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의 모범을 따라, “종교면 편집자(기자)”와 같은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주님, 당신께서 저의 삶입니다”라고 매일 고백하는 증거자들이 되도록 청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6월 29일 토요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임 관구장 대주교 31인을 위한 팔리움 축복 후에 교황은 “회심한 두 죄인”을 소개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름을 불렀고, “그들의 삶은 변화”됐다. 

그리스도는 왜 “회심한 두 죄인” 베드로와 바오로를 선택하셨는가

교황은 베드로와 바오로가 “예수님의 땅에서 로마까지 선교사로 여행을 떠나 설교하는 데 결코 지치지 않았다”며 “이곳(로마)에서 순교자로 생명을 바치며 죽기까지 그분을 증거했다”고 강조했다. 먼저 교황은 두 사도가 “삶의 증거자들(Testimoni di vita)”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의 삶은 바르지도 일정하지도 않았다”며 둘 다 뼛속 깊이 종교적인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큰 잘못들을 저질렀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배반했고 바오로는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신뢰하셨다. 여기서 교황은 “왜 주님께서 전과가 없고 흠 잡을 데 없는 삶의 올바른 두 증거자를 우리에게 주시지 않았는지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며 “왜 요한이 아니라 베드로였을까? 왜 바르나바가 아니라 바오로였을까?”라고 되물었다.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교황은 여기서 중요한 가르침이 나온다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점은 우리의 훌륭함 때문이 아니”며 “주님은 자신들이 훌륭하고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조금 밖에 하실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타인보다 더 똑똑하거나 더 낫다고 생각할 때마다 종말이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탁월함에 끌리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탁월함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자기 자신으로 만족하지 않고 당신께 마음을 열 준비가 된 이들을 찾으십니다. 베드로와 바오로 같은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솔직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오로는 끝까지 솔직했고 겸손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즉각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라고 말했고, 바오로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1코린 15,9)로 스스로를 정의했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베드로는 주님과 동일한 모양새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십자가에 못박혀 순교했다. 바오로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의 이름인 사울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작음”을 뜻하는 표현으로 자신을 부르길 선호했다. 

“두 사람은 성덕이 (자신을) 들어 높이는 데 있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데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성덕은 경쟁시합이 아니라 우리의 가난을 매일 주님께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겸손한 이들과 함께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나약함에서 그들을 앞으로 나아가도록 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주님의 용서였습니다.”

인간적으론 실패자, 그러나 하느님 용서의 은총으로 다시 태어난 이들

교황은 두 사도들이 “용서의 증거자들(testimoni di perdono)”이라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에도 주님의 강력한 자비의 힘과 만났다. 주님은 그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교황은 “그들이 저지른 실패를 생각하며 죄책감을 겪으며 살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했던 일을 얼마나 많이 생각했겠습니까! 수많은 무죄한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던 바오로는 얼마나 많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겠습니까!”

“인간적으로 볼 때 그들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실패보다도 더 큰 사랑, 그들의 죄책감을 치유하는 아주 강력한 용서와 만났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용서를 체험할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용서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용서를 통해 우리가 정말로 누구인지 발견합니다. 우리 죄의 고백을 통해서 말이지요.” 

예수님과의 러브 스토리를 체험한 사람이 증거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오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증인들(testimoni di Gesù)”이라고 교황은 강조했다.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마태 16,13)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모두 주목할 만한 인물이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고 교황은 설명했다. 여기서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라고 대답했다. 교황은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며, 이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가리키는 단어라고 덧붙였다. “예수님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며 미래입니다. 그분은 멀리 떨어져 계셔서 기억되는 인물이 아니라 베드로가 즉각 ‘당신은 그리스도이십니다(tu’ sei il Cristo)’라고 말하는 (우리와 가까이 계신) 그분이십니다.”

“그분의 증거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역사적 인물 그 이상이십니다. 그분은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새로움입니다. 우리가 이미 본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에서 온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새로움입니다. 그러므로 증거자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러브 스토리를 체험한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삶이 곧 그리스도”(필리 1,21)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마태 16,16)이라고 부르며, 바오로도 서간을 통해 “거의 400여 차례 반복합니다! 바오로에게 있어 그리스도는 단지 모델이나 모범사례일 뿐 아니라 판단기준이자 생명 그 자체입니다.” 아울러 교황은 이 두 증거자 앞에서 “나는 예수님과의 만남을 매일 새롭게 하는가?”와 같은 물음을 하도록 초대했다. “우리는 아마도 예수님에 대해 호기심을 갖거나 교회의 문제와 종교 관련 뉴스에 관심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컴퓨터 사이트를 열고 뉴스 페이지를 엽니다. 그리고 거룩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고 있는가?’의 차원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론조사나 과거의 역사, 혹은 통계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종교면 편집자(기자)를 찾지 않으십니다. 하물며 신문의 “제1면”이나 그리스도인의 “통계”를 찾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증거자들을 찾으십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의 삶입니다’라고 매일 말하는 증거자들 말이죠.”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청합시다

교황은 “사도들이 예수님과의 만남과 그분의 용서를 체험하고 나서 새로운 삶으로 그분을 증언했다”며 강론을 마무리했다. “그들은 중간치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바쳤습니다”(2티모 4,6 참조). “우리도 사랑이 차갑게 식도록 내버려두면서 중간치로 살아가는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는 은총을 청합시다. (…)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처럼, 이제 우리에게 물으시고 계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태 16,15)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6) 이 말씀들이 우리 마음을 꿰뚫고 지나가도록 하여, 최소한의 것에 만족하며 머물지 않고 최고를 겨냥하는 열망에 자극을 줄 수 있도록 합시다. 그러면 우리도 예수님의 ‘살아 있는 증거자들(testimoni viventi di Gesù)’이 될 것입니다.”

팔리움, 사목자가 양들을 위해 살아간다는 표징

끝으로 교황은 “최근 1년 동안 임명된 관구장 대주교들을 위한” 팔리움 축복과 관련해 (팔리움이) “목자가 어깨에 짊어지고 가기 위해 부른 양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팔리움이 “목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양들을 위해 산다는 표징”이라고 말했다. 팔리움은 또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 생명을 버리고 봉헌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표징이기도 하다. 현 교황 재임기 동안 이제는 전통처럼 되어 버린 축복식에 참여한 31명의 대주교들에게, 각자 개별 지역 교회에서 거행될 수여 예식에서 교황청 대표가 (팔리움을) 수여할 것이다. 각 대륙에서 온 관구장 대주교들은 이탈리아 살레르노-캄파냐-아체르노대교구장 안드레아 벨란디(Andrea Bellandi) 대주교, 오리스타노대교구장 로베르토 카르보니(Roberto Carboni) 대주교, 시에나-콜레-발델사-몬탈치노대교구장 아우구스토 파올로 로유디체(Augusto Paolo Lojudice) 대주교 등이다. 

총대교구청 사절단에 인사

강론 말미에 교황은 “아름다운 전통에 따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교구청 사절단”이 (미사에) 참례한 것을 기억하며 애정을 담아 인사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는 모든 수준의 친교 안에서, 신자들 간의 온전한 일치를 향한 여정 조차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함께 하느님과 화해하고, 서로를 용서하면서, 우리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증거자들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바르톨로메오 1세 세계 총대주교가 보낸 이 사절단은 텔메소스대교구장 욥 겟차(Job Getcha) 대주교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욥 대주교는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세계 총대주교 대표 겸 정기적으로 열리는 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의 신학적 대화를 위한 국제위원회 공동 의장을 맡고 있다. 멜리테네(말라티아)의 막시모스(Maximos) 주교와 보스포리오스 망가파스(Bosphorios Mangafas) 부제도 동행했다. 

피에타 성당 앞에서 팔리움 수여

예식의 마지막에 교황은 정교회의 대주교와 함께 간단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성 베드로의 무덤(Confessione di San Pietro)으로 내려갔다. 이어 행렬에서 교황과 관구장 대주교들은 미켈란젤로의 대작이 있는 피에타 성당으로 모였다. 관구장 대주교들은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교황의 호명을 받아 팔리움을 받았다. 팔리움은 각각의 대주교가 자신의 교구에서 교황 대사로부터 수여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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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6월 2019, 1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