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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사순 특강 교황청 사순 특강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요한과 바오로의 두 가지 시선”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다섯 번째 사순 특강을 진행했다. “세상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확증한 우주의 블랙홀 영상 때문에 뒤흔들렸습니다. 이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만, 무한히 더 중요한 또 다른 상대성 이론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번역 안주영

성 요한과 성 바오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역사적 순간에 대한 두 개의 서로 다른 신앙의 반영이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견해는 ‘그리스도교의 시작’에서부터 분열이 있었다고 바라보는 ‘치명적 오류’를 극복하면서, 신약성경과 신학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는 지난 4월 12일 금요일 교황청 강론 전담 사제 라니에로 칸탈라메사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교황청 관료들을 대상으로 한 다섯 번째 사순 특강의 시작점이자 핵심 줄거리였다.

“바오로와 요한의 두 가지 견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함께 합쳐지지만, 서로 다른 강조점을 간직합니다. 이는 합류한 두 개의 강물이 오랫동안 각자의 서로 다른 물 색깔을 띠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동방정교회의 신학과 영성은 주로 요한 사도를 기반으로, 서방교회(가톨릭보다 개신교가 훨씬 더)의 신학과 영성은 주로 바오로 사도를 기반으로 합니다.”

요한과 바오로, 신비에 대한 두 개의 다른 시선

칸탈라메사 신부는 두 개의 접근 방식으로 두 가지의 다른 역사적 순간을 반영하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을 설명했다.

“바오로 사도는 존재론적인 사실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의 인격에 강조점을 두기 보다 그리스도의 업적인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에 초점을 맞춥니다. 구원은 단순히 육신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신’(로마 4,25)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중심 사건은 육화가 아니라 파스카 신비입니다. (…) 요한은 한 발 물러나 결정적인 도약을 하여 그리스도 역사의 시작을 (유한한) 시간이 아니라 영원 속에 둡니다.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하느님의 지혜이며 힘이신 십자가

칸탈라메사 신부는 “십자가 위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꾼 그리스도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인용하면서 ”하느님 행하심의 새로움”을 소개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 행하심의 새로움에 관해 말합니다. 이는 거의 단계의 변화이며 방법의 변화입니다. 세상은 피조물의 지혜와 광채 안에서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십자가의 무력함과 어리석음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드러내시기로 결심하십니다.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주장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칸탈라메사 신부는 루터, 칼 바르트,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의 말을 언급하면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내에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한 이방인들의 사도 바오로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 죽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6-8).

그리스도인의 하느님, 가려진 무한한 힘

“성경에서 살아계신 하느님 계시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무슨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칸탈라메사 신부는 신학자 칼 바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답했다. “모든 것을 참아내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에게 당신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셨고 당신에게로 새롭게 이끄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본능적으로 힘의 노선을 따라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에 붙는 칭호는 거의 항상 ‘전능하신’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열면, 우리는 십자가 위에 달리신 하느님의 절대적인 무력함을 묵상하도록 초대받습니다. 복음은 진정한 전능함이란 골고타에서의 완전한 무력함이라고 밝혀줍니다.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거의 힘이 필요하지 않지만, 자신을 한 편에 밀어놓고 없애기 위해서는 많은 힘이 요구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하느님은 자신을 가릴 수 있는 무한한 힘이십니다.”

우리의 응답

칸탈라메사 신부는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하고 복음과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인용하며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묵상한 신비 앞에서 어떤 응답을 드릴 것이며, 성주간에 우리에게 재현될 전례의 신비에 어떤 응답을 드릴 것인가”라는 물음과 관련해 첫째이며 본질적인 응답은 바로 신앙이라고 말했다. 이는 다른 어떤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얻으신 것을 우리가 독차지한 것에 대한 신앙이라고 덧붙였다.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는’(마태 11,12) 신앙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시작했던 물음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다음 말씀으로 자신의 서간을 끝맺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코린 1,30-31).

바오로 사도의 권고

칸탈라메사 신부는 부활절을 진실되고 심도 깊게 살기 위해 ”옛 인간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를 입으라”는 바오로 사도의 권고를 떠올렸다.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것은 단지 악습을 버리고 덕을 쌓는 것뿐만 아니라) “신앙으로 실행해야 하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십자가 앞에 선 이는 신앙의 행위로 자신의 모든 죄, 과거와 현재의 비천함을 십자가에 맡겨드립니다. 이는 자신의 더러운 누더기 옷을 벗어 불 속에 던져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얻으신 정의의 옷으로 갈아 입은 후 성전에서 세리처럼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루카 18,13-14 참조). 이것이 바로 참으로 ‘파스카가 되는 것(fare la Pasqua)’이며, 거룩한 ‘건너감(passaggio)’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음

칸탈라메사 신부는 사랑의 관계들에 대한 구체성을 설명하며 특강을 이어갔다.

“창조 때 하느님께서는 선물, 곧 우리 주변의 장엄한 자연, 지성, 기억, 자유 및 우리 내면의 모든 다른 선물들을 가득 주시면서 우리를 위한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분께는 이것으로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와 함께, 우리를 위해 고통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는 피조물 사이의 관계에서도 일어납니다. 사랑이 꽃을 피울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면서 그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바로 느낍니다. 약혼자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이후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혼인을 하고 나면 한계와 난관들, 성격 차이가 드러납니다. 더 이상 선물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생기 있는 혼인을 유지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짐을 지는 것’(갈라 6,2 참조)과 서로를 위해, 서로가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칸탈라메사 신부는 혼인과 마찬가지로 봉헌 생활자들 또한 하느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한다며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가 보여준 표양을 위대한 본보기로 제시했다. “(마더 데레사를 통해) 하느님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하느님을 위하고 교회를 위해 고통을 받는 것으로 나아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목표지만,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단지 사랑의 새로운 형태의 본보기를 보여주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와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는 은총을 주셨고, 신앙과 성사를 통해 그 사랑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성주간에 우리의 마음에서 교회를 향한 외침이 흘러나오게 합시다. ‘그리스도님, 당신을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12 4월 2019, 0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