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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대성전 파스카 성야 미사 성 베드로 대성전 파스카 성야 미사  (Vatican Media)

“희망을 묻어버리지 맙시다. 무덤의 심리학은 이제 충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0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파스카 성야 미사를 집전했다. 대성전 입구(아트리움)에서 새 불을 축복한 다음, 부활초 행렬과 파스카 찬송이 이어졌으며, 말씀 전례, 세례 전례, 성찬 전례를 거행했다. 이탈리아, 에콰도르, 페루, 알바니아, 인도네시아 출신의 8명의 예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입문성사를 베풀었다.

Barbara Castelli / 번역 이창욱

“(파스카 성야는) 모든 성야(전야제)의 어머니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신 파스카 성야의 전례 거행을 이같이 정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년 중 가장 빛나는 밤에 파스카 성야 미사를 거행하며 모든 이의 마음 안에 주님의 사랑으로 빛나는 미래를 위한 희망의 불을 다시 밝혔다. 이는 인간의 죄, “불만으로 쌓아 올린 탑”, “희망을 묻어버리는” 완고함, 확산되는 “무덤의 심리학”에도 불구하고 “절대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빛나는 미래를 위한 희망의 빛이다.

역사를 가로지르는 빛

파스카 성야를 구성하는 상징들은 인간의 생명과 세상의 삶을 위한 그리스도 부활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전 입구(아트리움)에서 거행한 불의 축복과 부활초의 준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그분의 빛이 어둠의 세상을 가로질렀다는 걸 모두에게 떠올린다. 하느님께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구원 계획을 결정적으로 실현하셨다. 이러한 희망의 지평이 (파스카 성야 미사 시작 전) 어둠에 둘러싸인 성 베드로 대성전 안에서의 파스카 초 행렬을 통해 뚜렷해진다. 교황은 강론에서 인간의 여정은 많은 경우 “돌에 부딪혀” 깨지는 듯 보이고, “걸어왔던 삶의 여정이 결코 목적지에 이르지 못한 것처럼 보이며”, 이처럼 “희망이 좌절된 것이 삶의 어두운 법칙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비록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진 것을 보고 두려워했음에도 “우리의 여정은 헛된 것”이 아니다. 스승의 “무덤에 향료를 가지고 온” 여인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헛된 일이 아니었다.

“부활은 돌을 치우는 축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희망과 기대를 꺾어버리는 가장 단단한 돌을 치우십니다. 곧 죽음, 죄, 두려움, 세속주의를 치우십니다. 인간의 역사는 무덤의 돌 앞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있는 돌”(1베드 2,4), 곧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인 우리는 그분 위에 세워졌고, 우리가 용기를 잃을 때나 우리의 실패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심판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도, 그분께서는 만물을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실망을 뒤바꾸시기 위해 오십니다.”

불만족으로 쌓아 올린 탑을 무너뜨립시다

교황은 무덤가에서 “여인들을 뒤흔들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구절을 떠올렸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루카 24,5) 이 질문은 우리 각자에게 “희망을 묻어버리지” 않고, 우리에게서 치워야 할 돌에 초점을 맞추라고 초대한다. 교황은 “모든 것이 잘못됐으며, 나쁜 상황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 종종 “불신의 돌이 희망을 가로막는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불건전한 낙담의 전달자”나 “냉소적이며 비꼬는 사람들”이 된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돌 위에 돌을 얹으며 우리 안에 불만으로 쌓아 올린 탑을, 희망의 무덤을 쌓습니다. 인생을 불평하며, 삶을 불평에 종속시키고, 영적으로 병듭니다. 이처럼 일종의 무덤의 심리학이 스며듭니다. 살아서 벗어난다는 희망 없이, 그곳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죄악의 돌

아울러 “마음을 봉인해버리는” 두 번째 돌, 곧 죄악의 돌이 있다. 사실 죄는 “잘 사는 것과 성공이 쉽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약속하며 유혹하는 것이지만, 그 다음에는 (우리를) 죽음과 외로움 안에 남겨둡니다.” 이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생명을 찾는 것”, “지나가는 것들에서 삶의 의미”를 좇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은 왜 돈, 경력, 교만, 쾌락이라는 번쩍이는 빛 앞에서 참된 빛(요한 1,9)이신 예수님을 두지 않으십니까? 여러분은 왜 세속적인 허영을 위해 살지 않는다고 생명의 주님을 위해 산다고 말하지 않으십니까?  

변하지 않는 사랑

교황은 예수님의 무덤에 갔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계속 언급하면서, 드물지 않게 “우리는 두려움 안에 몸을 숨긴 채, 우리의 한계 앞에 웅크리고 있기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행동은 “닫힌 마음과 슬픔 안에서 우리가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고 “주님께 자기 자신을 여는 것보다 마음의 어둔 방 안에 홀로 남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일어서고, 당신의 말씀으로 부활하며, 높은 곳을 바라보고, 우리가 하늘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믿도록 우리를 부르신다”고 교황은 권고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 안에서, 언제나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핵심을 바라보시는 그분께서 바라보시듯이 삶을 바라보도록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죄 안에서, 다시 일어서야 할 자녀들을 보십니다. 죽음 안에서, 부활해야 할 형제들을 보십니다. 절망 안에서, 위로해야 할 마음들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삶을 바라보고 삶을 이끌고 나가기를 두려워할 때조차, 주님께서는 이러한 여러분의 삶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삶으로 변화시켜주시고, 우리의 비탄을 춤으로(시편 30,12) 바꾸시는 데 있어서 전문가”이시며, 그분과 함께 “자기폐쇄에서 친교로, 절망에서 위로로, 두려움에서 신뢰로” 넘어가는 “파스카를 우리 또한 완수할 수” 있다. “우리가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야말로 “타협할 수 없는 삶의 확신”이다.

부활하신 분께서 변화시켜주시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십시오

교황은 미사에 참례한 이들과 생방송을 통해 함께하는 이들에게 “박물관에 전시된 신앙”을 갖지 말라고 청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시며” “역사책에서 알게 되는 분이 아니라” “삶에서 만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때때로 우리는 결코 끊이지 않는 우리의 문제들에 대해서만 항상 지향을 넣으면서, 도움이 필요할 때만 주님께 갑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하는 건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입니다. 이는 항상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계신 분을 찾는 꼴입니다. 게다가, 얼마나 자주, 주님을 만난 다음에, 죽은 이들 사이로 다시 되돌아가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변화시켜주시도록 우리 스스로를 내어 맡기지 않고, 탄식이나 후회나 상처와 불만을 다시 끄집어내며 우리 안에서 방황하는지요.”

여기서 교황은 “부활하신 분에게 삶의 중심 자리를” 내어드리라고 권고했다. 교황은 8명의 예비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세례 성사, 견진 성사)를 베풀기 전에 다음과 같이 강론을 마무리했다. “현실에 무릎꿇거나 곤경의 바다에 굴복하지 않는 은총, 죄악의 돌, 불신과 두려움의 암초에 부딪히지 않는 은총을 청합시다. 모든 면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그분을 찾읍시다. 우리는 그분과 함께 부활할 것입니다.”

20 4월 2019,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