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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ANSA)

“다른 이들을 용서하십시오. 모든 것은 정의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알현에 참석한 5만여 명의 신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인간 관계 안에 용서의 힘을 불어 넣어주신다면서, 다른 이들을 용서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했다. 교황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라는 구절에 집중하면서 “주님의 기도”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번역 김호열 신부

“주님의 기도”에 대한 교리 교육:  13.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다른 이들을 용서하십시오. 모든 것은 정의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마태 6,12)라는 표현에 집중하면서 “주님의 기도”의 다섯 번째 청원에 대한 교리 교육을 마무리합시다. 우리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빚지고 있는 존재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자연과 은총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단순히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것뿐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손을 모아 기도할 때 실제로 (혼자 잘났다고) 자만할 여지는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제 스스로 창조된 사람”, 곧 저 혼자서 만들어진 사람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을 비롯해 우리에게 유리한 생활조건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받은 좋은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받은 좋은 것 가운데 첫 번째는 ‘생명’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법을 배웁니다. 우리는 자주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걸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이기적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배우며, 사람들에게 친절할 수 있기를 하느님께 청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서는 늘 채워질 수 없는 빚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빚을 결코 갚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만큼, 우리 삶에는 항상 용서를 구할 무엇인가가 남아있을 것입니다. 게으르게 지낸 날들, 우리 마음이 원한으로 가득 찬 순간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봅시다. 유감스럽게도 적지 않은 이러한 경험들이 “주님, 아버지, 저희 죄를 용서하십시오”라고 간청하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 부분(“저희 죄를 용서하십시오”)에서만 청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이 부분과 함께 하나를 이루는 또 다른 부분(“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을 추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산산조각내신 수직적인 자비의 관계는 형제들과 함께 사는 새로운 관계, 곧 수평적인 관계로 변화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가 선한 사람이 되라고 초대하십니다. 청원의 이 두 부분은 놀라운 접속사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 친구와 우리 가까이 사는 사람들, 우리 이웃들, 그리고 우리에게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처럼”, 주님께 우리의 잘못과 죄를 용서해주시길 청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을 위한 죄의 사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용서하시며, 항상 용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모습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부드러운 자비의 표현으로 설명하십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들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루카 15,7.10). 복음서들에서는 그 어떤 것도, 잘 준비가 되어 있고 다시 받아 들여질 것을 청하는 사람들의 죄를, 하느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풍성한 은총은 항상 의무적입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받은 것을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내어주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주님께서) 일곱 가지 표현을 사용한 “주님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다음) 형제애적 용서를 강조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이는 대단한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사람들이 “나는 그 사람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나에게 한 짓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도 여러분을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 여러분이 문을 닫는 것이니까요.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혹은 용서할 수 없는지를 생각해봅시다. 제가 다른 교구에 있을 때, 신부님 한 분이 자신의 절망감에 대해 저에게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 신부님은 임종을 눈앞에 둔 한 노파에게 병자 성사를 베풀러 갔습니다. 불쌍한 그 노파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신부님은 노파에게 “할머니, 자신의 죄를 회개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노파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해 성사는 할 수 없었지만, 신부님의 질문에 “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이어 신부님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다른 이들을 용서하십니까?” 그런데 노파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그러자 신부님은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 함께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용서하는가, 혹은 용서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봅시다. “신부님, 저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너무나 힘들게 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떻게 할 수 없으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주님, 제가 용서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사이의 접합을 찾습니다. 사랑은 사랑을 부르고, 용서는 용서를 부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우리는 형제애적 용서에 대한 매우 강렬한 비유를 발견합니다. 함께 들어 봅시다(마태 18,21-35 참조).  

왕에게 큰 빚을 진 종이 있었습니다. 만 탈렌트나 되었습니다!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오늘날 화폐 단위로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큰 금액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종은 빚 상환의 기한을 연장 받은 것이 아니라, 빚 전액을 탕감 받았습니다. 뜻밖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종은 빚을 탕감 받은 직후,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밖에 안 되는 작은 금액을 빚진 동료를 상대로 화를 냅니다. 충분히 빚을 갚을 수 있는 작은 금액임에도 불구하고 그 종은 동료의 사정이나 간청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결국, 주인은 그 종을 다시 불러 판결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용서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용서 받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 관계 안에 용서의 힘을 불어넣으십니다. 인생에서 모든 것이 정의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악을 막아야 하는 곳에서, 은총의 역사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책임이나 해야 할 바를 넘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악은 복수를 알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중단시키지 못한다면, 복수는 세상을 질식시키며 퍼져나갈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나에게 한 대로 나도 당신에게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보복의 법칙을 사랑의 법칙으로 바꾸십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그것을 상대방에게 돌려준다는 것이죠. 아름다운 부활 팔일 축제 주간을 보내는 오늘, 나는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를 생각해봅시다. 만약 나에게 그러한 능력이 없다면, 용서할 수 있는 은총을 주님께 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용서할 줄 아는 것은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형제들의 삶에, 특히 우리에게 실수를 했거나 잘못한 일을 저지른 사람들의 삶에, 선의 역사를 쓸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우리가 받은 가장 소중한 것들을 말과 포옹과 미소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용서’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어야 하는 용서입니다. 고맙습니다.

24 4월 2019,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