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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단죄의 돌을 던지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길을 여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순 제5주일 삼종기도에서 두 가지 태도가 대조되는 간음한 여인에 관한 복음사화를 묵상했다. 곧,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들의 태도와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화시키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시는 예수님의 태도다.

번역 이창욱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 사순 제5주일 전례는 간음한 여인의 사화(요한 8,1-11 참조)를 우리에게 소개해줍니다. 이 사화 안에는 두 가지 태도가 대조됩니다. 한편에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태도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예수님의 태도가 있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그 여인을 단죄하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율법의 보호자로 자처하며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길 원했기 때문이죠. 반면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구원하길 원하셨습니다. 죄를 용서하시며 구원하시고, 화해시키시며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체화시키는 분이시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사건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실 때,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간음하다가 붙잡힌 여인을 그분에게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그녀를 가운데에 세워놓고, 모세의 율법에 규정된 대로 돌을 던져 죽여야 할지를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복음사가는 그들이 이런 질문을 한 이유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요한 8,6) 그런 것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사악한지 보십시오. 곧, 돌을 던져 죽이는 것에 예수님께서 “아니오”라고 대답한다면, 율법에 불순종한다고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이와 다르게 예수님께서 “네”라고 대답한다면, (재판 없이 대중에 의해 행해지는) 즉결 처형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에게만 판결권을 유보했던 로마 당국에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한 이유가 될 터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 질문하던 이들은 율법주의의 덫에 갇혀있었고 자신들의 심판과 단죄라는 관점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가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심판하고 단죄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게 아니라,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이 시험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잠시 침묵 속에 계시다가,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는 돌판 위에 율법을 쓰셨던 하느님이야말로 유일한 법률제정자요 심판관이심을 기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이런 식으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셨습니다. 곧, 그들은 스스로를 “정의의 수호자”로 느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역시 죄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현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도 (감히) 같은 처지에 있는 이웃의 생명이나 죽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자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다시 말해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더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을 시작으로 하나둘씩 떠나갔고, 그 여인에게 돌 던지기를 포기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 각자가 죄인이라는 의식을 갖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종종 타인을 반대하며 던지고 싶어하는 비방과 단죄, 험담의 돌을 우리 손에서 내려놓도록 말이죠. 우리가 다른 이들을 향해 험담을 던질 때, 우리는 돌을 던지는 셈입니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셨습니다.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를 “비참과 자비의 만남”이라고 표현했습니다(「요한 복음 해설」, 33,5).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유일한 분이시고,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을 기뻐”(에제 33,11)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말씀으로 여인을 떠나 보내십니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녀 앞에 자비로부터 창조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 길은 더 이상 죄짓지 않겠다는 책임을 요구합니다. 이는 우리 각자에게도 해당하는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때 항상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 사순 시기에 우리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란 우리가 우리와 화해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며, 우리로 하여금 쇄신된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듭니다. 모든 참된 회심은 새로운 미래, 새로운 삶, 아름다운 삶, 죄로부터 자유로운 삶, 너그러운 삶을 향해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용서 청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동정 마리아께서 예수님 안에,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존재를 새롭게 해주시며,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 넘치는 사랑을 모든 이에게 증거하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07 4월 2019, 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