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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ican News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AFP or licensors)

교황, 2019년 홍보주일 담화 발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3차 홍보주일 담화문을 통해,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대화와 만남의 기회로서의 상호작용의 가치를 강조했다.

번역 김단희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에페 4,25)

소셜 네트워크 공동체에서 인류 공동체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인터넷 사용이 상용화된 이래로 교회는 늘 민족들 간의 만남과 인류의 연대를 위한 목적으로 인터넷 활용법에 대해 고심해 왔습니다. 저는 오늘 이 담화를 통해 여러분이 ‘관계 안에 있는 존재(being-in-relation)’라는 중요성과 그 바탕에 대해 숙고하고, 오늘날의 방대한 커뮤니케이션의 맥락의 어려움 속에서 홀로 외롭게 고립되고 싶지 않다는 인간 존재의 본성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물망과 공동체 비유

오늘날 미디어 환경은 일상의 영역과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습니다. ‘인터넷(The Net)’은 우리 시대의 ‘자원’입니다. 인터넷은 이제 이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지식과 관계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과 유통 그리고 콘텐츠의 사용 과정과 관련해 기술이 가져다 준 중대한 변화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또한 전 세계적으로 ‘진짜’ 정보를 검색하고 공유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여러 위험 요인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무한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인터넷 공간에는 허위 정보가 난무하며, 의도적으로 특정 사실과 인간관계를 왜곡하는 등 상대방을 깎아 내리기 위한 목적에 인터넷이 노출돼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사회 연결망(social networks)은 우리가 서로 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새롭게 발견하고,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정치∙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개인과 그의 권리에 대한 존중 없이 개인 정보를 조작하는 행위에 우리가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사실도 이해해야 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의 4명 중 1명은 사이버상의 폭력인 ‘사이버불링(cyberbullying)’ 사건과 연관돼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인터넷의 긍정적 잠재력을 재발견하기 위해, 인터넷의 기반이 되는 ‘그물망(net)’에 대한 비유를 숙고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그물망’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중심이나 위계 구조, 수직적 조직 체계 없이 안정성을 보장하는 여러 개의 선과 선들의 교차가 상징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네트워크’란 곧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책임을 나눠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그물망’의 비유는 ‘공동체’라는 또 다른 의미 있는 관념을 떠올립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화합을 이루고 서로를 지지할 때, 신뢰감을 바탕으로 한 활기가 넘칠 때, 공동의 목표를 추구할 때, 그 공동체는 더욱 강해집니다. 공동체가 ‘연대의 네트워크’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책임 있는 언어 사용을 바탕으로 한 상호 간의 경청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오늘날의 사회 연결망 공동체가 의미하는 바는 ‘공동체’의 참된 의미와 같지 않습니다. 간혹 이 가상의 공동체들이 화합과 연대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지만, 주로 공통의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유대가 약한 ‘개인들의 집단’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인터넷상에서는 자신이 속한 집단 밖의 사람, 타인과의 대립을 바탕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상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자주 서로간의 공통점이 아닌 차이점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규정해 의심을 야기하며, 민족적, 성적, 종교적 편견 등 온갖 종류의 편견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러한 경향은 결국 다양성을 배척하는 집단, 디지털 환경 안에서 증오의 소용돌이를 조장하는 노골적 개인주의를 양산하는 집단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세계의 ‘창’이 돼야 할 인터넷이 개인의 나르시시즘을 전시하는 ‘쇼윈도’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도모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미줄(web)에 걸려 스스로를 고립(self-isolation)시킬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관계 차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한편,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시켜 “사회적 은둔자(social hermit)”로 전락해버리는 위험한 현상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극적인 상황은, 사회적 관계 영역에서의 심각한 분열을 드러내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위험한 사회 현실은 윤리적, 사회적, 법적, 정치적, 경제적 차원에서 다양한 의문을 제기할 뿐 아니라 교회에게 있어서도 큰 도전입니다. 각국 정부들이 인터넷을 규제하면서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안전한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인터넷의) 본래의 비전을 지키기 위한 법적 장치를 구축할 동안, 우리 또한 인터넷의 긍정적 용도를 장려할 책임이 있으며, 그러한 노력에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상호 이해 증진을 위해서는 연결망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온라인상에서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하면서, 우리의 진정한 공동체적 정체성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몸과 각 지체의 관계에 관한 세 번째 비유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 바오로 사도는 각 지체가 유기체로서 하나의 신체를 이룬다는 비유를 통해 사람 사이의 상호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벗어 버리고 ‘저마다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십시오.’ 우리는 서로 지체입니다”(에페 4,25). 서로의 지체가 되라는 심오한 동기부여의 가르침을 통해 바오로 사도는 우리로 하여금 ‘거짓’을 벗어버리고 ‘진실’을 말하라고 촉구합니다. 진실을 지키는 의무는 친교의 상호적 관계를 부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됩니다. 진실은 친교 안에 있습니다. 거짓은 우리 모두가 하나의 몸에 속한 지체라는 사실을 모르는 척 하겠다는 이기적인 거부에 불과합니다. 거짓은 다른 이들에게 나를 내어주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을 발견할 유일한 방법을 잃게 됩니다.

몸과 지체의 비유는 친교와 “타자성(otherness, 다름)”에 근거한 우리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둔 하나의 몸에 속하는 지체들입니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지 않도록 하며, 우리의 원수까지도 하나의 ‘인격(person)’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을 규명하기 위해 적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선(all-encompassing gaze)’으로 새로운 관점에서 타자성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자성은 관계와 친밀함의 필수 요소이자 조건입니다.

인류 가운데 존재하는 이러한 이해와 소통의 능력은, 삼위일체 안의 세 위격 사이의 사랑의 친교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고독’이 아니시며, ‘친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랑이시며, 따라서 소통이십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언제나 소통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사랑은 다른 이들과 만나기 위해 스스로를 전달(소통)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소통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을 전달하시기 위해 인간의 언어를 취하시어 역사 속에서 인류와의 진정한 대화를 이뤄내셨습니다(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 헌장 『하느님의 말씀』(Dei Verbum), 제2장 하느님 계시의 전달 참조).

친교이시며 자기소통(communication-of-self)이신 하느님의 형상을 닮게 창조된 우리 인간은, 친교의 삶에 대한 갈망과 공동체에 소속되고자 하는 바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성 바실리오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특징만큼 우리 인간의 본성에서 명확한 것은 없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우리 모두로 하여금 ‘관계’에 좀 더 치중하고, 우리 인류의 대인관계적 본성을 긍정하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은 네트워크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특징짓는 친교의 증거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신앙은 그 자체로 ‘관계’이며 ‘만남’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격려 아래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소통할 수 있으며, 그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형상으로 표현되는 친교는 각 개인으로부터 인격적인 특성을 구분해줍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인간적이고 참으로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사실 “사람(person)”이라는 단어는 인간 존재를 “얼굴(face)”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타인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타인과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 삶의 본질이 덜 개인적(individual)이고 더 인격중심적(personal)이 될수록 우리 삶은 더 인간적(human)이게 됩니다. 이웃을 경쟁상대로 여기는 ‘개인’에서, 이웃을 인생 여정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인격적 존재’로 변모하는 과정의 예를 통해 우리는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되는) 참된 길을 발견합니다.

“좋아요”에서 “아멘”으로

몸과 지체의 비유는 또한 인터넷을 통한 소통이, 상대방의 몸과 마음, 눈과 시선, 그리고 숨결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나는 ‘실제 만남’을 보완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만약 인터넷이 이러한 실제 만남의 연장이나 기대로 기능한다면,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친교의 ‘자원’으로 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한 가정이 서로 더 가까워지고, 식탁에 둘러 앉아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 인터넷을 활용한다면, 인터넷은 하나의 자원으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만약 교회 공동체가 인터넷을 통해 활동을 기획하고 함께 만나 성찬례를 거행한다면, 인터넷은 자원으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만약 인터넷을 통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고통의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이 함께 기도하고 우리를 일치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발견하고자 함께 선을 찾아 나서게 된다면, 인터넷은 자원으로서 기능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우리는 ‘진단’의 단계에서 ‘치료’의 단계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대화와 만남의 길을 열고, “미소”와 애틋한 마음(tenderness)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네트워크입니다. 사람을 옭아매는 덫이 아니라 해방시키는 도구로, 자유로운 사람들의 친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네트워크입니다. 교회 또한 ‘친교의 성사’인 성체성사로 함께 엮인 네트워크입니다. 교회 안의 일치는 “좋아요” 버튼이 아닌 ‘진리’, 곧 “아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서 타인들을 받아들입니다.

 

바티칸에서

2019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프란치스코

24 1월 2019,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