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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일반알현 수요 일반알현  (Vatican Media)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그 순간부터) 외로움과 절망에 대한 승리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9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진행한 “주님의 기도”에 관한 수요 일반알현 교리 교육의 중요한 핵심 내용 중 하나다.

번역 김호열 신부

 

“주님의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  4. 두드리십시오, 열릴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그 어떤 기도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교리 교육은 루카 복음을 참고하겠습니다. 사실, 루카 복음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기도로 충만한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루카 복음 안에는 매일 교회의 기도를 나타내는 세 개의 찬송가가 있습니다. 바로 베네딕투스(Benedictus, 즈카르야의 노래), 마니피캇(Magnificat, 성모의 노래), 누크 디미티스(Nunc dimittis, 시므온의 노래)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관한 이번 교리 교육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예를 들어 루카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기도의 순간에 일어납니다. 이에 대해 루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루카 9,29). 예수님 생애의 모든 순간은 마치 그분의 모든 행동을 인도하시는 성령의 입김으로부터 활력을 얻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르단에서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셨고,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아버지와 대화하셨으며, 기도하시려고 자주 홀로 외딴곳으로 가셨으며, 자신을 곧 배반하게 될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처럼 체질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루카 22,31-32).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고, 나를 위해 기도하시며, 우리 각자를 위해 기도하신다는 이러한 사실이 우리를 위로합니다. 이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그런데 신부님, 여전히 그렇게 하십니까?”고 반문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한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에 대해 우리 각자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저에게 필요한 그 기도를 계속 해주십시오.” 이처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메시아의 죽음 조차 기도의 분위기 속에 빠져들어 있으므로, 수난의 시간까지도 놀라운 평온함으로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을 위로하시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선한 도둑에게 천국을 약속하시고, 다음과 같이 외치시며 숨을 거두셨습니다.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예수님의 기도는 가장 격한 감정과 보복과 복수의 욕망을 약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며, 사람을 자신의 무자비한 적과 화해시키시고, 사람을 죽음이라는 적과 화해시키십니다.

또한 루카 복음 안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기도하는 법을 배우려는 제자들 중 한 사람의 요청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그들이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께 청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 당신께서 저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기도할 수 있도록, 저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라는 이 요청에서, 상당히 광범위한 가르침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당신 제자들에게 어떤 말과 어떤 감정으로 하느님께 청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십니다.

그 가르침의 첫 부분이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렇게 기도 하십시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란 말은 너무 아름다운 말입니다. 우리는 기도 시간 내내 “아버지”라는 이 말 하나만으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겁니다. 주인이나 의붓아버지가 아니라 (진짜) 아버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을 그 무엇보다 먼저 “아버지”로 부르면서 하느님께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주신 이 가르침 안에서, 기도문을 꾸미고 있는 몇 가지 지시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려고 몇 가지를 설명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친구를 찾아가 잠자리에 든 가족 전체를 귀찮게 하는 친구에 대한 비유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벗이 갑자기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에게 들렀는데 대접할 빵이 없다며 다른 친구를 찾아가 귀찮게 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을 두드리고 친구를 깨우는 이 사람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루카 11,9). 이 설명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방법과 꾸준히 기도하기를 가르쳐 주고자 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배고픈 아들이 있는 아버지의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여기 계시는 여러분 중에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은 여러분의 아들이나 손자들이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음식을) 달라고 보채고, 울고, 배가 고파서 소리지른다면,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루카 11,11) 여러분 모두는 자녀들이 (먹을 것을) 원할 때, 자녀들을 위해, 자녀들이 원하는 먹을 것을 준 경험을 다들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응답하시며, 그 어떤 기도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로 남아있지 않을 것임을 이해하게 해주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아버지이시고, 고통받는 당신의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설명들이 우리를 위기에 빠뜨리게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많은 기도들이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청했을 때 얻지 못했던 것을, 많은 경우 문을 두드렸지만 문이 열리지 않고 닫혀 있었던 것을, 우리 모두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순간들에도 집요하게 청하며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기도는 항상 현실을 변화시킵니다. 항상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의 일들이 바뀌지 않는다면, 적어도 우리 자신을 바꾸고 우리 마음을 바꿉시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대답하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유일한 불확실성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께서 응답하실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평생 동안 집요하게 청해야 되는 것은 우리 몫이 되겠지만, 하느님께서는 대답하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생선 대신에 뱀을 주는 아버지가 아니십니다. (이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곧,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행복에 대한 열망은 언젠가는 성취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시지 않겠느냐?”(루카 18,7) 네, 하느님께서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시고, 우리에게 귀를 기울여 주실 것입니다. 그날은 영광과 부활의 날이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그 순간부터) 외로움과 절망에 대한 승리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기도는 현실을 바꾼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건들이 바뀌거나 우리 마음이 바뀝니다. 항상 바뀐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그 순간부터) 외로움과 절망에 대한 승리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역사의 무감각 안에서 무리 지어 있는 피조물의 모든 조각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움직이고 있으며,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길의 끝에, 우리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의 끝에,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이 끝날 때, 삶의 끝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곳에는 팔을 활짝 벌리고 모든 것과 모두를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그러한 아버지를 바라봅시다.

 

09 1월 2019, 0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