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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교황, SEDAC에 “성 로메로 대주교처럼 여러분은 불의와 가난에 반하는 목소리여야 합니다”

지난 1월 24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나마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중앙아메리카 주교들을 만나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모범을 따라 교회는 거만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며 가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Giada Aquilino / 번역 이창욱

75년 전 파나마,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의 주교단으로 구성된 ‘중앙아메리카와 파나마 주교 사무처(Segretariato episcopale dell'America Centrale, 이하 SEDAC)’ 주교들에게 행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은 교회 전체와 하느님 백성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었다. 교황은 파나마의 중심에 위치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중앙아메리카 주교들을 만나 포옹하면서 그들 중에는 “젊은이들의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모범

SEDAC 의장 호세 루이스 에스코바르 알라스(José Luis Escobar Alas) 대주교는 인사말을 통해 폭력, 부패, 불평등, 이주 등을 비롯해 무엇보다 가장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회적 소외로 두드러진 “슬픈” 현실의 역사적 순간을 강조했다. 이어 교황은 중앙아메리카의 “소박하지만 시련을 거친” 신앙을 나타내는 “가난한 얼굴”을 바라보며 “비전을 넓히고” 경청, 이해, 헌신, 책임을 다하는 일에 있어서 “힘을 합치라”고 참석한 주교들을 격려했다. 교황은 스페인어로 연설하면서, 지난 1980년 3월 24일 ‘신앙에 대한 증오(odium fidei)’로 피살됐다가 지난 10월 14일 시성된 산살바도르대교구장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모범이야말로 중앙아메리카의 자녀들이 (보여준) 모범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 사제들, 남녀 수도자들과 평신도들이 불의 앞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난과 권력의 남용 앞에서, 교회의 살아있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피를 흘리면서까지 목숨을 바쳤습니다.”

중앙아메리카 교회의 DNA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동냥”이 아니라 “소명”으로, “자비의 활동을 살고자 노력하며, 스스로 고민하고, 온 힘을 다 쏟으라는 부르심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교회와 주교들을 위한 “영감의 영속적인 원천”이었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이어 교황은 원고 없이 덧붙이기를, 자신의 전임 부에노스아이레스대교구장이었던 안토니오 콰라치노(Antonio Quarracino) 추기경이 로메로 대주교야말로 충실함에 있어서 노벨상 후보였다고 말했음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주교들처럼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도 많은 주교들의 사적인 험담으로 의심을 받고, 파문의 위기에 오르기도 했으며, 비난의 대상이 됐다. “교회와 함께 느끼기”는 “가장 혼란한” 순간에도, 그의 충실한 삶을 특징짓는 “나침반”이었고, “순교적인 헌신”으로 발전했기에, 교황은 “매일의 봉사(적 삶) 안에” 있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이를 다시금 제안했다. 다른 한편,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모습을 강조하는 것은 중앙아메리카 교회의 DNA를 살아가는 예언자적 특징과 성덕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신앙 안에서 그를 탄생시켰던 분을 친밀하게 사랑하셨기 때문에 교회적 삶을 배우고 동조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친밀한 사랑 없이 그분의 역사와 회심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이 순교로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그를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전적으로 거저 주어진 무상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생겨나는 그 사랑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소유자나 유일한 해석자라고 믿는 유혹과 모든 요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줍니다. 우리가 교회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와 함께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우리 없이도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분명한 손길

교황은 순교란 “무기력과 동의어가 아니”라며 “생명을 사랑하지 않고 (생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했다. 순교자는 은총의 보답을 “육화시키고 삶으로 해석할” 단계에 있는 사람이다. 산살바도르대교구장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그를 “신앙 안에서 탄생시켰던” “어머니이신 교회를 사랑했고”, 자신을 “교회의 지체요 일부”로 느꼈으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교도권의 쇄신과 공헌”을 받아들였다.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바로 거기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한 분명한 손길을 발견했습니다. 이론가도 아니고 관념론자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공의회 문헌을 통달한 데서 나왔습니다. 이런 교회의 지평으로 빛을 받았기에,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에게 있어서 교회와 함께 느낀다는 것은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관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심장의 고동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하느님 백성 앞에서 “자신의 영감을 거부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찾고 만나기 위해서, 목자는 하느님 백성의 심장의 고동소리를 듣고 배워야 하고, 그들의 기쁨과 희망, 그들의 슬픔과 고뇌를 품기까지 오늘날 사람들의 ‘냄새’를 맡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 말씀을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을, 그 사람들을 통해 발견하고 숨쉬기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랑만이 우리를 동등하게 느끼고 동등하게 바라보고 우리의 모든 사랑을 조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분법이나 거짓 대립은 없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가난한 교회

교황은 사람들과 비슷하게 되시기 위해 종의 형태를 취하시며, 당신 자신을 비우셨던 그리스도의 케노시스(kenosis)에 대해 설명했다.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가운데 살아계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겸손하고 가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만한 교회, 자부심으로 가득 찬 교회, 자기 만족으로만 그치는 교회는 케노시스(kenosis)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상처 입은 삶 앞에서 감동

교황은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의 강론을 인용하면서, 하느님께서는 “역사 안에서, 모든 사람의 삶 안에서 구원하신다”고 강조했다.

“형제 여러분, 우리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우리의 상처이기도 한 그들의 상처를 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님의 스타일로 이런 행동을 해야 합니다. 목자는 자기 백성의 고통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목자의 마음은 상처 입고 위협당하는 수많은 삶 앞에서 감동하는 능력으로 측정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길거리에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훔쳐야 합니다

교황은 “연결을 조성하도록 우리를 선동하는 실제적인 사람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소음”을 들으며, 그와 같은 고통이 충격을 주고 “소유”와 “취향”, “시간과 돈의 사용”, 기도하는 방식을 특징 지워야 한다고 주교들에게 제안했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멈추어 선” 신앙을 말하는 것이 될 터이고, 더 나쁜 경우에는, 그리스도 없는 하느님, 교회 없는 그리스도, 하느님 백성 없는 교회라는 종교가 되고 만다. “유일한” 기회는 바로 “희망과 열망”과 “수많은 상처”로 특징을 이루고, “우리 젊은이들의 현실에 더욱 더 가까이 다가가고 만나러 가는 것”에 동의하며, 원주민들에 대한 관심(이점에 대해서 교황은 감사했다)과 아프리카 태생의 국민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시작된 세계 청년의 날이다. 교황은 청년들이야말로 “우리가 공동체로서, 그리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느 시점에 와 있는지” 알기 위한 “지표”가 된다고 강조했던 젊은이 주교 시노드 최종문헌과 경험을 떠올렸다. 많은 청년들의 “열망과 통찰”은 “가정 안에서” 발전되고, “교리교사”나 “본당에서, 교육 사목이나 청년 사목에서” 길러진다고 강조했다. 혹은 할머니에 의해서도 길러진다. 이와 관련해서는 교황이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교황님, 할머니들도 시끄럽습니다!”라는 문장이 담긴 포스터를 들고 있는 “빼빼 마른 할머니”에 의해서도 길러진다. (교황은 이들을) 경이로운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교회는 그 본성상 어머니이고 교회 발전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며 그와 같은 어머니로서 생명을 낳고 기릅니다. 자유 안에서,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 잉태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젊은이들과 동행하고, 그들을 지지하며, 그들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교육 센터와 프로그램을 증진시키도록 권고합니다. 제발 ‘그들에게 허풍을 떨면서’ 마술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거나, 그들의 불안과 상상을 빼앗고 이용하는 죽음의 문화가 되기 전에, 길거리에서 ‘그들의 마음을 훔치십시오.’ 위로부터 아래로, 가부장주의(paternalismo)로 대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형제들에 대한 형제로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는 위로부터 아래로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로 도달하는 것입니다.”

비정상이 되어버린 사회

불행하게도, 많은 젊은이들이 “삶을 담보로 하는 즉각적인 답변에 유혹되고” “시급한 해결책 없이 극심한 갈등에 빠지는 상황”에 있다고 교황은 지적했다.

“가정 폭력, 여성살해(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대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무장조직과 범죄조직, 마약 밀매, 미성년자,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닌 이들의 성적 착취 등. 이러한 상황의 바탕에는 대부분 ‘비정상이 된(impazzita)’ 사회와 문화의 결과인 고아의 경험, 곧 어머니가 없는 고아의 경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를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많은 경우 가정은 사람들과 공동선을 첫 자리에 두지 않으며, 누구의 희생인지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계속해서 비대해지는 경제 시스템, 심지어 ‘낙원’으로 여기는 그 경제 시스템에 의해 소모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우리의 젊은이들도 가정의 따스함 없이, 가족 없이, 공동체 없이, 소속 없이, 최고 사기꾼의 손에 맡겨져 버렸습니다.”

목소리를 높이십시오

미래는 “여러분 민족의 문화가 존엄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문화를 활용하도록 노력하면서” 현재를 존중할 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문화적 자존감 내에서도” 존엄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여러분의 사람들이 사회나 그 누구의 ‘B팀’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황의 권고는 “어느 곳이든 부패를 퍼뜨리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강탈하며 성장하는 거짓된 이익” 앞에서, 지역의 풍요로운 역사적, 문화적, 영적 유산을 보호하면서, “뿌리를 돌보라는” 것이었다.

“많은 어려운 순간에 존엄성을 유지시키는 필수적인 생명의 특권을 앗아가기에, 근본적인 빈곤을 낳는 여러분 민족의 영적 사막화에 반대하고, 문화적 사막화를 거슬러 전력을 다하고 목소리를 높이십시오.”

이주자들을 위한 교회의 모성

아울러 지난해 10월 주교 시노드 총회에서 강조된 것처럼, 수많은 이주자들의 “젊은 얼굴”에 관해서도 존엄성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교황은 파리대교구 총대리 브느와 드 신느티 (Benoist de Sinety) 몬시뇰이 최근 펴낸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이주자들을 환대하기, 용기에의 호소』(Il faut que des voix s’élèvent. Accueil des migrants, un appel au courage)라는 저서를 인용했다. 교황은 책의 내용이 아주 기뻐할 일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보편성 덕분에 그러한 형제적 환대를 제공할 수 있고 출발지 공동체와 도착지 공동체가 대화를 나누고 두려움과 차이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며 이주민들을 위협하는 집단적 환상에 맞서 이주민들의 결속을 강화할 수 있도록 환대할 수 있습니다. ‘환대하기, 보호하기, 증진하기, 통합하기’는 이러한 이주민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교회가 역사의 오늘 안에 자신의 모성을 활용해야 하는 네 가지 동사가 될 수 있습니다.”

쓰고 버리는 세상, 그리스도는 ‘아니오’

이러한 호소는 “회심, 연대, 우리의 공동체 내에서 강력한 교육 활동”을 하라는 부르심이다.

“쓰고 버리는 세상, 쓰고 버리는 세상의 정신,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것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케노시스는 ‘아니오’라고 (거부합니다). 우리는 이를 경험했으며, 용서와 회심을 통해 우리의 몸 자체로 계속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긴장이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이렇게 자문하도록 부추깁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 머물고 싶어하는가?’”

최전방에 있는 사제들

교황은 사제들과 관련해, 하느님 백성에 대한 사제들의 “근본적인” 책임에 관해 잠시 머무르며, 그들이 “최전선”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주교들 편에서, “(사제)직무의 부패와 캐리커처”로 대변되는 “성직(중심)주의”를 넘어(교황은 이 점을 부각시켰다), “부성(父性)”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되는 친근함과 이해와 격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목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양떼와의 관계에서 항상 앞서 나가서는 안 된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이어 (사목자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때로는 앞에 있어야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냄새를 맡기’ 위해 때로는 중간에 있어야 하고, 아무도 버려지지 않도록 끝에 있는 양들을 보호하기 위해 때로는 뒤에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교황의 초대는 “연민/동정(compassione)의 중심”을 잊지 않으면서, 사제들을 위해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교황은 교회 안에서, 가톨릭 단체들 안에서, 가톨릭 홍보매체들 안에서 그 중심이 상실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고 고백했다. 말하자면 이교(離敎), 단죄, 사악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충고가 아니라, 진심으로 여러분께 말씀 드리는 사항입니다. 빵을 벌어들이기 때문에, 바쁜 일정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오늘, 한 사제의 요청을 보려면, 적어도 내일 그를 다시 불러 이렇게 말해야 할 겁니다. ‘나를 찾았네요.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오늘까지 기다릴 수 있나요? 아니면 급한 일입니까?’ 그러면 그 사제는 그 순간에 아버지 한 명을 얻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위임하지 마십시오

비록 “본당에서 특별히” 앞으로 밀고 나가야 할 “관리능력을 갖춘 구성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교황은 “건강과 삶”을 따라가면서 사제들의 말을 “경청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지 않기를 권고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열린 문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보다는 신뢰를, 위선보다는 진심을, 일방적인 규율보다는 솔직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의견교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열린 문입니다.”

영적 세속성의 유혹

각 주교에게 (당부하는) 교황의 권고는 따라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사제들을 증진시키고 성장시키도록 도와주라는 것이다. 성 이냐시오가 말하는 것처럼 가난을 자기의 것으로 삼으면서 말이다. 그 가난함은 “풍요로움”을 주기에 “어머니”이고, “영적 세속성”이라는 유혹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담벼락”이다. 영적 세속성은 “권력과 주인공 중심주의(protagonismo)라는 갈망, 그리고 허영과 오만과 교만으로 ‘경건하고’ 종교적인 가치”를 가리는 것이다.

“성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가 말했던 것처럼, 교회는 교회의 힘이 권력자들이나 정치가들의 지지에 기반을 두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참된 힘인 십자가의 팔로부터 지탱되어 걸어가기 위해 품위 있게 해방돼야 합니다. 또한 이런 태도는 구체적이고 분명한 표징으로 해석돼야 합니다. 이는 자원의 사용, 영향력과 지위의 활용에 있어서 우리의 선택과 소유에 관해 양심성찰을 하도록 우리를 부추기고 질문을 던집니다. 가난은 어머니이며 담벼락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자유와 진실을 말하는 용기(parresia)를 약화시키는 타협으로 빠지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24 1월 2019,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