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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 “예수님에게서 기도하는 법을 배웁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월 5일 바오로 6세 홀에서 진행된 수요 일반알현을 통해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새로운 교리 교육 여정을 시작했다. 우리는 대림시기 동안 주님의 제자들처럼 청해야 한다. “주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루카 11,1).

번역 김호열 신부

 

“주님의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 1: “주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주십시오”

“예수님에게서 기도하는 법을 배웁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주님의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복음서들은 우리에게 기도의 인간 예수님의 생생한 모습을 전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선교의 시급함과 당신을 원하는 많은 군중들의 긴급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부터, 이 점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줍니다(마르 1,35 참조). 카파르나움에서의 예수님의 하루는 승리를 거두는 모습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태양이 지고 나서, 많은 병자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의 문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설교하시고, (그들을) 치유하십니다. 구약의 예언과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의 기다림이 실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시고, 우리를 해방시키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모여든 그 군중들은 나자렛의 예언자 주위에 모일 다른 많은 군중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수의 군중입니다. 때로는 넓은 바다와 같이 많은 군중이 모였으며,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희망의 결과인 군중들이 기대하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자유로우셨습니다. 당신을 지도자로 세운 사람들의 기대에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위험이란 사람들과 거리를 두지 않고 사람들에게 너무 얽매여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간파하시고, 사람들에게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카파르나움에서 머무르신 첫 날 밤부터 독창적인 메시아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새벽이 밝아 오는 늦은 밤에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찾았지만 그분을 찾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베드로가 마침내 외딴 곳에서 기도에 완전히 빠져 계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베드로가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마르 1,37)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보고 반가워서 외치는) 이 말은 마치 수긍할만한 성공에 붙이는 조항 같으며, 선교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군중이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한 곳에 뿌리를 내려서는 안 되며, 갈릴래아의 길 위에서 계속해서 순례자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마르 1,38-39 참조). 또한 기도하면서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순례자입니다. 기도하면서 걸어갑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십니다.

모든 것이 기도의 밤에 일어납니다.

성경의 일부 대목에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기도, 아버지와의 친밀함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이는 무엇보다도 겟세마니의 밤에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여정의 마지막 부분, 곧 절대적으로 그 순간까지 그분께서 행하셨던 것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예수님이 아버지께 드리는 지속적인 경청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코 쉽지 않은 기도이지만, 운동 선수들의 투혼과 같은 의미에서, 진정한 “고뇌”입니다. 혹은 십자가의 길을 지탱해줄 수 있는 기도입니다.

요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기도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의 전례를 공유하시면서 공적인 순간들에 열렬히 기도하셨지만, 세상의 혼란에서 분리되고 당신 영혼의 깊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장소인 외딴 곳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막의 돌들을 알고 있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시는 예언자이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시편의 말씀, 곧 기도입니다. 유대인들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기도들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것처럼 기도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기도하시는 방식 안에는, 복음들 안에서 “주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와 같은 간결하고 즉각적인 청원이 발견됨에도 불구하고, 신비가 포함돼 있었으며, 분명히 당신 제자들의 눈을 피하지 못한 무엇인가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것을 보았고,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를 원했습니다. “주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며, 당신과 아버지와의 친밀함을 혼자서만 간직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와의 이 관계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로써 예수님께서는 확실히 우리 모두를 위하신 것처럼, 당신 제자들을 위한 기도의 스승이 되십니다. 우리들도 청해야 합니다. “주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가르쳐 주십시오.”

비록 우리가 오랫동안 기도해 왔다고 할 지라도, 우리는 항상 배워야 합니다. 인간 영혼으로부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나오는 열망인 인간의 기도는 아마도 우주의 가장 짙은 신비 중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들이 실제로 하느님께서 듣고 싶으신 기도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물리치시는 적절치 못한 기도들에 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를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세리만 의롭게 되어 성전에서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사이는 교만했으며, 사람들이 자신이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기도하는 체 했으며, 마음은 차가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구원받지 못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 기도하기 위한 첫 걸음은 겸손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 아버지께 나아가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합니다. “저를 보십시오, 저는 죄인이며, 약하며, 나쁜 사람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 무엇을 말해야 할 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겸손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겸손한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교리 교육 여정을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가 해야 할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공정한 일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청원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승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대림시기 동안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면 아름다울 것입니다. “주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 모두 한 걸음 더 나아가, 더 잘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합시다. “주님,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이번 대림시기에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의 기도를 공허함에 빠뜨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05 12월 2018, 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