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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AFP or licensors)

“율법의 임무는 사람이 하느님께 마음을 열도록 인도하는 겁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반알현 중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에 대해 설명했다. “이웃의 집을 탐내서는 안 된다. 이웃의 아내나 (…),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탈출 20,17). 교황은 이날 교리 교육을 통해 데칼로그(십계명) 전체가 악한 욕망이 나오는 인간의 마음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없으므로 하느님과의 관계로 자신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십계명에 관한 교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율법의 임무는 사람이 하느님께 마음을 열도록 인도하는 겁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십계명에 대한 우리의 교리 교육은 오늘 우리를 마지막 계명으로 인도합니다. 우리는 십계명의 이 마지막 말씀을 함께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의 마지막 말씀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 이상입니다. (이 말씀은) 십계명을 통해 전달된 모든 것의 핵심을 살펴보면서 걸어왔던, 데칼로그(Decalogo, 열 가지 말씀, 십계명)를 통한 여정의 완성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이 보는 바와 같이, 이 계명은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이웃의 아내나 (…)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 탐내서는 안 된다”는 규정들은 적어도 간음과 도둑질에 관한 계명에 최소한 잠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들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하나의 요약일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일까요?

모든 계명은 삶의 경계를 가리킵니다. (또한) 일정한 선을 넘으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인간은 자신과 이웃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을 가리키는 임무가 있음을 명심합시다. 만일 여러분이 그 경계를 넘는다면, 자신을 파괴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또한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파괴할 것입니다. 십계명은 이것을 알려줍니다. 십계명의 이 마지막 계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계명에 대한) 모든 위반이 공통된 내적 뿌리인 악한 욕망에서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죄는 악한 욕망에서 나옵니다. 모든 죄가 그렇습니다. 거기서부터 마음이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그 동요의 파도에 빠지면 계명을 위반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는 단지 형식적이고 법률적인 위반이 아니라, 자신과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위반입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1-23).

그러므로 우리는 십계명을 따른 여정이 이러한 수준, 곧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해합시다. 이 모든 나쁜 것들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십계명은 이 부분에 대해 명료하고 심오하게 보여줍니다. 이 여정의 도착 지점, 곧 마지막 계명은 바로 마음입니다. 만약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면 나머지는 거의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도전이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 모든 악하고 추악한 것들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아닌 노예의 상태로 남아 있으면서, 단순히 인생의 아름다운 외적인 모습으로 축소될 수 있습니다. 숨막히게 하는 예의 바른 가식적 가면 뒤에, 종종 추악하고 해결되지 못한 무엇인가를 숨기는 것입니다.

그 대신 우리는 욕망에 대한 이 계명들로부터 가면이 벗겨지도록 우리를 내어 맡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계명들은 우리를 거룩한 겸손으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의 가난함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는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어떤 나쁜 욕망들이 자주 생기는가?’ ‘이 욕망들은 질투인가, 탐욕인가, 뒷담화인가?’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나옵니다. 이에 대해 각자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간은 자기자신을 자신의 힘으로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소리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이 거룩한 겸손이 필요합니다. 이에 대해 성 바오로는 탐내지 말라는 계명을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설명합니다(로마 7,7-24 참조).

성령의 은총 없이 자기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오로지 우리의 초인적인 의지의 노력으로 우리 마음을 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헛된 일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대신 진리와 자유 안에서 하느님과의 관계에 열려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단지 이와 같은 방법으로만 우리의 노력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성경적 율법의 임무는 글자 그대로의 순종이 인위적이며 도달할 수 없는 구원으로 이끈다고 사람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임무란 사람을 진실, 곧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는 진정한 개방이 되게 하며, 하느님 자비에 대한 개인적인 개방이 되게 하는, 그 자신의 가난함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께 마음을 열면,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조건은 우리가 그분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십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는 그분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십계명의 마지막 말씀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 가난뱅이임을 인식하도록 가르칩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이기적으로 살기를 멈추고 영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마음의 무질서 앞에 설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한 예수님에 의해 구원되고 성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스승이십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를 내어 맡깁시다. 우리는 가난뱅이입니다. 이 은총을 청합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네, 그렇습니다. 유일하게 (우리를) 치유할 수 있는 하느님의 자비 없이도 자신의 약함에서 자기자신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 헛된 꿈을 버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자비만이 우리 마음을 치유해 줄 수 있습니다. 자기자신의 악한 욕망을 인식한 채, 회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과 타인 앞에서, 의인이 아니라 죄인들처럼 서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한 다음과 같은 말은 아름답습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루카 5,8). 이 말은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이 측은지심을 가질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타인에게 자비를 베푸는 법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21 11월 2018, 1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