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혼인은 결혼식이 아니라 ‘나’에서 ‘우리’로 가는 여정입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십계명에 관한 교리, 11/B
교황 “혼인은 결혼식이 아니라, ‘나’에서 ‘우리’로 가는 여정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리스도의 충실한 사랑이 인간 감성의 아름다움을 살 수 있는 빛임을 강조하면서 십계명의 여섯 번째 말씀인 “간음하지 마라”에 대한 교리 교육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사실, 우리의 감성적 차원은 충실함과 환대와 자비 안에서 표현되는 사랑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충실함과 환대와 자비 안에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계명이 결혼의 충실성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부부애적 사랑’의 의미에 대해 더 심도 있게 생각해보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조금 전에 들은) 성경 대목, 곧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5,21-33 참조)의 내용은 혁명적입니다! 그 당시의 인문학을 바탕으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혁명(rivoluzione)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 결혼에 대해 말한 것 중에 가장 혁명적인 내용이었을 것입니다. 항상 사랑을 행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자문할 수 있습니다. 이 계명은 단지 부부들에게만 해당되는가? 사실 이 계명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이 계명은 모든 남녀들을 향한 하느님의 부성애적 말씀입니다.
인간 성숙의 여정은 생명을 받는 것에서부터 생명을 주는 능력에 이르기까지, 돌봄을 받는 것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길 자체라는 점을 기억합시다. 성숙한 남자와 여자가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의 무게를 자신의 무게로 받아 들이고, 모호함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삶의 여러 상황 안에서 나타나는 ‘부부애적 사랑’과 ‘부모애적 사랑’을 사는 것에 도달하는 걸 의미 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아는 사람의 전체적인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간음하는 자이고, 음탕한 자이며, 불충실한 사람입니까? 자신의 삶을 자신만을 위해 유지하고,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기반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혼인하기 위해 결혼식만 치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나’에서 ‘우리’로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혼자 생각하는 것에서 함께 생각하고, 혼자 사는 것에서 둘이 함께 사는 여정이 필요합니다. 이는 아름다운 여정입니다. 이 여정은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경지에 도달했을 때, 모든 행동은 ‘부부애적 사랑’이 됩니다. 비로소 우리는 환대하고 희생하는 태도로 일하고 말하고 결정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이제 조금 더 넓힐 수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부르심은 ‘부부애적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제직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제직은 그리스도와 교회 안에서 주님께서 주신 모든 애정과 구체적 보살핌과 지혜를 갖고 공동체에 봉사하라는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사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사제 지망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대신,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사제는 자신의 직무 안에서 신랑과 아버지의 부성애와 부드러움과 힘을 가지고 하느님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봉헌 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봉헌 생활도 ‘부부애적 사랑’의 관계처럼 충실성과 기쁨으로 살고 모성애와 부성애로 풍성해집니다.
다시 말씀 드리자면, 모든 그리스도인의 성소는 ‘부부애적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를 새로 태어나게 하는 사랑의 유대의 결실이기 때문이며, 조금 전에 읽었던 바오로 사도의 서간이 우리에게 상기시킨 것처럼,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유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충실성과 부드러움과 관용에 기인하여 믿음을 가지고 혼인과 모든 성소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성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합시다.
창조된 인간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할 수 없는 일치와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중성 안에서 매우 좋은 현실이며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운명 지워졌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쾌감의 도구가 아니라 사랑으로 부름 받은 우리 성소의 장소입니다. 진정한 사랑 안에는 정욕과 피상적인 사랑을 위한 여지가 없습니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이러한 것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음하지 마라”는 계명은, 비록 부정문으로 표현되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원래의 우리의 부르심 곧, 충만하고 충실한 ‘부부애적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로마 12,1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