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살인의 첫 걸음입니다”
번역 김호열 신부
십계명에 관한 교리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계명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
교황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살인의 첫 걸음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교리 교육은 ‘열 가지 말씀(Decalogo, 데칼로그, 십계명)’의 다섯 번째 말씀 곧, 십계명의 다섯 번째 계명인 “사람을 죽이지 마라”에 대해 계속 이어가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번에) 이 계명이 하느님의 눈에는 인간 생명이 얼마나 소중하고, 거룩하고, 불가침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지를 강조했었습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이나 자신의 삶을 멸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자신 안에 간직하고 있으며 (하느님께로부터) 존재로 부르심 받은 조건이 무엇이든 간에 무한한 하느님 사랑의 대상입니다.
우리가 조금 전에 들은 복음(마태 5,21-26)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에 대한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조차도 살인의 한 형태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모두 살인자입니다”(1요한 3,15).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으시고, 같은 논리로 모욕과 멸시 또한 (형제를) 죽일 수 있다고 덧붙이십니다. 우리는 (형제를) 모욕하는 것에 익숙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형제를) 모욕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숨쉬는 것처럼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형제를 모욕하는 것을) 멈추십시오. 왜냐하면 모욕은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고 죽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멸시에 대해 살펴봅시다. “나는 (...) 이 사람들이나 이 형제를 멸시합니다.” 이는 인간 존엄성을 죽이는 하나의 형태입니다. 예수님의 이 가르침이 우리 생각과 마음 안에 들어 가고, 우리 각자가 “나는 아무도 멸시하지 않을 것이야”라고 말한다면 좋은 것입니다. 이는 좋은 결심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보라, 네가 만일 멸시하고, 모욕하고, 미워한다면, 이는 곧 살인이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법도 이처럼 다른 행동들에 같은 판단을 부여함으로써 상이한 이 행동들을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우리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서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고,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치라고 일관되게 요구하십니다. 우리 또한 미사에 갈 때, 우리와 문제가 있는 사람들과 그러한 화해의 태도를 지녀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들에 대해 나쁜 생각을 했거나 그들을 모욕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주, 미사가 시작하기 전에 사제를 기다리면서 잡담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험담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모욕과 멸시와 증오의 엄중함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살인과 동일시하십니다.
다섯 번째 계명의 영역을 이 시점까지 확장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십니까? 인간은 고귀하고 민감한 삶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육체적인 존재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 숨겨진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싶어하십니다. 사실, 한 어린이의 순수함을 해치기 위해서는 부적절한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한 여성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는 차가운 행동 하나면 충분합니다. 한 젊은이의 마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면 충분합니다. 한 남자를 파멸시키기 위해서는 그냥 그를 무시해버리면 충분합니다. 무관심은 (사람을) 죽게 합니다. 이는 곧, 다른 사람에게 “너는 나에게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서 죽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살인의 첫 걸음입니다. 살인하지 않는 것은 사랑의 첫 걸음입니다.
주님께서 카인에게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물었을 때, 첫 번째 살인자인 카인의 입에서 나온 끔찍한 대답을 우리는 성경의 시작부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카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59항 참조) 살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나와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당신 일입니다” 등과 같은 대답입니다. 다음 질문에 대답해봅시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지키는 사람들입니까?” 네, 우리는 우리 형제들을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지켜주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길이며, 살인하지 않는 길입니다.
인간의 삶에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진정한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대로, 자비입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용서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자비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살인이 누군가를 파괴하고, 억압하고,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살인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를) 보살피고, 가치 있게 여기고, 포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누구도 “나는 나쁜 짓을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없어”라고 생각하면서 착각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광물이나 식물은 이런 종류의 존재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나 여자 모두에게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끝까지 우리 자신이 되게 하는, 우리 각자가 행해야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해 준비된 선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계명은 사랑과 자비에 대한 호소이며,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시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신 주 예수님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부르심 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 모두 함께 이곳 성 베드로 광장에서 어느 성인의 말씀을 모두 함께 외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이 아마도 우리를 도와 줄 것입니다. “악을 행하지 않은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선을 행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 이상을 실천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취하시면서 우리 존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 피로 우리를 소중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생명의 영도자”(사도 3,15)이신 주님 덕분에 우리 각자는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음보다 강한 그분 사랑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을 통해, 우리는 “사람을 죽이지 마라”는 말씀을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호소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곧,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사랑으로의 부르심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