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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AFP or licensors)

“세례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모든 인간적인 도식을 뒤집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7월 8일 연중 제14주일 삼종기도를 통해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을 따르기 위해서는 신앙의 몸짓을 되풀이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으며 사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복음 말씀(마르 6,1-6 참조)은 예수님께서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근 부락과 마을을 돌며 설교하셨을 때부터, 당신 고향에는 더 이상 발을 들여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고향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결국, 지혜로운 스승이자 강력한 치유자로서의 명성이 갈릴래아 지방과 다른 지역까지 퍼져나가, 이 백성의 아들의 말을 들으려고 온 지방 사람들이 몰려오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성공으로 드러날 수 있는 면모가 강한 거부로 바뀌었으며,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주시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킬 수 없었습니다(5절 참조). 그날의 역동적인 상황은 마르코 복음사가에 의해 상세하게 재구성됐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처음에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고, 놀랐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당혹스러워하며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하며 서로 물었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그분이 목수이자 마리아의 아들이고, (그분이) 자라는 걸 지켜봤던 사실을 떠올리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2-3절 참조).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속담이 돼버린 표현으로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4절).

(여기서) 질문해봅시다. 어째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경이로움에서 불신으로 바뀌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보잘것없는 출신과 그분의 실제적인 능력을 비교했습니다. 그분은 한낱 목수에 불과했고 공부도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학자들보다 설교를 더 잘했으며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에 마음을 열기보다 오히려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나자렛 주민들이 보기엔, 하느님께서는 그처럼 단순한 한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시려고 스스로를 낮추시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분이십니다! 강생 신비의 스캔들입니다. 곧, 인간의 정신으로 생각하고, 인간의 손으로 활동하고 일하며, 인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우리 가운데 한 사람처럼 고생하며 먹고 잠자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게 된 사건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모든 인간적인 도식을 뒤집으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발을 씻어드린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요한 13,1-20 참조). 이는 그 시대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에, 오늘까지도 스캔들과 불신의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근본적인 변혁(capovolgimento)은 어제와 오늘의 당신 제자들에게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증명을 하도록 책임을 부여합니다. 사실, 우리 시대조차도 현실 수용을 방해하는 편견을 양산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겸허한 경청과 온순한 기다림의 자세를 갖추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은총은 종종 우리의 기대에는 전혀 부응하지 않는 놀라운 방식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콜카타의 성녀 마더 테레사를 함께 생각해봅시다. 이 아주 작은 수녀는(아무도 그녀를 위해 10리라를 주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임종자들을 거두기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 작은 수녀는 기도와 활동을 통해 놀라운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한 여인의 작음이 교회 안에 사랑의 행위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우리 시대의 (훌륭한) 사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편견을 따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신적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마음과 지성을 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곧, 신앙의 결핍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장애물입니다. 세례 받은 수많은 사람들은 마치 그리스도께서 존재하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신앙의 몸짓과 표지를 되풀이하지만,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에 대한 참된 신앙에는 부응하지 못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 모두, 우리 각자는, 이러한 근본적인 소속감을 심화시키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삶의 일관된 행동으로 신앙을 증거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안내자는 항상 사랑이 될 것입니다.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통해, 아무도 예외 없이, 모든 이에게 개방된 그분의 은총과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선과 자비의 사명에 우리가 열려 있도록, 완고한 마음과 편협한 정신을 녹여주시기를 주님에게 청합시다.

 

08 7월 2018,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