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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간호사들 위한 교황의 기도... “예수님의 평화가 우리 마음을 타인에게 열어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2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영웅적 모범이 된 간호사들을 축복해 달라고 하느님께 청했다. 간호사들 가운데 몇몇은 목숨까지 바쳤다. 교황은 강론에서 예수님의 평화란 언제나 타인에게 열려 있고 천국의 희망을 선사하는 무상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예수님의 평화는 결정적인 평화인 반면, 세상의 평화는 이기적이고, 열매를 맺지도 못하며,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일시적인 평화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지향

오늘(5월 12일)은 간호사들의 날입니다. 어제 저는 (이날을 위한)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오늘 이러한 의료봉사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 청소년들, 남녀 간호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사실 간호 전문직은) 하나의 전문직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하나의 소명이자 하나의 헌신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길 빕니다. 그들은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영웅적인 모범을 보였고 그들 중 몇몇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간호사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강론

주님은 떠나시기 전에 당신 제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시며 평화의 선물을 주셨습니다(요한 14,27-31 참조). 곧, 주님의 평화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주님의 평화는) 우리 모두에게 항상 주어지길 바라는 전쟁 없는 평화, 그런 보편적인 평화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의 평화, 영혼의 평화, 우리 각자가 내면에 지니고 있는 평화를 말하는 겁니다. 아울러 주님은 평화를 주십니다. 하지만 (그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27절)고 강조하십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어떤 것이고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어떤 것입니까? (이 둘은) 서로 다른 평화입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은 여러분에게 “내적 평화”를 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는 우리 인생의 평화, 그러니까 “평온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평화입니다. 세상은 내적 평화를 여러분에게 줍니다. 그러한 평화는 마치 여러분의 소유물인 것처럼 보입니다. 혹은 타인과 관계를 끊고 자기 자신 안에만 간직하고 있으면서, 곧 여러분의 소유로 구매한 무엇처럼 ‘나에겐 평화가 있어’라고 말하는 그러한 평화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전혀 알아채지도 못한 채 그런 평화 속에 자기 자신을 가둡니다. 어느 정도는 여러분을 위한, 여러분 개개인만을 위한 평화입니다. 그것은 “외로운” 평화입니다. 여러분을 고요하게 만드는,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한 평화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고요함 속에서, 이러한 행복 안에서, 어느 정도는 잠에 빠져 있으며, (꼼짝 못하게) 마비된 채 특정한 평온함에 스스로 열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이기적인 평화입니다. 말하자면 나만을 위한 평화, 내 안에 갇힌 평화입니다. 세상이 주는 평화가 이와 같습니다(요한 14,27 참조). 그 평화는 계속해서 일종의 “평화의 도구”를 바꾸어야 유지되기 때문에, 큰 비용이 들어가는 평화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에 열정을 가질 때, 그것이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겠지만, 그 평화가 효력을 다하고 나면 나중에 여러분은 다른 것을 찾아야 합니다. (...) (왜냐하면 세상이 주는 평화는) 일시적이고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용이 들어가는 평화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평화는 전혀 다릅니다. 그 평화는 여러분을 움직이게 합니다. 여러분을 고립시키지 않고, 여러분을 움직이게 만들고, 여러분을 타인에게로 이끌고, 공동체를 만들고, 소통을 이루는 평화입니다. 세상의 평화는 비용이 들어가지만, 예수님의 평화는 무료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무상의 평화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열매를 맺고, 여러분을 항상 전진하게 합니다.

세상의 평화가 어떠한지 생각해 볼 수 있는 복음의 사례가 있습니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는데, 그해의 수확량을 넘겼기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곳간들을 헐어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산을 모아 두어야겠다. 그런 다음 편안히 지내야지. (...) 이제야 내 마음이 편하군. 이렇게 나는 편안히 지낼 수 있겠어.”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루카 12,13-21 참조). (이처럼 세상의 평화는) 다음 생을 향해 문을 열지 않는, 내재적인 (것에 국한된) 평화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평화는 그분이 가신 곳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으며, 천국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다른 사람들도 천국으로 이끄는, 열매를 맺는 평화입니다.

이렇게 조금 생각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평화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서 평화를 찾는가? 사물들 안에서, 웰빙에서, 여행에서 – 하지만 지금은, 오늘날에는 여행할 수 없습니다만 – 소유한 것들에서, 수많은 것들에서 평화를 찾고 있는가? 혹은 주님의 선물인 평화를 찾고 있는가? 나는 평화를 (얻기 위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아니면 주님에게서 평화를 거저 얻어 누리는가? 나의 평화는 어떠한가? 무엇인가 나에게 부족하다고 느낄 때 나는 화를 내는가? (그렇다면) 이런 것은 주님의 평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겪어야 할) 시련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나는 나만의 평화 안에서 “잠들어” 편안을 느끼는가? (이런 것도) 주님의 평화가 아닙니다. 나는 평화 안에 머물고 그 평화를 타인에게 전하며 무엇인가를 앞으로 이끌고 나가는가? 바로 그것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도, 내 안에 그런 평화가 머물러 있는가? (그것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또한 주님의 평화는 나를 위해서도 결실을 거둡니다. 희망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 평화는) 하늘을 바라보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미안합니다만, 저에게 유익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어제 저는 어떤 사제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신부님은 훌륭한, 아주 훌륭한 분입니다. 그 신부님이 제게 말하길, 제가 하늘나라에 대해 조금 밖에 말을 하지 않는데, 더 많이 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분이 옳습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저는 다름 아닌 평화를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이 평화는 지금과 미래를 위한 평화입니다. 하늘나라의 풍요로움과 함께 하늘나라를 살기 시작하게 해줍니다. 무감각한 게 아닙니다. 전혀 다릅니다. 네, 그렇고 말고요. 여러분이 세상의 사물에 (사로잡혀) 마비되고 이러한 마취제의 용량를 다 써버리면 다른 것, 또 다른 것, 또 다른 것을 구해야 합니다. (...) 예수님의 이 평화는 결정적인 평화입니다. 결실을 거두며 전염되는 평화입니다. 자아도취적인 평화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이 여러분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약간 자아도취적인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러한 희망찬 평화를 우리에게 베푸시길 빕니다. 이 평화는 우리로 하여금 결실을 거두게 하고, 타인과 소통하게 하며, 공동체를 만들고, 언제나 천국의 결정적인 평화를 바라보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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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5월 202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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