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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인간 착취자의 ‘마음 회심’ 위한 교황의 기도… 우리 내면의 유다를 성찰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8일 성주간 수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이들이 마음의 회심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고 말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돈 때문에 사람을 배신하고 팔아넘기는 수많은 유다에 관해 설명했다.

Robin Gomes / 번역 김근영 

“오늘 미사는 전염병 대유행의 시기를 보내는 가운데 가난한 이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들은 타인의 요구를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이용해 장사를 합니다. 마피아나 고리대금업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회심시켜 주시길 빕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8일 성주간 수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이 같은 지향으로 시작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이날 복음(마태 26,14-25)을 해설했다. 복음은 유다가 어떻게 수석 사제들과 거래하여 은돈 서른 닢을 받고 예수님을 배신했는지 전하고 있다. 

인신매매와 인간착취

교황은 성주간 수요일이 ‘배신의 수요일’로 불린다면서, 스승을 팔아넘긴 유다의 배신이 강조되는 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사람을 사고판다고 생각할 때는 흔히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노예를 데려오는 노예무역이나 다에시(Daesh, 이슬람국가(ISIS)의 아랍식 명칭)로 팔려가는 여성들을 떠올린다며, 그저 오래 전에 발생한 일이나 나와 상관없는 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교황은 사람들을 팔아넘기는 일이 오늘날에도 매일 일어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형제자매들을 팔아넘기는 수많은 유다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노동력을 착취하고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으며 당연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장 소중한 것들마저 팔아넘긴다. 교황은 편하게 살겠다고 부모를 멀리 떨어진, 소위 “안전한” 요양원에 집어넣고는 더이상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교황은 이런 경우도 “팔아넘긴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울러 “제 어미를 팔아먹는 사람”이라는 말이 흔하게 통용된다며, 이러한 사람들은 (부모가 요양원에 있으니) 안전하고 보살핌을 잘 받을 것이라 생각하고 평온함을 느낀다고 꼬집었다. 

하느님? 재물? 

교황은 오늘날의 인신매매가 초세기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교황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셨다고 설명했다. “하느님을 섬김으로써 흠숭과 봉사 안에서 자유로워지던지, 아니면 재물을 섬김으로써 재물의 노예가 될 것인지 택해야 합니다.” 

교황은 많은 이가 하느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기길 원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결국에는 재물을 섬기기 위해 하느님을 섬기는 체하기 때문이다. 교황은 이러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지만 숨어있는 착취자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들은 테이블 아래에서 사람들을 사고팝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아울러 교황은 “인간착취는 제 이웃을 팔아넘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다의 과거, 재물 사랑

교황은 유다의 과거에 대해선 우리가 잘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유다가 아마 번민하던 평범한 청년이었을 것이라며, 주님이 그를 제자로 부르셨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다가 제자됨에 있어 나약한 사람이었음에도 예수님이 그를 사랑하셨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아울러 라자로의 집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발라드렸을 때, 복음은 유다가 재물을 사랑했음을 알려준다고 덧붙였다. 요한 복음사가는 유다가 향유를 낭비한 것을 보고 유감스럽게 생각했다는 장면에 대해 가난한 이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교황은 재물에 대한 사랑이 유다를 규범 바깥으로 이끌었다면서 “돈을 가로채는 것과 배신하는 것 사이에는 미세한 단계만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재물을 너무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재물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 언제나 타인을 배신한다”며, 이는 “일종의 법칙이자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어쩌면 유다는 선한 지향을 지닌 좋은 청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스승을) 시장에 팔아넘기려고 했다는 점에서 배신자로 끝이 났습니다.”

교황은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유다를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를 “친구”라고 부르시며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이어 이것이 ‘유다에 관한 신비’라고 말했다. 

교황은 예수님이 유다를 강하게 위협하는 대목도 있다고 설명했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 26,24). 

(예수님의 이 말씀이) 유다가 지옥에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인지 교황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황은 예수님이 유다를 “친구”라고 부른 것에 주목했다. 

악마

유다의 이야기는 악마가 ‘사악한 급여담당자’라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그는 신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보여주고 모든 것을 약속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절망 속에 우리를 내버려 둡니다. (우리가) 스스로 목을 매달도록 말입니다.” 

유다는 탐욕과 예수님을 향한 사랑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수석 사제들에게 돌아와 구원을 청하고 용서를 구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마태 27,4)였다. 교황은 이것이 악마가 말하는 방식이라면서, 악마는 우리를 절망 속에 내버려 둔다고 말했다. 

우리 내면의 유다

이와 관련해 교황은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착취하는 제도화된 많은 유다들”을 생각해보자고 초대했다. 아울러 우리 각자의 내면에도 ‘작은 유다’가 존재한다면서, 특별히 “충실함과 자신의 이익 중에 하나를 택할 때” 그러하다고 설명했다. 

“우리 각자는 배신하고 팔아넘기고 제 자신의 이익을 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돈이나 재물 혹은 미래의 웰빙에 대한 사랑에 현혹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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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4월 20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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