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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일치를 청하는 교황의 기도… 충실함의 은총을 묵상하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14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통해 분열을 극복하는 은총을 청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회개하는 것이란 충실한 이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 삶에서 흔한 태도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충실해야 하고, 하느님과 인간 관계에서도 신실해야 한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14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아침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시작하면서 교황은 일치를 위해 기도했다.

“오늘 (미사 중에)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치의 은총을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이 시기에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통해 우리 가운데서 친교와 일치를 발견하길 빕니다. 일치는 언제나 그 어떤 분열보다 훨씬 더 탁월합니다.”

교황은 강론을 통해 사도행전에서 발췌한 제1독서(사도 2,36-41 참조)를 해설했다. 이날 제1독서는 사도 베드로가 유다인들에게, 하느님께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다고 선포하고,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회개한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교황은 회개하는 것이란 충실한 이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며, 이는 우리 삶에서 흔한 인간적인 태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충실해야 한다. 불확실한 시기에도 충실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의 (인간적) 확신은 주님이 주시는 확신이 아니라, 우리를 불충으로 이끄는 우상이다. (사실) 우리의 삶과 교회의 역사는 불충으로 점철돼 있다. 교황은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던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발현하신 이날 복음(요한 20,11-18 참조)으로 강론을 마무리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연약했지만 충실했다. 무덤 앞에서도, 환상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서도 충실했던 여인이었기에 “사도들의 사도”가 됐다. 교황은 이렇게 기도하며 마무리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충실함 안에 지켜주시길 청합시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성령 강림절에 베드로의 설교는 사람들의 마음을 꿰찔렀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은 분이 되살아나셨습니다’(사도 2,36 참조).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꿰찔리듯 아파하며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사도 2,37). 그러자 베드로는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회개하십시오. 회심하십시오. 삶을 바꾸십시오. 여러분은 하느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법에서 멀어졌습니다. 여러분은 우상들 가운데 있으면서, 여러분이 지켜야 할 의무에서, 많은 것들에서 멀어졌습니다. (...) 그러므로 회개하십시오. 충실함으로 돌아오십시오’(사도 2,38 참조). 회개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곧 충실한 이로 되돌아오는 겁니다. 충실함이란, 우리 삶이나 사람들의 삶에서 흔한 인간적인 태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는) 언제나 우리의 관심을 잡아끄는 환상이 있기 마련이고,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러한 환상을 뒤쫓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충실해야 합니다.”

“역대기 하권에 나오는 대목이 저에게 큰 감명을 줍니다. 1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르하브암은 왕권이 튼튼해지고 힘이 커지자, 주님의 율법을 저버렸다. 온 이스라엘도 그를 따랐다’(2역대 12,1). 성경은 그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인 사실이지만, 보편적인 사실이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확실하다고 느낄 때, 우리의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하며 점점 주님에게서 멀어집니다. (더 이상) 충실함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때) 나의 확신은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그런 확신이 아닙니다. 하나의 우상입니다. 바로 이러한 일이 르하브암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났던 겁니다. 그는 안정적이라고 느꼈고, 왕권이 확고해졌다고 확신했기에, 율법에서 멀어지고 우상들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신부님, 저는 우상에게 무릎 꿇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여러분은 우상 앞에 무릎을 꿇진 않았겠지만, 마음속으로 우상들을 찾고 숭배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도 여러 번 말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야말로 우상들을 향해 문을 열어 젖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나쁘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하나의 은총입니다. 다만 확신을 갖되,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확신이 들 때 ‘나’를 그 중심에 둔다면, 르하브암 왕처럼 주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불충한 이가 되고 맙니다. 충실함을 지키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 더 나아가 교회의 역사 전체가 불충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불충이 차고 넘칩니다. 이기심이 팽배하고, 하느님 백성을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며, 충실함과 신실함의 은총마저 잃게 만드는 자기 확신이 넘쳐납니다. 우리 중에도, 인간 관계에서도, 충실함은 분명 값싸게 얻을 수 있는 덕목이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충실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 ‘회개하십시오. 주님께 충실하십시오’”(사도 2,38 참조).

“그리고 (오늘) 복음에는 충실함의 이콘(icon)이 그려집니다. 곧, 주님이 자신에게 해준 모든 일을 한 번도 잊지 않았던 신실한 여인입니다. 그녀는 바로 거기, 불가능한 사건 앞에, 비극 앞에서 충실함을 지켰습니다. 그녀의 충실함은 그분의 시신을 모셔갈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 (요한 20,15 참조) 연약하지만 충실한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러한 충실함의 이콘은 ‘사도들의 사도’라 부를 만합니다.”

“오늘 주님에게 충실함의 은총을 청합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확신을 주실 때 감사를 드리되, 그 확신이 ‘나’의 확신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으며 항상 우리 자신의 확신 너머를 바라볼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 무덤 앞에서도, 수많은 환상이 무너져 내리는 가운데서도, 충실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충실함이란 언제나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충실함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이신 그분이 우리의 충실함을 지켜주시길 빕니다.”

교황은 영성체 후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을 바치고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으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교황이 바친 영적 영성체 기도문.

오, 나의 예수님,

당신의 발 아래 엎드려

당신의 거룩한 현존의 심연 안에서

하찮은 저의 마음과

통회하는 저의 마음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 사랑의 성체 안에서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제 마음은 

당신께 드리는 초라한 거처 안에서

당신을 영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성체를

직접 영할 수 있는 기쁨을 기다리며

영적으로나마 당신을 모시길 원하오니,

오, 나의 예수님,

제가 당신께 갈 수 있도록

저에게 오소서.

당신의 사랑이

삶과 죽음을 통해

저의 온 존재를 불타오르게 하소서.

당신을 믿고

당신께 희망을 걸고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아멘.

미사를 마친 다음 교황이 성령께 봉헌된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퇴장할 때, 미사 참례자들이 함께 부활시기에 부르는 부활 삼종기도인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Regina caeli)’를 노래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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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4월 202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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