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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슬픔에 잠긴 이를 위해 기도하는 교황…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6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부활 제3주일 미사를 봉헌하며, 혼자 살거나 일자리가 없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가족을 어떻게 부양해야 할 지 몰라 슬픔에 잠긴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예수님이 어둠의 순간에도 언제나 우리 곁에서 걸어가신다고 강조했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6일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부활 제3주일 미사를 집전했다. 교황은 미사를 시작하며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슬픔에 잠겨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오늘 이 미사 동안, 혼자 있기 때문에 혹은 어떤 미래를 맞이할 지 몰라서 혹은 돈이 없거나 일자리가 없어 가족을 부양할 수 없는 슬픔에 빠진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수많은 사람들이 슬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오늘 기도합시다.” 

교황은 강론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엠마오의 제자들의 만남을 묘사하는 이날 복음을 해설했다(루카 24,13-35 참조). 복음은 주님이 빵을 떼실 때 이 제자들이 어떻게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는지 전하고 있다. 교황은 그리스도교가 예수님과의 만남이라고 정의하면서, 그리스도인이란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주님에게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우리는 비록 깨닫진 못해도 불안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의 마음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목말라하지만, 많은 경우 잘못된 길에서 그분을 찾는다. 그런데 하느님은 이러한 불안에 휩싸인 우리를 만나러 오시기 위해,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을 정도로 우리와의 만남을 목말라하신다. 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여정을 존중하시고, 우리의 호흡에 맞추시는 모습을 본다. 예수님은 인내하는 주님이시고, 우리 곁에서 걸으시며, 우리의 고민을 들으시고, 우리의 불안을 잘 아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지 듣는 걸 좋아하신다. 걸음은 빨리빨리 걷지 않으신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인내다. 예수님은 가장 느린 사람의 호흡에 맞추신다. 예수님은 경청하시고, 대답하시며, 필요한 사항까지 설명하신다. 우리의 어두운 순간에서도 우리의 모든 여정을 따라 걸으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만난다.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기에 우리를 동행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예수님과의 만남이라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깨닫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만난다. 예수님을 만날 때 은총의 삶이 시작된다. 교황은 주님이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그분을 만날 은총을 주시길 바란다는 기도로 강론을 마무리했다. 주님은 우리의 순례 동반자시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우리는 이런 말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하나의 교리나 행동방식이 아니며, 하나의 문화도 아니라는 것을요.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하지만, 가장 중요하고도 으뜸이 되는 것은 ‘만남’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분에 의한 만남’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겼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의 이 대목은 우리에게 하나의 만남을 들려줍니다. 아울러 주님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 우리의 행동방식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불안의 씨앗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하느님이 이러한 방식을 바라셨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러한 불안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우리는 충만함을 찾으려고 조바심을 내며, 하느님을 찾으려고 조바심을 냅니다. 우리의 마음은 불안하고, 우리 마음은 목말라합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을 목말라합니다. 하느님을 찾지만, 많은 경우 잘못된 길에서 그분을 찾습니다. 길을 잃고, 다시 돌아와, 그분을 찾습니다. (...) 한편 하느님은 이러한 불안에 휩싸인 우리를 만나러 오시기 위해, 우리를 만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을 정도로, (우리와의) 만남을 목말라하십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행동하십니까? 이 복음 대목(루카 24,13-35 참조)에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 각자의 상황을 존중하시고, 너무 앞서 나가지 않으시며, 존중해주신다는 걸 뚜렷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가끔, 고집불통들에게는 달리 행동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사도 바오로를 생각해봅시다. 그를 말에서 떨어뜨렸을 때 말입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우리의 시간을 존중하시며, 천천히 가십니다. 인내하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 각자를 위해 얼마나 많이 인내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우리 곁에서 걸어가십니다.”

“우리가 여기서 (엠마오로 가던) 이 두 제자(와의 만남)에서 보았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우리의 고민을 들으시고 – 주님은 우리의 불안을 아십니다! – 어느 순간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잘 이해하시기 위해 그리고 그러한 불안한 마음에 올바른 답변을 주시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말하는지 듣는 걸 좋아하십니다. 주님은 빨리빨리 걸음을 걷지 않으십니다. 많은 경우 느리게, 우리의 호흡에 맞추십니다. 그분의 인내는 그렇습니다.”

“진정한 순례자는 가장 느린 사람의 호흡에 맞춰 걸어야 한다는 오랜 순례자 규칙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역량을 갖춘 분이시고, 그렇게 행하십니다. 속도를 내지 않고, 우리가 첫 걸음을 떼길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 경우에는 분명합니다.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루카 24,17)라고 하시며, 우리가 말하도록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말하는 걸 좋아하십니다. 우리의 이런 말을 듣는 걸 좋아하시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걸 좋아하십니다. 우리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대답하시기 위해, 우리가 말하게 하십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시지만, 많이 존중해주십니다. 그런 다음에야 대답하시며, 필요한 사항까지 설명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루카 24,26). 이처럼 주님은 설명해주시고, 명확히 해주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똑같이 하기 위해, 예수님이 어떻게 설명하셨는지 알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교리 교육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동행하셨고, 우리에게 다가오셨으며, 우리의 불안이 어느 정도인지 보시려고 더 멀리 가는 척하십니다. ‘아닙니다. 오십시오. 제발 들어오십시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루카 24,29 참조). 이렇게 만남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만남이란 단지 여기서처럼, 빵을 떼시는 순간뿐 아니라, 여정 전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심으로 가득 찬 어둠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의 죄로 가득 찬 추악한 의심 안에서도, 그분은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의 불안 속에 말입니다. (...)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시기에 우리를 동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만남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여러분은 왜 그리스도인입니까? (이러한 물음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모릅니다. 어떤 이들은 (구교 집안) 전통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이들은 무슨 말을 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답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과의 만남이었다고 깨닫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를 찾으십니다. 언제나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불안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의 불안이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바로 거기서 은총의 삶, 충만의 삶, 그리스도인 여정의 삶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깨달으며, 매일 예수님을 만나는 은총을 우리 모두에게 주시길 주님께 청합시다. 주님은 우리의 순례 동반자이십니다.”

교황은 영성체 후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을 바치고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으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교황이 바친 영적 영성체 기도문.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 진실로 성체 안에 계심을 믿나이다.

세상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사랑하오며,

주님의 성체를 영하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지금 주님의 성체를 영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영적으로라도 제 안에 오소서.

주님, 성체를 모실 때처럼

주님과 온전히 일치하려 하오니

영원히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교황은 미사를 마치고 성령께 봉헌된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퇴장할 때, 미사에 참례한 이들이 모두 함께 부활 시기에 바치는 성모 찬송가인 ‘레지나 첼리(Regina caeli, 하늘의 모후님!)’를 노래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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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4월 20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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