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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 봉사자들 위한 교황의 기도… “신앙은 마음의 문을 열고 선교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코로나19 희생자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이들을 기억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사임을 떠올렸다. 선교란 개종을 강요하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VATICAN NEWS / 번역 박수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5일 토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성 마르코 복음사가 축일’을 기념하며 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은 미사를 시작하면서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장례 예식을 통해 봉사하는 이들을 기억했다. 

“장례식을 거행하는 이들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고 슬픕니다. 그들은 전염병의 고통을 아주 가까이서 느낍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교황은 강론에서 이날 복음 말씀을 해설했다(마르 16, 15-20 참조). 복음은 부활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시며, 믿는 이들과 함께 나타나는 표징에 관해 전하고 있다. 이들에게 나타나는 표징이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마르 16,17-18)이라는 표징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승천하시어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교황은 신앙이란 선교가 아니라면 신앙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자신은 신앙 속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나 자신만을 위한 신앙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자신만을 위한 신앙은) 영지주의적인 이단에 빠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신앙은 무엇보다도 삶에 대한 증거와 함께 이뤄진다. 때로는 신앙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신앙은 단지 나를 나타내는 신분증을 뜻하지 않는다. 신앙인은 자기 자신에서 바깥으로 나가야 하며 ‘사회적으로’ 신앙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개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봉사로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오늘 교회는 성 베드로 사도와 매우 가까운 네 명의 복음사가 가운데 한 명인 마르코 성인의 축일을 기념합니다. 마르코 복음은 다른 복음들보다 가장 먼저 집필됐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순박하고, 단순하며, 아주 친밀한 방식으로 복음을 썼습니다. 오늘 시간이 있다면 꼭 손에 들고 읽어보십시오. 길지는 않습니다. 마르코 성인이 주님의 삶을 재조명하는 순박함을 읽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마르코 복음서의 마지막 부분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파견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구세주인 동시에 하느님의 유일한 외아들로 스스로를 드러내셨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과 백성들 모두에게 드러내셨으며 특별히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더 자세하게 드러내셨습니다. 이는 주님이 주신 위로였습니다. 주님은 곧 그들을 떠나셨고, ‘하늘로 승천하시어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마르 16,19 참조). 그러나 예수님은 떠나시기 전 열두 사도들 앞에 나타나시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곧, 신앙의 선교성(missionarietà)입니다. 신앙이 선교가 아니라면 신앙일 수 없습니다. 신앙은 믿는 이를 성장시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결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신앙은 영지주의적인 이단입니다. 신앙은 항상 여러분을 자기 자신 바깥으로 나가게끔 인도합니다.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전해지는 것입니다. 특히 증언과 함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가서 사람들이 너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게 하여라’”(마르 16,15 참조).

“유럽 시내의 어떤 신부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도시에는 불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이 없기 때문이죠. 만약 그들이 신앙이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선교성이 누락된 것입니다. 신앙의 뿌리에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나는 그리스도인이고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렇지만 (...) (선교는 하지 않아요.)’ 마치 사회적 태도인 것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신분증에 이름과 성 그리고 ‘종교는 천주교’라고 기재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는 신분증에 나와있는 정보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문화적인 것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여러분을 바깥으로 데려가고, 신앙을 전해주도록 인도합니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본질적으로 전해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용하지 않습니다. ‘아, 그렇다면 신부님, 우리 모두가 선교사가 되어 먼 나라로 가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아니오. 그것은 선교성의 일부입니다. 곧, 여러분에게 신앙이 있다면 반드시 자기 자신을 벗어나, 사회적으로 신앙을 보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신앙은 사회적이며,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그리고 이는 개종 강요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마치 축구팀이 좋은 인재를 영입하려는 것처럼 혹은 자선단체가 자선을 강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개종강요주의’가 아닙니다. 신앙은 계시를 보여줍니다. 성령이 증거와 함께 사람들 안에서 활동하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봉사를 통해 증거하는 것처럼 말이죠. 봉사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입니다.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며 이교도처럼 산다면, 그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납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만약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간다면 (사람들은) 이런 점들에 이끌립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폴란드에서 한 대학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대학에서 저는 많은 무신론자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제가 무엇을 말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가장 최후에 해야 할 일이 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함께 생활하면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증거하며 사는 것을 그들이 보면, 오히려 그들이 여러분에게 물어볼 것입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사느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신앙은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설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화를 봉헌하기 위해서 입니다. ‘저기를 봐, (봉사하는) 그 사람을 보았니?’ 이는 베드로 사도가 첫째 서간에서 말한 겸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젊은이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1베드 5,5). 교회 내에서, 역사 안에서, 얼마나 많은 남녀의 사회운동과 집단들이 신앙을 두고 설득하며 개종시키려 했는지요! (...) 이것이 개종강요 행위입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복음 구절에는 많은 사랑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확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 자신에서 나오면서 신앙을 전하는데 보람이 있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하라’(마르 16,15). 여러분은 놀라운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마르 16,17-18 참조). 그리고 주님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신앙을 전달함에 있어서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데올로기의 전달에는 스승이 있겠지만, 내가 만일 신앙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주님이 나와 동행하십니다. 신앙은 전달돼야 합니다. 신앙을 전하는 데 있어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신앙을 전하는 일에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매일 너희와 함께 있을 것’(마태 28,20 참조)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저희가 열린 마음과 투명한 마음으로 신앙을 살게 하시고, 개종강요 행위가 아니라 ‘저는 이렇습니다’라고 보여줄 수 있는 신앙으로 살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시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러한 건강한 호기심으로, 그들의 구원을 위한 메시지를 받도록 우리가 그들을 도울 수 있게 주님께 청합시다.” 

교황은 영성체 후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영적 영성체(신령성체)를 하라고 초대했다. 이어 영적 영성체 기도문을 바친 뒤에는, 성체조배와 성체 강복으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교황이 바친 영적 영성체 기도문.

오, 나의 예수님, 

당신의 발아래 엎드려

당신의 거룩한 현존의 심연 안에서 

하찮은 저의 마음과

통회하는 저의 마음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 사랑의 성체 안에서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제 마음은 

당신께 드리는 초라한 거처 안에서 

당신을 영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성체를 

직접 영할 수 있는 기쁨을 기다리며

영적으로나마 당신을 모시길 원하오니, 

오, 나의 예수님,

제가 당신께 갈 수 있도록 

저에게 오소서. 

당신의 사랑이 

삶과 죽음을 통해 

저의 온 존재를 불타오르게 하소서.

당신을 믿고 

당신께 희망을 걸고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아멘. 

미사를 마친 다음 교황이 성령께 봉헌된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퇴장할 때, 미사에 참례한 이들이 모두 함께 부활 시기에 바치는 성모 찬송가인 ‘레지나 첼리(Regina caeli, 하늘의 모후님!)’를 노래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 주소서.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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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4월 202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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