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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정치인은 자기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선익을 추구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월 2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코로나 19 대유행 시기에 여러 국가의 정치인들이 사랑의 탁월한 형태인 정치라는 본연의 소명을 잘 실천하길 기도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그리스도인이란 계명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도록 기꺼이 따르며 우리 자신을 내어 맡겨드리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곧,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성령의 자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자비의 주일을 맞아 사시아의 산토 스피리토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한 다음, 이날 부활 제2주간 월요일부터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아침미사를 재개했다. 교황은 미사를 시작하면서 정치인들을 위해 기도했다. 

“오늘 미사 중에는 정치적 소명을 받은 남녀를 위해 기도합시다. 정치는 사랑의 탁월한 형태입니다. 여러 국가의 정치 정당들이 코로나 19 대유행의 어려운 시기에 자기 정당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 함께 국가의 선익을 추구하도록 기도합시다.”

교황은 강론에서 이날 복음(요한 3,1-8 참조)을 해설했다. 복음은 밤에 당신을 찾아온 바리사이인 니코데모에게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신 내용을 전하고 있다. 교황은 모든 바리사이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면서, 특히 니코데모는 초조함을 느껴 주님을 찾았던 의로운 바리사이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니코데모는 한 단계 도약, 곧 성령으로 태어나는 방법을 몰랐다. 성령은 예측할 수 없는 분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겨드리는 이가 온순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인은 계명을 지켜야 할 뿐 아니라, 성령이 원하시는 곳으로, 성령이 이끄시도록 자기 자신을 내어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도록 내어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감옥에서) 풀려난 다음,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려움과 위협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한마음으로 기도를 드린 사도행전의 대목(사도 4,23-31 참조)을 풀이하면서, 이러한 용기가 성령의 열매라고 말했다. (그 열매는) 기도를 통해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이 사람, 니코데모는 유다인들의 지도자였고, 권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에게 가야한다고 느꼈습니다. 예수님과 말씀을 나누려고 갔던 이들에 대해 사람들이 좋지 않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또한) 약간의 균형을 유지해야 했기에,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요한 3,2 참조). 그는 의로운 바리사이였습니다. 모든 바리사이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의로운 바리사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의로운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는 예언서를 읽었고 예수님이 행하셨던 것이 바로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내용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초조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초조함을 느꼈고 말씀을 나누려고 예수님에게 갔습니다. “스승님, 저희는 스승님이 하느님에게서 오신 스승이심을 알고 있습니다”(요한 3,2). 이는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으면, 당신께서 일으키시는 그러한 표징들을 아무도 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요한 3,2). 그리고 (잠시) 멈춥니다. “그런데요” 앞에서 멈춥니다. ‘저는 당신이 이러저러하다고 말합니다. (...) 그런데요. (...)’ 이에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신비롭게 대답하셨는데, 니코데모가 기대한 답변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남의 상징으로 대답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 3,3). 그런데 니코데모는 예수님의 대답을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혼란을 느낍니다. “이미 다 자란 사람, 큰 성인이 어떻게 또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요한 3,4 참조)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니코데모의 고백은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하지만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성령의 정의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요한 3,8). 다시 말해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겁니다. 성령이 우리를 이리저리 이끌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사람 말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하는 이가 온유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온순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지 계명을 이행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해야 하고, 이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좋은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고 그분이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이끄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에서 많은 경우 니코데모처럼 ‘그런데요’ 앞에서 멈춥니다. 어떻게 한발을 내딛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혹은 이 한발을 내딛기 위해 성령이 들어오시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자 하느님께 (충분히) 믿음을 두지 못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성령을 우리 안으로 들어오시게 하고, 내가 아니라 성령이 나를 인도하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자유인이 됩니다. 결코 어디서 끝날지 모르는 성령의 자유를 통해서 말입니다.”  

“다락방에 있던 사도들은 성령이 내려오셨을 때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설교를 하러 나갔습니다(사도 2,1-13 참조). (...) 그들도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들을 인도하셨기에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계명을 이행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물론 계명도 지켜야 하지만, 이를 뛰어 넘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영의 자유를 선사하시는 성령 안에서 태어나는, 이러한 다시 태어남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런 일이 제1독서에서 말하고 있는 초기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일어났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수석 사제들의 심문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두 사도는 이 공동체에 있던 그들의 형제들에게 가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러자 공동체는 그 말을 듣고 모두가 놀랐습니다(사도 4,23 참조). 그리고 그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기도했습니다. 신중한 대책을 강구하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일단 이렇게 해봅시다. 조금만 더 침착하게 가봅시다. (...)’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성령이 말씀해 주시도록 말입니다. 그들은 목소리를 높여 하느님께 ‘주님’이라 외치며 아뢰었고 기도했습니다(사도 4,24 참조). 이 기도는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 그 어두운 순간에 드리는 아름다운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태어나기를 원하며, 성령께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도록 말입니다. (...) 그리고 이렇게 아룁니다. ‘주님, 헤로데와 본시오 빌라도, 그리고 다른 민족들과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의 성령과 예수님을 거슬러 서로 동맹을 맺었습니다’(사도 4,27 참조). 구원 역사를 떠올리며 ‘주님, 무엇인가 해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제, 주님! 저들 – 당시 사제 무리들 – 의 위협을 보시고, 주님의 종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주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사도 4,29).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담대함을 청했습니다. ‘당신 손을 뻗으시어 병자들을 고치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징과 이적들이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사도 4,30 참조). ‘이렇게 기도를 마치자 그들이 모여 있는 곳이 흔들리면서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하느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다’(사도 4,31). 바로 여기서, (이른바) 두 번째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려움 앞에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굳게 닫힌 문 앞에서, 그들은 주님께 나아갔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성령은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런 후 그들은 바깥으로 나가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며 나아갔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앞에서 멈추지 않는 겁니다. 내가 항상 해 왔던 일들 때문에 ‘그런데요’ 하고 멈추지 않는 겁니다. 계명이나 종교적 관습을 지킨 다음 ‘그런데요’ 하고 멈추지 않는 겁니다. 거기서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의 문을 성령께 열게 하고 우리에게 성령의 자유와 담대함과 용기를 줍니다. 성령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실지 결코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아십니다.” 

“항상 성령께 열려 있도록 주님이 우리를 도우시길 빕니다. 왜냐하면 성령이야말로 주님을 섬기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영성체 후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해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을 바치고 성체조배와 성체강복으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교황이 바친 영적 영성체 기도문.

오, 나의 예수님,

당신의 발 아래 엎드려

당신의 거룩한 현존의 심연 안에서

하찮은 저의 마음과

통회하는 저의 마음을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 사랑의 성체 안에서

당신을 흠숭하나이다.

제 마음은 

당신께 드리는 초라한 거처 안에서

당신을 영하고자 합니다.

당신의 성체를

직접 영할 수 있는 기쁨을 기다리며

영적으로나마 당신을 모시길 원하오니,

오, 나의 예수님,

제가 당신께 갈 수 있도록

저에게 오소서.

당신의 사랑이

삶과 죽음을 통해

저의 온 존재를 불타오르게 하소서.

당신을 믿고

당신께 희망을 걸고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아멘.

미사를 마친 다음 교황이 성령께 봉헌된 산타 마르타의 집 성당에서 퇴장할 때, 미사 참례자들이 함께 부활시기에 노래하는 성모 찬송가인 ‘레지나 첼리(Regina caeli, 하늘의 모후님!)’를 노래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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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4월 202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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