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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 코로나19 병자 돌보다 죽은 의사, 사제들 위해 기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코로나19 감염병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투신한 의사, 간호사, 사제들이 영웅적 모범이라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어 강론을 통해 태만의 죄를 경계했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2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목숨을 무릅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확진자들을 보살피고 있는 의료진과 사제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날까지 코로나19 확진자들을 돌보다가 감염돼 세상을 떠난 의사는 24명에 달한다. 아울러 약 5000명의 의료종사자들이 감염됐으며,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사제는 약 50명에 이른다. 교황은 다음과 같은 말로 미사를 시작했다.

“최근 며칠 동안 여러 의사분들과 신부님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간호사분들도 포함돼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분들은 병자들을 돌보다 감염돼 병에 걸렸습니다. 이들을 위해, 그리고 이들의 가족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아울러 이들이 병자들을 돌보면서 우리에게 보여준 영웅적인 모범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교황은 강론에서 이날 복음(요한 5,1-16 참조)을 해설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에 있던 병자를 고쳐주시는 사화를 소개한다. 교황은 복음을 해설하며 특별한 죄, 곧 태만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오늘 전례는 우리를 물에 대한 묵상으로 이끕니다. 물은 구원의 도구이기 때문에, 구원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물은 파괴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홍수를 생각해봅시다. (...) 하지만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의 전례에서 물은 구원을 뜻합니다. 제1독서에서 생명으로 이끄는 물은 바닷물을 되살립니다. 되살리는 새로운 물입니다. 그리고 복음에는 못이 나오는데, 물이 가득 찬 그 못으로 병을 낫게 하려고 병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에, 강처럼 물이 출렁거릴 때마다, 물에 들어간 첫 사람 혹은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들이 건강해졌다고 사람들이 말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수많은 병자들, 곧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습니다(요한 5,3 참조). 그들은 그곳에서 물이 움직여 병이 낫기를 기다렸습니다.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38년 동안 거기서 낫기를 기다렸던 겁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너무 긴 시간입니다. (...) 왜냐하면 건강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도와줄 누군가를 찾으려 노력하고, 약간은 민첩하게, 약간 약삭빠르게 몸을 움직여야 할 텐데 말이죠. (...) 하지만 이 사람은 병들었거나 죽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38년이나 거기 있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그가 누워있는 모습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전부터 그렇게 지내왔다는 사실을 아시고 ‘건강해지고 싶으냐?’하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흥미롭습니다. ‘네, 건강해지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고, 불평을 터뜨립니다. 자신의 병에 대해 불평합니까? 아닙니다. 그 병자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 가려고 결심하는 동안에 -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요한 5,7 참조). 그는 항상 늦게 도착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태도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는 병자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아마도 중풍병을 앓았겠지만, 조금 걸을 수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 병이 들었고, 영혼이 병들었고, 비관주의의 병이었으며, 슬픔의 병이었고, 태만의 병이었습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병입니다. ‘네, 저는 살고 싶습니다. (…)’ 그러나 그는 거기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의 대답이 ‘네, 저는 건강해지고 싶습니다!’였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불평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들어갑니다. 항상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들어갑니다.’ 건강해지기 위해 예수님이 하신 제안에 그가 했던 답변은 타인에 대한 불평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38년 동안이나 타인에 대해 불평하면서 지냈던 겁니다. 낫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죠.”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율법학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나중에 나오는 예수님과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한 5,14). 그 사람은 죄 중에 있었지만, 그가 큰 죄를 지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의 죄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삶에 대해 불평하는 죄입니다. 악마의 씨앗인 슬퍼하는 죄이며, 자신의 삶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타인의 삶에 대해서만 불평하는 죄입니다. 타인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타인에 대해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저보다 먼저 (못 속에) 들어가고, 저는 그러한 삶의 피해자입니다.’ 불평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불평만 쏟아냅니다.”

“우리가 지난 주일에 들었던,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과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람을) 비교해봅시다. 지난 주일 복음에서 눈을 뜬 그 사람은 얼마나 기뻐했고, 낫기 위해 얼마나 큰 결심을 했으며, 얼마나 큰 결심으로 율법학자들과 토론하러 갔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 사람은 그냥 가서 이렇게 말했을 뿐입니다. ‘네, 그분께서 나에게 (…) 하라고 말씀하시던데요.’ 그것으로 끝입니다. 자신의 삶에 녹아들지 못한 것입니다. (…) 무엇인가 행할 능력은 없지만 모든 것을 불평하는, 이렇게 태만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을, 우리 가운데 많은 이를 생각하게 합니다. 태만은 독약이자 영혼을 뒤덮고 숨 막혀 죽게 만드는 안개입니다. 태만은 마약과 같습니다. 자주 맛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슬퍼하는 중독자’, ‘나태한 중독자’로 끝나고 맙니다. (...) 이는 마치 공기와 같습니다. 우리에게 만연한 습관적인 죄입니다. 슬픔, 나태 말입니다. 우울증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거의 우울증인 셈입니다.” 

“우리가 빠질 수 있는 이 병이 어떤 것인지 보기 위해 요한복음 5장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아주 유익할 겁니다. 물은 우리를 구해줍니다. ‘하지만 저는 건강해질 수 없어요.’ ‘왜 그렇죠?’ ‘다른 사람 때문이에요.’ 그러고선 38년이나 거기 머물러 있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저를 낫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 사람은 건강해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지못했습니다. 들것을 들고, 춤추고 노래하며 감사를 드리고, 온 세상에 이 사실을 말하는 것 말입니다. 그런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냥 (자기 들것을 들고) 가버렸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안식일에) 들것을 들고 다니면 안 된다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지만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그러라고 하셨습니다’(요한 5,11 참조). 그러고는 그냥 가버립니다. 그런 다음 예수님께 가서 감사하는 대신, (유다인들에게) 모든 것은 ‘저 사람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침울한 삶입니다. 태만, 슬픔, 우울로 가득 찬 몹쓸 영의 침울한 삶입니다.”

“물을 생각해봅시다. 우리의 힘, 우리의 생명을 상징하는 물, 예수님께서 우리를 다시 태어나도록 하시려고, 곧 세례성사를 위해 사용하신 물을 생각해봅시다. 아울러 우리 자신을 생각해봅시다. 만일 우리 중 누군가 이러한 태만, 이러한 미지근한 죄에 빠져들 위험은 없는지 생각해봅시다. 미지근한 죄란 희지도 검지도 않은 죄, 무슨 죄인지도 모르는 죄입니다. 이 죄는 우리의 영성생활과 우리의 인격적인 삶을 파괴하려고 악마가 사용할 수 있는 죄입니다.”

“이러한 죄가 얼마나 악하고 추악한지 깨닫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길 빕니다.”

교황은 영성체 후 미사에 물리적으로 참례하지 못하는 신자들에게 영적 영성체(신령성체)를 하라고 초대했다. 이어 영적 영성체 기도문을 바치고 나서, 성체조배와 성체 강복으로 미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은 교황이 바친 영적 영성체 기도문.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 진실로 성체 안에 계심을 믿나이다.

세상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사랑하오며

주님의 성체를 영하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지금 주님의 성체를 영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영적으로라도 제 안에 오소서. ​

주님, 성체를 모실 때처럼 

주님과 온전히 일치하려 하오니 

영원히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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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월 202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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