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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두려움 속에 홀로 지내는 노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 곁에 가까이 계시고 힘을 주시길 빕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 17일 이같은 지향으로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인터넷 생중계로 아침미사를 봉헌했다. 아울러 마음을 다해 항상 용서하라고 초대했다.

Vatican News / 번역 이창욱

교황의 마음은 모든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다. 매일 특별한 방식으로 누군가를 바라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격리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을 위한 지향과 함께 3월 17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를 봉헌했다. 노인들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하는 아픔을 그 누구보다 더 뼈저리게 겪고 있다.

“저는 오늘 노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노인들은 감당키 힘든 내적 외로움과 때론 엄청난 두려움과 같은 특별한 방식으로 이 시기를 보내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모든 노인들 곁에 가까이 계시고 그들에게 힘을 주시길 기도합시다. 노인들은 우리에게 지혜, 삶, 역사를 주었습니다. 우리 또한 기도를 통해 그들 곁에 가까이 있도록 합시다.”

교황의 강론은 복음에서 영감을 받아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께 몇 번이나 타인을 용서하는 것이 옳은지 물었던 ‘용서’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교황은 “사람들을 단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하느님께서는 “용서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교황의 강론 내용.

“예수님께서는 형제들의 일치에 관해 가르치시다가 다음과 같은 멋진 말씀으로 마무리하십니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형제들 간의 일치, 우정, 평화는 하느님의 자비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 참조)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에서 ‘항상’을 의미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항상 용서해야 합니다. 물론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이 언제나 증오, 복수, 원한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족 간 증오로 파괴된 가족들을 보았습니다. 이런 증오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형제들은 부모 중 한 사람의 관 앞에서 묵은 원한을 앞세우기 때문에 서로 인사도 나누지 않습니다. 사랑보다 증오에 집착하는 것이 훨씬 더 강하게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악마의 보물입니다. 악마는 항상 우리의 원한 사이에, 우리의 증오 사이에 웅크리고 있으며, 그런 마음을 키우고, 파괴하기 위해 (그런 마음을) 계속 유지시킵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사소한 일 때문에 파괴됩니다.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용서하기 위해 오신 하느님도 파괴됩니다. 이 하느님은 죄인에게 다가오시고 모든 죄를 잊어버리시며 그를 위해 축제를 벌일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때, 우리가 저지른 모든 악을 잊어버리십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하느님의 고질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억이 없으십니다. 이 경우 ‘기억을 잃는 역량’이 있는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수많은 죄인들의 추악한 역사, 우리 죄에 대한 기억을 잊으십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다만 우리에게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이것만 실천하라’고 청하실 뿐입니다. (원한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지 말고, ‘너는 대가를 치를 거야’라는 마음, 곧 증오나 원한을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말은 그리스도인다운 말도 아니고, 인간적이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의 너그러움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미사에 가느냐?’ ‘네.’ ‘미사에 참례하러 갈 때 혹시 너희에게 무엇인가 잘못한 형제가 떠오른다면, 먼저 그와 화해하여라. 한 손에는 나를 향한 사랑을 가지고 다른 한 손에는 형제애 대한 증오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마라.’ 이것이 사랑의 일관성입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험담하고, 계속해서 자기 직장동료들을 깎아 내리며, 이웃들, 친지들을 욕하고, 사람들을 단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잘못한 어떤 일을 용서하지 않았거나, 혹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을 (사람들이) 행했다는 것을 마음에 품고 있는 이들입니다. 악마가 가진 재산은 바로 이것 같습니다. 곧, 용서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도록 씨 뿌리는 것, 용서하지 않는 마음에 집착해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용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비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곧,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용서의 지혜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길 빕니다. 한 가지를 실천해봅시다. 고해성사, 곧 화해의 성사를 받으러 갈 때, 먼저 이렇게 자문해봅시다. ‘나는 용서했는가?’ 만일 내가 용서하지 못했다고 느낀다면, 용서를 구하는 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면 나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청하는 것은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둘은 서로 함께 갑니다.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위해 용서를 청하는 사람들은 (비유에 나오는) 이 사람처럼 주인이 모든 것을 용서하지만, 타인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 사람처럼 끝날 것입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 18,35).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내용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교만하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하도록 도와주시길 빕니다. 적어도 ‘내 몫을 위해서라도’ 용서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어째서 그래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용서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이를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항상 용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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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3월 2020,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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