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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길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걸으셨던 길을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그 길은 바로 자신을 낮추는 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월 2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그리스도인들, 사제들, 주교들 및 교황 자신도 이 길을 따르지 않을 경우 잘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리스도교를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인의 일관성의 은총을 청하자고 말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김호열 신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론 묵상의 실마리를 얻은 이날 전례의 복음 대목에 나오는 질문이다. 복음은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알기 위해 이미 걸어왔던 여정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그 여정이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위해 택하신 길을 알고, 고백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령의 은총으로 예수님을 고백하십시오

교황은 예수님을 아는 것이란 “우리가 복음을 읽고, 예수님을 알기 위해 탐구하고, 자녀들을 교리 교육에 데려 가고 (…), 미사에 데려 갈 때 우리 모두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을 아는 첫 걸음이다. 교황은 다음 단계가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을 우리 혼자서 할 수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에 따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다’(마태 16,17 참조)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느님의 권능과 성령의 권능으로만 예수님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 누구도 성령 없이는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말하고 고백할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성령 없이 예수님을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예수님을 고백하고, 그분이 하느님이자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고백하기 위해 항상 성령의 힘을 청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의 길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분께서는 왜 이 세상에 오셨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예수님을 아는 길의 세 번째 단계를 밟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죽음에 이르렀다가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사도들에게 가르치셨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고서는,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은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오셨고, 저를 위해 죽으셨고, 저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서 택하신 길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길은 바로 자신을 낮추는 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리 2,6-8 참조)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길, 구원을 위해 선택하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겸손의 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고 하신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선택한 길을 거부한 베드로를 당신에게서 물러가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탄의 “고백”을 거부했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은 겸손의 길,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길을 따라가지 않을 때 잘못을 저지르고, 세속적으로 변합니다.”

“선한 의지를 지녔지만, 종교를 사회적 개념의 맥락에서 친절이나 우정과 혼동하는 선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을 볼 때, 그리고 많은 성직자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면서 명예, 사치, 세속의 길을 찾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찾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하지만, 그저 허울뿐인 그리스도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길,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런 식으로 살았던 많은 주교들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길을 알지 못하고, 그 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세속적인 교황들도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길이 그리스도인들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삶과 직무 수행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일관성

교황은 “출세의 도구로 그리스도교를 이용하지 않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일관성의 은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님의 길을 따를 수 있는 은총을 청하자고 권고하면서 강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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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월 202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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