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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ANSA)

“하느님에 대한 순명을 통해 자유로워지십시오”

“우상, 교만, 자기 자신에 대한 과신을 이기는 길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신뢰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2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착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란 정의, 사랑, 용서, 자비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Giada Aquilino / 번역 이창욱

“언제나 새로운” 하느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20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강조한 권고다. 교황은 제1독서(1사무 15,16-23 참조)를 묵상하면서 사무엘에게 내린 “예언”, 곧 임금으로서 사울에 대한 “하느님의” 배척에 관해 설명했다. 

타락의 행보

교황은 “사울의 죄”에 대해 설명했다. 곧, 하느님 말씀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더 옳다”고 여기며 하느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교황은 이것이 바로 “순종을 거역하는 죄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주님께서는 전투에서 승리한 백성에게서 아무런 전리품도 취하지 말라고 사울에게 말씀하셨지만, 실제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무엘이 주님을 대신해서 사울을 질책하려고 갔을 때, 사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1사무 15,21 참조). 사울은 자기 주머니에 아무것도 넣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여겼지만 오히려 하느님 말씀을 해석하는 이런 태도를 통해 다른 이들로 하여금 무엇인가 전리품으로 주머니에 넣는 일을 허용했던 겁니다. 타락의 길입니다. 작은 불순명으로 시작해, 불순종으로 나아갑니다. 앞으로, 앞으로.”

불순종

교황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말렉 사람들을 “전멸시킨” 다음 “주님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완전히 없애버리기로 맹세한 것 가운데 가장 좋은 것, 살진 짐승”을 전리품으로 취했다고 떠올렸다. 사무엘은 어떻게 주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더 좋아하시겠냐고 상기하며, “가치의 목록”을 열거했다. 곧,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고, “희생, 단식, 고행을 하는 것”보다 오히려 “순명하는 것”이다. 교황은 “불순종의 죄”란 “내가 모르는 사이 주님께서 나에게 명령하시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선호하는” 데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주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이는 마치 “점을 보는 죄와 같다’고 설명했다. 비록 하느님을 믿는다고는 말하지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위해’ 점을 보러 가고 손금을 보러”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황은 주님에게 불순명하는 것, 불순종(순종의 결여)은 “점을 보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여러분이 주님의 뜻 앞에서 고집을 부릴 때, 여러분은 우상숭배자입니다. 주님의 뜻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우상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에게 있어서 이 불순명은 왕국을 잃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었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3). 이는 우리로 하여금 순종에 관해 조금 생각하게 해줍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복음과 주님의 말씀보다 복음이나 주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더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결의론(決疑論, casistiche: 사회적 관습이나 율법에 비추어 도덕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세철학)이나 윤리적 결의론에 빠질 때, (...) 이는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계명을 통해 보여주시고, 여러분 마음속에 계신 성령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부리고 주님의 말씀을 이데올로기로 바꾼다면, 그때 나는 우상숭배자이지 순종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말씀에 온순하게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순명입니다.”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

교황은 이날 복음인 마르코 복음과 연결시키면서,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난을 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고 설명하신다. 옷이 더 심하게 찢어지기 때문이다(마르 2,21 참조). 또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모든 것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마르 2,22 참조).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마르 2,22).

“주님 말씀의 새로움은 언제나 승리하고, 모든 것보다 낫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항상 새롭고, 우리를 항상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상을 이기고, 교만을 이깁니다. 주님의 말씀은 주님의 말씀이 아니라 주님 말씀 주변에 내가 구축한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는 태도를 이깁니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아주 좋은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구약성경에서 발췌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9,13; 호세 6,6 참조).

하느님께 대한 신뢰

“착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온순”해지는 것, 주님께서 “정의에 대해”, “사랑에 대해”, “용서에 대해”, “자비에 대해” 말씀하시는 내용을 듣는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려고 이데올로기”를 사용하거나, ‘일관성 없는 삶”은 착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황은 주님의 말씀이 “때때로 우리를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하지만, “악마도 그와 똑같은 일을 ‘기만적으로’ 행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를 통해 “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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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월 202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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