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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권위는 명령 내리는 게 아니라 일관성과 증거입니다”

주님의 참된 “권위”와 주님의 방식에서 멀어지며 증거의 삶을 살지 않고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목자들과 “일관성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 악을 저지르는가. 프란치스코 교황은 1월 14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아울러 하느님의 백성이 일관성 없는 사목자를 너그럽게 참아 주지만 위선의 이면을 분별할 줄 아는 “온유하고” “현명한” 백성이라고 설명했다.

Gabriella Ceraso / 번역 이창욱

“예수님은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날 마르코 복음(마르 1,21ㄴ-28)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에 대해, 그리고 율법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행동하시는 그분의 방식이 사람들에게 일으킨 반응에 대해 들려준다. 이러한 상반되는 행동방식에서 교황은 예수님처럼 “내적 권위”, “권위를 가지는 것”과 “율법학자들처럼 권위가 없으면서도 권위를 행사하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설명했다. 율법학자들은 율법을 가르치는 일에서는 전문가들이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그들의 말은 들었지만 그들을 믿지는 않았다.

예수님의 방식은 품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진 권위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방식입니다. 곧, 몸소 움직이시고, 가르치시고, 치유하시고, 경청하시는, 말하자면 지도력(signoria)입니다.. 이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품위 있는(signorile) 방식을 보여줍니다. (...) 무엇을 보여줍니까? 일관성입니다. 예수님은 일관성이 있었기 때문에 권위를 가지셨습니다. 가르치신 것과 행하신 것이 일관적이었고 삶의 방식이 일관적이었습니다. 일관성 있는 행동은 권위를 가진 사람을 표현해줍니다. ‘이 사람은 일관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권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증거하는 사람입니다. 권위는 바로 이러한 면을 보여줍니다. 곧 일관성과 증거입니다.”

율법학자들, 말은 하지만 실천 않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목자들

예수님은 일관적이지 않은 율법학자들과 관련해 “(율법학자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마태 23,3 참조)고 사람들에게 권고하신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들을 책망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신다는 점에 교황은 주목했다. 교황은 “(율법학자들이) 이러한 태도를 통해 ‘사목적 조현병’에 걸렸기 때문에 말은 이렇게 하고 행동은 전혀 딴판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복음의 여러 사화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수님은 종종 그들을 궁지로 몰아넣으며 반응하시고, 그들에게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으시며, 어떤 때는 “그들을 평가하기도” 하신다.

“이러한 비일관성, 이렇게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행동을 평가하기 위해 예수님이 사용하시는 단어가 바로 ‘위선’입니다. 그들을 평가하며 마치 후렴구처럼 반복하십니다! 마태오 복음 23장을 읽어봅시다.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니 너희 위선자들아 (...) 이렇게 하면서 기도는 길게 하니 너희 위선자들아 (...) 위선자들아 (...)’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선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위선’이란 사람들에 대해 책임, 곧 이 경우 사목적 책임을 맡았지만, 일관적이지 않고, 지도력도 없으며, 권위도 없는 이들의 행동 방식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백성은 온유하고 너그럽습니다. 일관성 없이,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수많은 위선적인 사목자들,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수많은 사목자들을 너그럽게 참아줍니다.”

일관성 없는 그리스도인은 스캔들입니다

그토록 많이 너그럽게 참아주는 하느님 백성도 은총의 힘을 식별할 줄 안다고 교황은 덧붙였다. 이어 이날 전례에 나오는 제1독서를 언급했다. 제1독서에서 연로한 엘리 사제는 “모든 권위를 잃었고, 단지 도유의 은총만 그에게 남았으며, 그 은총으로” 어머니가 되기 위해 기도하며 고통에 지친 한나를 “축복하고 기적을 베풀었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교황은 하느님의 백성, 그리스도인과 사목자들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다. 

“하느님의 백성은 누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도유의 은총을 받았는지 잘 식별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저 사람에게 고해성사하러 가는데, 그 사람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 사람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에게 (성사를 주시는) 그분은 하느님입니다. 네. 예수님입니다.’ 이러한 태도가 율법학자 같은 사목자들, 일관되지 못한 수많은 사목자들, 매 주일 미사에 참례하러 가지만 나중에는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수없이 너그럽게 보아주는 우리 백성의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행동은 스캔들이고, 일관성 없는 행동입니다.’ 증거하지 않고 일관성 없는 그리스도인들, 증거하지 못하는 사목자들,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목자들이 얼마나 많은 악을 저지르는지요!”

이번 묵상은 주님께 기도 드리는 기회를 준다. 교황은 강론 말미에, 세례 받은 모든 신자가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주님께 기도했다. “권위란 명령하거나 말을 듣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관성 있는 것,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길에서 여정의 동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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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월 202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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