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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ANSA)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은 숨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희망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집착하지 말아야 하고, 오히려 주님과의 만남에 “중점을 두며” 살아야 한다. 만일 이러한 관점을 잃는다면, 삶은 정체되고 모든 일이 멈추며, 결국 부패되고 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9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이같이 말하며, 그리스도인 희망에 초점을 맞췄다.

Debora Donnini  / 번역 이창욱

희망은 강 건너편에 닻을 던지는 것과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9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주님과의 만남에 “중점을 두며” 살도록 권고하기 위해 이런 이미지를 사용했다. 교황은 만일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삶이 부패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은 “철학적인 가르침”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교황의 묵상은 사도 바오로가 “희망의 찬가를 노래하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발췌한 제1독서(로마 8,18-25)에서 출발했다. 분명히 “일부 로마인들은” 불평을 늘어놓으려고 (사도에게로) 갔고 바오로는 앞을 바라보라고 격려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로마 8,18). 사도 바오로는 계시를 “간절히 기다리는” 피조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따라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희망입니다. 주님의 계시, 주님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통과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것은 내일 겪을 일이며”, 한편 오늘 “여러분은 약속을 보장받고” 있다. 그 약속이란 이미 이 순간에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활동하시는” 성령이시다. 사실 희망은 “강 건너편에 닻을 던지는 것과 같고”, 그 끈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은 “희망 안에서 해방될 것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으로 들어갈 것이다(로마 8,20-21 참조). 그리고 “성령의 첫 선물”을 담보 받은 우리 또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로마 8,23) 있다. 

“희망은 항상 이러한 긴장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둥지를 틀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디론가 향하는 긴장 안에’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관점을 잃는다면 삶은 정체되고 모든 일은 멈추며, 결국 부패합니다. 물을 생각해봅시다. 물이 정체되고, 흐르지 않으며, 움직이지 않는다면, 부패하고 맙니다. 그리스도인이 앞으로 나아갈 줄 모르고, 강 건너편을 향하는 긴장 안에 있지 않다면, 그에게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입니다. 그는 썩고 말 것입니다. 그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은 철학적인 가르침에 불과할 것이고,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갈 것이며, 그는 그런 것이 신앙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희망이 없다면 신앙이 아닙니다.”

교황은 이어 “희망을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주목했다. 만일 우리가 신앙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께 대한 신앙을 언급하고, 신경을 바치며,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할 것이다. 또 사랑에 대해 말한다면, “이웃과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 타인에게 행하는 많은 자선활동”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이해하기 어렵다. “희망은 오직 가난한 사람들만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한 덕목”이다. 

“만일 우리가 희망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는 가난한 사람,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 말입니다. 또 강 건너편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희망은 겸손입니다. 말하자면, 매일 활동하는 덕목입니다. 매일 희망을 다시 부여잡아야 합니다. 매일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 하고, 매일 끈을 붙잡고, 닻이 그곳에 잘 고정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끈을 손으로 잘 잡고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담보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담보란 작은 일을 통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이십니다.”

희망의 삶과 관련해 교황은 이날 복음 구절(루카 13,18-21)에서 하느님 나라를 정원에 심은 겨자씨에 비기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언급했다. 우리는 매일 (그것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씨가) 자라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자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은 그것이 “인내”라고 분명히 말했다. 사도 바오로가 말하듯이, “희망은 인내심이 필요하기”(로마 8,25 참조) 때문이다. “우리는 씨를 뿌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라는 것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 교황은 “희망은 작지만 공을 들여야 하고”, “씨앗을 뿌린 뒤 땅이 그 씨앗을 성장시키도록 놓아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날 복음에서 볼 수 있듯, 교황은 예수님이 희망에 대해 말씀하시려고 어떤 여자가 가져다가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던 “누룩”의 이미지를 사용하셨다고 설명했다. 냉장고 속에 넣어둔 것이 아니라 “삶 안에 반죽된” 누룩은 땅 아래 심어진 겨자씨와 같다. 

“따라서 희망은 보이지 않는 덕목입니다. 아래에서 활동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아래를 바라보도록 이끕니다. 희망 안에 사는 것은 쉽지 않지만, (희망은) 그리스도인이 숨쉬는 공기, 희망의 공기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도,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희망은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이것은 분명하고, 반드시 그렇습니다. 희망은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희망한다면,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주님의 약속에 마음을 열고, 그 약속을 기다릴 필요가 있지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모두에게, 기다리며 살아가는 은총을, 긴장 속에 살아가는 은총을 주시길 빕니다. 신경질적이거나, 문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강 건너편으로 이끄시고 우리를 희망 속에 머물게 하시는 성령을 통해 긴장 속에 살아가는 은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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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10월 201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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