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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신앙 대신 이념을 택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8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어떤 조건을 걸고”, 다시 말해 특정 조건에서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식이 있다고 경고했다. 교황은 “속 좁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님께서는 심판하러 오신 게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에 자비로이 모든 인간적 현실에 가까이 다가가신다고 강조했다.

Adriana Masotti / 번역 이창욱

요나 예언서에서 발췌한 이날 전례의 제1독서(요나 3,1-10 참조)는 어제 미사 독서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며, 내일로 마무리될 것이다. 이날 독서 내용은 하느님과 요나의 대립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니네베의 회개를 위해 요나 예언자를 파견하시려는 주님의 첫 번째 부르심을 다룬 앞선 단락(요나 1,1-2,1.11 참조)을 떠올렸다. 그런데 요나는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했고,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달아났다. (주님께서 맡기신) 그 임무가 그에게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타르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고, 주님께서 일으키신 큰 폭풍이 일자, 그 재앙에 대한 잘못이 있기 때문에 요나는 바다에 내던져졌다. 하지만 나중에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켜 사흘 낮과 밤이 지난 후에 육지로 뱉어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사흘 동안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요나의 모습을 당신 부활의 표징으로 택하셨습니다.”

사람들의 회심 앞에서 마음을 돌리시는 하느님

이날 독서에는 두 번째 부르심이 나온다(요나 3,1-10 참조). 하느님께서 다시 요나를 부르시자 이번에는 요나가 순종하여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고 회심을 했기에,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시어 그들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그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다”(요나 3,10). 교황은 “이는 고집이 센 사람의 이야기이므로, 고집이 센 요나는 자기 일을 아주 잘 수행했고 그런 다음 그곳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내일 독서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다시 말해 주님께서 너무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그리고 예언자의 입을 통해 위협하셨던 내용과 반대되는 일을 이루셨기 때문에, 요나가 어떻게 화를 내는지 볼 수 있다. (마침내) 요나는 주님을 책망한다.

“’아, 주님! 제가 고향에 있을 때에 이미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서둘러 타르시스로 달아났습니다. 저는 당신께서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이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크시며, 벌하시다가도 쉬이 마음을 돌리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 제발 저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더 이상 주님과 일하기 싫습니다.’ 당신과 함께 예언자로서의 일을 계속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습니다. 결국 당신께서는 저를 보내신 이유와는 반대로 행하십니다.”

주님의 자비에 대한 요나의 분노

요나는 성읍을 나와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보려고 기다렸다. 요나는 하느님께서 그 성읍을 파괴하시기를 원했다(요나 4,5 참조).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에게 그늘을 드리워주도록 곁에 아주까리를 자라 오르게 하셨다(요나 4,6 참조). 하지만 그 아주까리가 금세 말라 죽도록 하셨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또 다시 화를 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너는 네가 수고하지도 않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자랐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아주까리를 그토록 동정하는구나!”(요나 4,10)하고 말씀하셨다. 주님과 요나의 대화는 고집 센 둘 사이의 긴밀한 대화라고 교황은 주목했다.

“신앙에 대해 확신을 가진 고집 센 요나와 자비 넘치시되 고집 센 주님의 대화입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끝까지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바로 거기서 말입니다. 요나는 조건을 걸고 신앙을 이해했기 때문에, 고집을 부렸습니다. 요나는 ‘이렇게 할 때만 믿는(a patto che)’ 그리스도인, 조건을 거는 그리스도인의 모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일이 이렇게 되는 조건에 한해서입니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런 변덕스러운 자세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단입니다.’ ‘이런 것은 옳지 않습니다.’ (...) (이는) 하느님을 조건화시키고, 신앙과 하느님의 활동을 조건화시키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조건을 거는” 그리스도인은 성장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교황은 “조건을 거는” 태도가 수많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자기 생각에 갇히게 하며 이념(이데올로기, 관념)에 빠지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이념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나쁜 신앙의 길입니다. (...)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확신, 그들의 최우선적인 신념, 자신의 이념”에만 집착해 “삶의 도전, 주님의 도전, 역사의 도전을 키워나가기를” 두려워한다고 교황은 설명했다. 이어 “신앙보다 이념을 더 선호하고”, 공동체에서 멀어지며, “하느님의 손에 자신을 맡기길 두려워하고, 자신의 속 좁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길 선호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강론을 마무리했다.

“오늘날, 교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한편에는 자신의 이념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이념론자들의 교회가 있고, (다른 한편에는) 모든 현실에 다가가시는 주님을 보여주는 교회, 곧 (아무도) 혐오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주님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으며, (심지어) 우리의 죄도 그분에게 혐오감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그분께서 나병환자들이나 병자들을 어루만지려 다가가셨듯이 우리 가까이로 다가오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치유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심판하러 오신 게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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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10월 201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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