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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ANSA)

“하느님의 말씀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성장시키는 생명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오만함이나 이데올로기와 타협을 가져올 수 있는 “완고한 마음”을 갖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17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에서 강조한 강론의 핵심이다.

Gabriella Ceraso / 번역 김호열 신부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 그 누구도 살아계신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완고하고 믿음이 없는 마음을 가지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오늘 전례의 제1독서 (히브 3,7-14)인 히브리서의 저자가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던진 강력한 “메시지”이자 “경고”를 (인용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1월 17일 목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 “사제들, 수녀들, 주교들” 역시 “완고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고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황은 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제 1독서에서 가져온 3개의 단어인 “엄격함(durezza)”, “완고함(ostinazione)”, “유혹(seduzione)”을 제시했다.

살아갈 용기를 잃은 겁쟁이 그리스도인들

엄격한 마음은 “닫힌” 마음이며,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닫아 버리는” 마음이다. 교황은 인생에서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면서, 예컨대 “(자신을 향한) 공격들이 몸을 경직시키게 만들기 때문에”, “힘든 고통”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일이 엠마우스의 제자들과 토마스 사도에게도 일어났다. 이러한 “나쁜 태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닫힌 사람”이고, “닫힌 마음은 엄격함입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의 마음은 굳어져 있는가? 나의 마음은 닫혀 있는가? 나는 내 마음이 성장하게(커지게) 하는가? 나는 그런 성장을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항상 시련과 어려움 가운데서 성장합니다. (모두가) 어린 시절 때부터 자라온 바와 같이 (그렇게) 성장합니다. 우리는 넘어지면서 걷는 법을 익혔습니다. 우리는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많이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어려움 가운데서 성장합니다. 완고함은 (마음을) 닫는 것입니다. 누가 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 나는 엄격한 사람인가? 완고함은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나쁜 태도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살아갈 용기가 부족합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닫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엄격함입니다.”

완고하고 이념적인 그리스도인들

두 번째 단어는 “완고함”이다. 교황은 히브리서가 “여러분은 날마다 서로 격려하여, 죄의 속임수에 넘어가 완고해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도록 하십시오”(히브 3,13)라고 말하고 있다며, 성 스테파노는 자신에게 돌을 던질 사람들을 향해 완고하다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완고함이란 “영적인 고집”이다. 교황은 완고한 마음이 “적대적이고”, “고집스러우며”, 자신의 생각 안에 갇혀 있고, “성령께 열려 있지” 않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이념적인 사람들”의 프로필이다. “교만한 사람들”이며, “오만한 사람들”이다.

“이데올로기는 완고함입니다. 하느님 말씀과 성령의 은총은 이념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성장하게 하고, 항상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또한 성령의 표징과 시대의 표징에로 마음을 열게 하는 생명입니다. 완고함은 또한 오만함과 교만함입니다. 고집불통은 아프게 합니다. 마음이 닫혀 있고 굳은 사람들은 완고한 사람들입니다. 고집불통이고 완고한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이념적인 사람들입니다. ‘나는 고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각자 생각해 봅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신다면 (이렇게들 말씀하시겠지요.)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요. (…)’ ‘나는 대화할 능력이 있는가?’ 완고한 사람들은 대화하지 않으며, 대화할 줄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항상 생각으로 자신을 방어하기 때문입니다.”

타협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유혹의 노예들입니다

완고한 마음을 가지는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이해하기 위한 마지막 단어는 “유혹”이다. 우리의 마음 안에 “들어가 지배하길” 원하고, 그렇게 할 줄 아는 “커다란 유혹자”, “신앙 없이 증오만 가지고 있는 커다란 신학자”인 악마가 유발하는 죄의 유혹이다. 따라서 교황은 “완고한 마음은 (자신이) 유혹에 빠지도록 내버려 둔다”며 “유혹은 그를 완고함으로, 닫힘으로,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로 빠져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유혹이 왔을 때 우리는 회개하고 삶을 바꾸거나, 혹은 타협을 시도한다. 이쪽에 조금, 저쪽에 조금,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다. “네, 저는 주님을 따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유혹도 조금 좋아합니다.” “이중적인 그리스도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했던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의 말을 인용해 봅시다. ‘여러분은 두 다리로 절뚝거립니다.’ 한 다리가 아닌, 두 다리 모두 절뚝거립니다. 이는 타협의 삶입니다. ‘네,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주님을 따릅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미온적인 사람들은 항상 타협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역시 많은 경우 그렇게 합니다. 타협하는 것이지요. 주님께서 십계명과 성령의 식별로 우리에게 길을 알려 주실 때도, 우리는 다른 것을 좋아하고 두 다리로 절뚝거리면서 두 개의 선로로 가는 방법을 찾습니다.”

교황은 다음의 기도로 강론을 마쳤다. “그 누구도 완고한 마음을 갖지 않도록 성령께서 저희를 밝혀 주소서. 굳은 마음은 여러분을 오만함으로 이끕니다. 오만한 마음은 당신을 반항으로, 이념으로 이끕니다. 유혹의 노예인, 유혹에 떨어진 마음은 여러분을 타협의 그리스도교로 이끕니다.”

17 1월 2019,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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