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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자비를 알리기 위해 습관을 버리는 것이 증거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1월 8일 목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개인적, 가족적, 본당적, 교구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 일상의 빵”인 투덜거림(뒷담화)의 죄에 대해 경고하면서 복음의 논리는 세상의 논리와 반대라고 강조했다.

Debora Donnini / 번역 김호열 신부

증거(testimonianza), 뒷담화(mormorazione), 그리고 질문(domanda). 이 세 단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8일 목요일 오전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 중에 다뤘던 내용이다. 이날 미사에는 “사도좌 정기 방문(앗리미나, ad Limina)” 중인 루마니아와 몰도바 주교단이 함께했다. 강론 묵상은 예수님의 증언으로 시작되는 이날 복음인 루카 복음(루카 15,1-10) 내용으로부터 시작됐다. 세리들과 죄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었으며,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투덜거렸다.

증거는 교회를 성장시킵니다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의 모범이 있었다. 교황은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이) “죄인들과 만나고 나환자들을 만짐으로써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 당시로는 새로운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곧, 부정탄다는 이유로) 율법 학자들은 죄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교황은 “역사상 증언하는 것이, 자주 순교로써 그 대가를 지불했던 증거자들뿐 아니라 권력자들에게도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증거하는 것은 습관을 버리는 것이자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습관을 바꾸면서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교회가 증거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목을 끄는 것은 증거입니다.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주목을 끌고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은 바로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증거하십니다. 이는 새로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비는 구약에도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 학자들은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마태 12,7)라는 말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 성경 대목을 읽었지만 자비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시는 방법으로, 증거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십니다.”

교황은 “증거는 항상 습관을 버리게 하지만, 여러분을 위험에 처하게도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갈등 상황을 해결하는 대신 불평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증거는 불평을 불러 일으킨다. 바리사이들과 서기관들과 율법 학자들은 “보십시오, 저 사람은 죄인들을 회개시키고자 그들은 받아들이니 좋은 사람 같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다”고 ‘투덜거린다.’ 이는 항상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부정적 비판”을 하는 태도다. 교황은 “불평하는 이 죄는 작건 크건 간에 일상의 죄”라고 말했다. 아울러 또한 각자 스스로의 삶 안에서 불평하게 되는 것은 “이런저런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로 대화하거나 갈등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항상 은밀하게 낮은 목소리로 불평한다”면서 “그 이유는 대놓고 명확하게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교황은 이러한 것들이 또한 “작은 공동체인 본당 안에서도” 행해진다고 말했다. 교황은 “내가 싫어하는 증언이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때 즉시 불평한다”고 꼬집으면서, 다음과 같이 반문했다. “본당 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에 대해 불평합니까?”

“교구 내에서는 어떻습니까? ‘교구들 사이’의 다툼, (…) 같은 교구 안에서의 다툼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정부가 정직하지 못할 때, 상대방 당을 흠집내기 위해 비방합니다. 그것이 명예 훼손이든 비난이든 상관하지 않고 항상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경험을 통해서, 독재 정권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다. 독재 정권은 무엇을 합니까? 그들은 먼저 계엄법을 통해 언론 매체를 장악합니다. 거기서부터 그들은 자신의 정부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을 비방하고 무력화시키기 시작합니다. 불평(뒷담화)은 개인적, 가족적, 본당적, 교구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 우리 일상의 빵입니다.”

예수님의 질문

교황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사람들이 생각치도 못하게 하는 도피처”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잘 알고 계시지만, 좋은 분이시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대신”, (오히려) 질문을 하신다. “당신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하십니다.” 다시 말해, 질문하신다. 그들(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나쁜 의도”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시험에 떨어지게 하기 위해”, 질문한다. 예를 들어, 황제에게 내야 할 세금에 관한 질문이나 부인에게 이혼장을 써주어야 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그러한 것이다. 예수님 또한 그들과 같은 방법을 사용하지만, “그들과 다른 점을 볼 수 있다”고 교황은 역설했다. 이날 복음에서 들은 것처럼, 예수님은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고 말씀하신다. 양 한 마리를 잃었지만, “나는 아흔아홉 마리를 가지고 있고, 곧 해가 지고 어두워지기 시작 할 텐데(곧,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서는 것은 위험 할 텐데)”라며 머리를 굴리는 목동처럼 하지 않고, (이 비유의 뜻을) “그들이 이해하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라고 교황은 말했다.

“’잃어 버린 양은 그냥 내버려 둡시다. 손해 볼 것은 없을 겁니다. 나머지 양들이나 구합시다.’ 이것이 바리사이들의 논리입니다. 이것이 율법 학자들의 논리입니다. (예수님이) ‘너희 가운데 누가?’라고 물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는 반대의 것을 선택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죄인들과 대화하지 않고, 세리들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세리들을 가까이하지 않는 이유는 ‘이 사람들로 인해서 더러워지지 않는 것이 낫고, 위험에 처해지지 않는 것이 낫다. 우리들의 율법을 지키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현명하게 질문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결의론(決疑論, casistica) 안으로 들어 가시지만 그들을 올바른 입장의 반대편에 두기 위해서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그렇게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아무도 ‘네, 맞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모두가 ‘아니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용서할 능력이 없습니다. 자비로워지거나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복음의 논리는 세상의 논리와 반대입니다

끝으로, 교황은 다시 한 번 더 자신이 했던 묵상 내용 중의 세 단어를 상기시켰다. “증거”는 도발적이며, “교회를 성장”시킨다. “투덜거림”은 “증거가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내 안의 보호자와” 같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질문”이다. 교황은 또 다른 단어에 대해 말했다. “이 군중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과 축제가 있습니다.” 교황은 “율법 학자들의 길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복음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강론을 마쳤다. “주님께서 우리가 세상의 논리에 반대되는 복음의 논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08 11월 2018,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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