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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 Vatican Media)

“목자는 겸손해야 하고 가엾은 마음을 지니며 기도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8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목자의 상징이신 예수님이 온유함과 부드러운 애정으로 표현된 겸손과 가엾은 마음(compassione, 연민)을 통해 권위를 가지셨다고 상기시켰다. “우리 사목자들은 권력자들이나 영혼을 불행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에 가까이 갈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목자로서 예수님에게 권위를 부여했던 것은 온유함과 부드러운 애정으로 표현됐던 그분의 겸손,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감, 가엾은 마음(compassione, 연민)이었다. 골고타에서와 같이 사태가 좋지 않게 진행됐을 때는 “침묵하며 기도”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 18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에서 목자의 상징이자 모델로 예수님을 제시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은총인 권위를 가지셨는데, 그 권위는 “특정 권력층들이나 이데올로기 계층들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심으로써 그분에게 주어진 것이다.

과부의 부활한 외아들

교황은 이날 전례에서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기적사화가 나오는 루카 복음(7,11-17) 구절을 해설했다. 예수님은 당신이 설교하셨던 사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에 군중 앞에서 권위를 가지셨다고 교황은 강조했다. 사실 그분께서 가르치셨던 내용은 당시 다른 사람들이 했던 것과 거의 동일한 내용이었다. “그분께서는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메시아다’ 혹은 ‘나는 예언자다’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을 낫게 하셨을 때나 혹은 사람들에게 설교하셨을 때나 혹은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행하셨을 때도 나팔을 불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겸손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저) 행하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가까이 계셨지만 율법학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편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가르치지만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율법학자들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었으며, 단지 율법을 부과하기 위해서만 가르칠 뿐이었고, “300개 조항에 이르기까지 율법을 부풀렸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복음에서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계시지 않을 때는, 기도하시러 아버지와 함께 머무셨을 때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예수님의 생애 중 대부분의 시간을, 사람들과 함께 길에서 보내셨습니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겸손이 예수님께 권위를 부여했으며, 그분을 사람들과 가까이 머물게 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을 만지셨고, 사람들을 껴안으셨으며,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셨고,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셨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분께 권위를 부여했습니다.”

‘함께 고통을 겪는’ 역량을 갖추셨고, 마음으로 생각하셨다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홀몸이 된 과부인 어머니와 죽은 아들을 보시며 예수님께서 “애끓는 마음(grande compassione)”을 지니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곧, 예수님은 “이론적이지 않았으며, 함께 고통을 나누는 능력(questa capacità di patire con. Non era teorico)”을 가지고 계셨다. 이는 “마음으로 생각하셨고, 마음에서 머리를 떼어놓지 않으셨다”고 말할 수 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이 가엾은 마음(compassione, 연민)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곧 온유함과 부드러운 애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다시 말해 온유한 마음입니다. 바로 그런 온유함입니다. 그분께서는 온유하셨고,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온유하셨습니다. 항상 온유함을 지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당신 아버지의 집이 환전하고 물건을 파는 쇼핑 장소로 변한 것을 보셨을 때를 생각해봅시다. (...) 거기서 화를 내셨고, 채찍을 드셨으며,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하지만 이는 아버지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 겸손하셨기 때문에, 그러한 힘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애정과 온유함으로 이루어진 연민

그 다음은 부드러운 애정이다. 예수님께서는 거리를 두시면서 “부인, 울지 마시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아닙니다. 다가가셨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어깨를 만지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를 어루만지셨을 것입니다. ‘울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계시고, 사람들 한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이시므로, 우리에게도 그와 똑같이 행하십니다.” 부드러운 애정의 다른 몸짓은 젊은이를 일으켜 그를 그의 어머니에게 되돌려줬다. 결국 “함께 고통을 나누는 능력과 가엾은 마음과 함께, 그리고 온유함과 부드러운 애정의 두 가지 특징과 함께,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지니신 분. 이런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가까이 다가오셔서, 젊은이와 과부 어머니에게 행하신 행동을, 우리 모두에게도 행하신다.

예수님은 배워야 할 목자의 상징

교황은 “이런 모습이 바로 목자의 상징”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런 모습을 우리 사목자들이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권력층들이나 이데올로기 계층들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 이런 것들은 영혼을 불행하게 하고 우리에게 아무런 선도 베풀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목자는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권위와 힘, 바로 그 겸손, 온유, 가까이 다가가기, 가엾은 마음, 부드러운 애정의 권위와 힘을 지녀야 합니다.”

공격 받는 목자는 고통을 감수하고, 목숨을 바치며 기도합니다

교황은 “예수님에게 있어 사태가 좋지 않게 진행될 때 그분은 과연 무엇을 하셨는지”를 자문했다.

“바로 그 성금요일, 사람들이 그분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쳤을 때, 그분은 침묵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돈과 힘을 가진 권력층에 의해 속은 사람들에 대해 가엾은 마음이 드셨기 때문입니다. (...) 그분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기도하셨습니다. 어려운 순간에, 악마가 풀려난 순간에, 목자가 공격을 받고,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수많은 권력을 통해 거대한 고발자(사탄)에 의해 공격을 받은 그곳에서, 목자는 고통을 감수하고, 목숨을 바치며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그분으로 하여금 강함으로 십자가를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십자가에서 오른쪽에 있던 죄수에게 다가가셨고 그의 영혼을 낫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의 사목자들을 위한 (예수님과) 동일한 권위의 은총

끝으로 교황은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에 있는지” 보기 위해서 오늘 루카 복음 7장을 다시 읽어보자고 초대했다. “그리고 우리 모든 사목자들이 이러한 권위를 가질 수 있도록, 성령의 은총인 권위를 갖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18 9월 2018,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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