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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Vatican Media)

“순교자들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도록 우리를 내어 맡깁시다”

12월 11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위로를 강조하면서 리비아 해변에서 목숨을 잃은 콥트교도들과 같은 오늘날의 순교자들에 대해 언급했다. 교황은 위로가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상태여야 한다고 독려하면서, 그러나 오늘날 세상은 ‘애틋한 사랑’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Debora Donnini / 번역 이창욱

“아이가 울 때 어머니가 쓰다듬으며 달래듯 주님께서는 ‘애틋한 사랑(La tenerezza)’으로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12월 11일 화요일 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강론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의 위로에) 저항하지 말고 하느님에게서 (우리가) 위로를 받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자고 권고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위로에 저항하지 마십시오

사실 이사야 예언서에서 발췌한 제1독서(이사 40,1-11)는 위로에 대한 초대다. “죗값이 치러졌기”(이사 40,2) 때문에,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이사 40,1). 따라서 이는 “구원의 위로”에 대한 내용이며,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뜻하는 것이라고 교황은 강조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신 것은 바로 위로하시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위험을 무릅쓰기를 원치 않고”,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문제들 안에 있는 것이 더 안전한 것처럼 (느끼면서)” (하느님의) “위로에 저항합니다.” 주님께서는 온 힘을 다해 일하시지만, “우리는 적막함, 문제들, 패배감에 모든 것을 걸기 때문에” (우리의) 저항을 받으신다. 부활절 아침에 제자들에게서도 이런 점을 목격하게 된다.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요한 20,25 참조).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또 다른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애틋한 사랑, 오늘의 세상은 사전에서 이 말을 삭제했습니다

교황은 “우리는 이러한 ‘영적 비관주의(pessimismo spirituale)’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알현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모들이 어린 자녀들을 축복할 수 있도록 가까이 데려올 때 “몇몇 어린이들은 저를 보고서는 비명을 지르고 울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저의) 흰옷을 보고 예방주사를 놓아주었던 의사나 간호사로 여기고 ‘안돼, 다른 주사는 싫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약간은 이와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이사 40,1).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위로하십니까? 애틋한 사랑(la tenerezza)을 통해서입니다. 불운의 예언자들은 알지 못했던 단어, 다시 말해 애틋한 사랑입니다. 이는 우리를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 모든 악습에 의해 지워진 단어입니다. 감동받으려 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악습, 성직자들의 악습입니다. (...) 애틋한 사랑은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이사 40,10). 이사야 예언서는 다음과 같이 끝맺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이사 40,11).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위로하시는 방식입니다. 애틋한 사랑입니다. 애틋한 사랑은 위로를 줍니다. 어린 아이가 울 때, 엄마들은 아이를 쓰다듬고 애틋한 사랑으로 (아이를) 안정시킵니다. 사실 (이는) 오늘날 세상의 사전에서 삭제된 단어입니다. 애틋한 사랑.”

순교의 순간에 얻는 위로

주님께서는 당신에게서 위로를 받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라고 초대하신다. 이러한 태도는 성탄을 준비하는 데에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된다. 이어 교황은 이날 본기도에서 우리가 진심 어린 즐거움의 은총, 이러한 단순하지만 진정한 기쁨의 은총을 청했다고 강조했다.

“그뿐 아니라, 저는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상태는 위로여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순교자들은 성가를 부르며 콜로세움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늘날의 순교자들, 저는 리비아의 해변에서 참수된 용감한 콥트 노동자들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예수님, 예수님!’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들) 안에, 위로가 있습니다. 순교의 순간에도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상태는 위로여야 합니다. 이것은 낙관주의 같은 게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낙관주의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위로는, 긍정적인 토대입니다. (...) 우리는 긍정적이고 빛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긍정성, 그리스도인이 내뿜는 빛이 바로 위로입니다.”

주님께서는 애틋한 사랑으로 문을 두드리십니다. 평화에 저항하지 맙시다

고통을 받는 순간에는 위로를 느끼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잃을 수 없다. (그것은) 어려운 순간에도 모든 이에게 평화를 주시는 “주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황의 초대는 이날 복음(마태 18,12-14)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실천하면서, 성탄을 준비하는 이번 주간 동안 두려움을 갖지 말고 그분에게서 위로를 받도록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수 있기를 청하자는 초대다.

“저 또한 적어도 평화를 가지고, 곧 마음의 평화, 당신 존재의 평화, 당신의 어루만져주심이 선사하는 평화를 가지고, 성탄을 준비하게 하소서. ‘하지만 저는 많은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그들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을 때 그 양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 중 하나가 길을 잃어버리면 그 사람을 찾아 나서는 목자와 같이, 위로를 해주십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우리 각각에게 행하십니다. ‘나는 평화를 원하지 않고, 나는 평화를 반대하고, 나는 위로에 저항합니다. (...)’ 그러나 그분께서 문 앞에 와 계십니다. 우리가 위로를 받기 위해, 그리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열도록,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감미롭게, 그렇게 행동하십니다. 어루만져 주시며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겁니다.”

11 12월 201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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