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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  (Vatican Media)

환경미화원들 위한 교황의 기도… “오직 하느님 아버지 안에서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7일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부활 제6주일 미사를 봉헌했다. 교황은 집, 병원, 거리에서 청소하며, 드러나지 않는 일이지만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일에 종사하는 이들을 기억했다. 교황은 강론에서 사회에는 전쟁, 대립과 모욕이 일어난다고 강조하면서 이는 (하느님) 아버지가 결핍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번역 이창욱

지향

오늘 우리는 병원과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통을 비우며, 집집마다 쓰레기를 수거하는 많은 분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는 아무도 보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도우시길 빕니다.

강론

제자들에게 남기는 고별사(요한 14,15-21 참조)에서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겠다”(18절)는 약속과 더불어 그들에게 고요함과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고아 신세(orfanezza)의 아픔이나 고독감을 느끼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오늘날 세상에는 고아 신세라는 큰 감정이 존재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가 없습니다. 아울러 인류의 역사 안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됩니다. 아버지가 없을 때 무엇인가 결핍되며, 항상 아버지를 만나고 되찾으려는 바람이 생깁니다. 고대의 신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이디푸스 신화, 텔레마코스(그리스 신화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들)의 신화나 다른 신화들을 생각해봅시다. 언제나 결핍된 아버지를 찾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아버지가 결핍된 사회 안에서 살고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소속감과 형제애에 영향을 끼치는 고아 신세라는 감각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요한 14,16). 예수님은 “나는 지금 가지만 아버지께 이르는 통로를 가르치실 다른 분을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그분은 너희에게 아버지께 다가가는 통로를 기억하게 해주실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4,26 참조). 성령은 “당신의 고객으로 삼으시려고” (우리에게) 오시는 게 아니라, 아버지께 다가가는 통로를 알려주시기 위해, 아버지께 다가가는 통로를 기억하게 해주시려고 오십니다. 그 통로는 예수님이 여셨고,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입니다. 오직 성자만의 영성이란 없고, 오직 성령만의 영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중심은 성부입니다. 성자는 성부에 의해 파견되셨고 성부에게로 돌아가십니다. 성령은 성부께 다가가는 통로를 가르치시고 기억하게 해주시기 위해 성부께서 파견하신 분입니다.

고아가 아니라는 자녀의 깨달음을 통해서라야 우리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평화를 이루시는 아버지가 없으면, 크든 작든 언제나 전쟁이 일어나고, 고아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까닭에 베드로 사도는 첫 번째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그들이 왜 그리스도인인지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당부합니다(1베드 3,15-18 참조). “그러나 바른 양심을 가지고 온유하고 공손하게 대답하십시오”(16절). 다시 말해 성령이 주시는 온유함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의 자녀들이 갖춰야 할 이러한 온유함, 이러한 온순함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모욕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울러 고아 신세라고 느끼는 감정의 결과 중 하나는 모욕과 전쟁입니다. 아버지가 없으면 형제가 없고, 형제애를 잃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온순함, 공손함, 온유함은 소속감의 태도입니다. 한 아버지를 확실히 모시고 있는 가족에 대한 소속감 말입니다.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실 것이다”(요한 14,16). 보호자 성령은 아버지께 이르는 통로를 우리에게 기억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 모든 것의 근원이요 모든 이들의 일치이시며,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려고 당신 아드님을 보내셨기에, 모든 이들의 구원이 되신 아버지를 우리가 모시고 있음을 우리에게 기억하게 해주신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성부는) 그분, 곧 성부에게 다가가는 통로를 우리에게 기억하게 해주시려고 성령을 파견하십니다. 이 부성(paternità, 父性)에서 이러한 온유함, 공손함, 평화의 형제적 태도가 나옵니다.

언제나, 항상, 성부에게 다가가는 통로를 우리에게 기억하게 해주시고, 우리가 한 아버지를 모시고 있음을 기억하게 해주시도록 성령께 청합시다. 아울러 고아 신세라는 큰 고독감을 느끼는 이 문명에, 모든 생명에게 의미를 부여하시고 모든 사람이 한 가족이 되게 하시는 성부를, 아버지를 되찾는 은총을 주시길 빕니다.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 진실로 성체 안에 계심을 믿나이다.

세상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사랑하오며,

주님의 성체를 영하기를 간절히 원하나이다.

지금 주님의 성체를 영할 수 없다면 적어도 영적으로라도 제 안에 오소서.

주님, 성체를 모실 때처럼

주님과 온전히 일치하려 하오니

영원히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게 하소서.

아멘.

[성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의 영적 영성체(신령성체) 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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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5월 2020,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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