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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과 영국 성공회 저스틴 웰비 켄터베리 대주교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과 영국 성공회 저스틴 웰비 켄터베리 대주교 (2019년)  (Vatican Media)

성공회 켄터베리 대주교 “어려운 시기를 겪는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 기도합니다”

「바티칸 뉴스」는 영국 성공회 수장 저스틴 웰비 켄터베리 대주교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저스틴 웰비 대주교는 코로나19 대유행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도전, 교회일치운동에 있어 회칙 「Fratelli tutti」가 지니는 중요성, 그리고 남수단의 평화 건설에 대한 희망 등을 언급했다.

Alessandro Gisotti / 번역 이재협 신부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인 2019년 11월 13일, 저스틴 웰비(Justin Welby) 켄터베리 대주교는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2개월이 지난 지금, 세상은 완전히 다른 상황을 맞이했다. 코로나19의 무서운 확산은 당시 두 사람이 나눴던 주제들, 곧 연대와 환경, 종교 자유와 평화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을 가중시켰다. 이와 관련해 최근 로마의 주교(교황)와 세계 성공회의 수장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교황과 켄터베리 대주교가 만난지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그리고 교황이 새 회칙 「Fratelli tutti」를 반포한지 약 1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웰비 대주교는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와 「바티칸 뉴스」와 일문일답을 나눴다. 웰비 대주교는 최근 인류가 직면한 주제들에 대한 성찰을 나누고, 깊은 고통의 시기에 그리스도교인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바에 대해 말했다.

이하 저스틴 웰비 켄터베리 대주교와의 일문일답:

존경하는 저스틴 웰비 대주교님, 대주교님이 바티칸에서 교황님과 만나신지 약 1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지난 1년 사이 세상은 코로나19 대확산으로 근본적인 변화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두려움과 고통을 겪는 이 시기, 희망을 증진하기 위해 웰비 대주교님이나 프란치스코 교황님 같은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희망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같으신’(히브 13,8 참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변할 수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자애는 다함이 없고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애가 3,22 참조). 교회를 지도하는 모든 이의 임무는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게 잘 돌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약하고 갈라진 세상, 연약하고 상처받고 죄 지은 사람들로 가득한 이 세상에 희망을 전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그분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희망의 사람이 되고,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희망을 드러내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의 메시지는 ‘지금 여기’를 넘어, 도래할 것, 영원한 것,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을 주의 깊게 바라봅니다. 인간의 생명은 연약합니다. 만연한 질병과 죽음은 이 사실을 직설적이고 비극적으로 깨닫게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생명은, 진정으로 영원합니다. 하느님은 또한 지상의 삶이 하늘나라의 삶을 잘 반영하면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범을 따르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우리는 이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간직하고,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웃, 가난한 이, 소외된 이를 중심에 놓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살아내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시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새 회칙 「Fratelli tutti」를 반포하셨습니다. 형제애와 사회적 우애에 초점을 맞춘 교황님의 새 회칙에서 어떤 부분이 대주교님께 인상깊으셨나요?

“「Fratelli tutti」는 아주 강렬하고 심오한 문헌입니다. 새 회칙은 더 나은 미래의 세상을 위해 용기를 주는 체계적인 비전을 야심차게 제시합니다. 회칙을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주제는 그리스도론입니다. 교황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십니다. 회칙은 동시에 인류의 광대함과 복합성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정교회 수장, 이슬람교의 대이맘 등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에 대한 언급, 마하트마 간디에게서 받은 영감,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박사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성공회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에 대한 언급 등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비전이 가톨릭교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바로 교황님의 비전이 야심차면서도 설득력을 지니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교황님은 진심을 담아 개별 인간 생명의 모든 측면을 다루십니다. 개인적 삶의 측면부터 국제적 삶에 이르기까지, 개별 가정의 문제부터 무역, 산업, 정치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인간 삶의 측면 말입니다. 회칙은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 두 가지 모두가 지닌 위험성을 경계합니다. 정치와 철학의 ‘스퀼라와 카뤼브디스(역주: 그리스 신화의 괴물. ‘진퇴양난’의 상황을 이르는 표현)’처럼 말이죠.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 이 두 가지 경향의 극단은 독재와 무정부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저와도 친분이 있는 대이맘 같은 분들과의 만남에서 교황님은 종교 간 갈등 혹은 문화적 갈등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문명의 충돌은 우주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삶, 죽음과 부활, 승천의 현실을 무시하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성자를 통한 성부의 창조적 사업이 하느님 나라를 가시적으로 실현하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가능하게 하는 변화입니다.”

회칙 「Fratelli tutti」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도’로 끝맺습니다. 교회일치운동은 최근 유럽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테러행위와 전쟁으로 흔들리고 분열된 세계에 더 나은 미래 건설을 위해 무슨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자신들의 교회가 유일한 교회라고 자처하는 생각입니다. 혹은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가끔 성공회에서도 나타나지만, 다른 종교에서도 나타납니다. 역사적 사건이나 교리적 문제로 인해 갈라진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람들과 순례의 여정에 있는 다른 이들,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하느님께 사랑과 섬김을 받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노래하는 영국의 찬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동과 서도

남과 북도 있을 리 없다

오직 하나

온 세상 넘쳐흐르는 위대한 사랑의 형제애가 있을 뿐

 

진실한 마음을 지닌 이들은

어디에 있더라도 주님 안에서 높은 친교를 이룰 터이니

그리스도의 섬김은

인류를 한데 묶는 금실이로다

 

그러므로 신앙의 자녀들이여

그대의 민족이 어디에 속하든지 서로 손을 잡아라

그분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필요로 하는 이는

누구나 나의 가족이니

[ 존 옥센함(John Oxenham)의 찬가, 1908년 ]

 

“인류는 장벽을 건설하고 영토를 특정 지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교회나 정치에서도 마찬가집니다. 경계는 차별을 암시하고, 가끔 거짓된 모습으로 이를 강요합니다. 교회일치운동이 지금껏 노력해왔고 꾸준히 이어갈 사명은 이 경계를 서서히 허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따금 루터교세계연맹(LWF)과 가톨릭교회가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확정한 바와 같은 매우 의미 있는 발걸음을 목격합니다. 이러한 ‘합동 선언문’에 현재는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가 동참했습니다. 점점 닫힌 장벽이 열리고,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의 차원에서 교회일치운동의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선익 가운데 하나는 다른 이름의 그리스도교 사이에서 신뢰와 우정의 관계가 건설됐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벽은 우정(혹은 “형제애”)으로 허물어졌습니다. 저는 매일 교회일치적 공동체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램버스궁에 머물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슈맹 뇌프 공동체(Chemin Neuf Community, 편집주: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기초한 삶을 살아가는 에큐메니컬 생활 공동체)’와 함께 지내고 있거든요. 그동안 이곳 공동체에는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가톨릭 신자 한 분을 영적 지도자로 모시고 있고, 그분과 최근 회칙 「Fratelli tutti」의 프랑스어판 서문을 함께 작업했습니다. 이 모든 관계에 이방인은 없습니다. 순례의 동반자, 친구, 그리고 형제자매가 있을 뿐입니다.”

대주교님은 최근 영국 국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코로나19 대유행이 우리에게 남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응답하셨습니다. 그것은 ‘침착하기, 용기내기, 가엾은 마음 갖기’였는데요, 특별히 이 세 가지 측면을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두려움을 일으키는 보이지 않는 원수가 있습니다. 혼란은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킵니다. 하지만 침착함은, 우리가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도록 합니다. 히브리어 ‘샬롬(평화)’과 마태오 복음 8장 26절에서 예수님이 풍랑을 잠재우신 뒤 찾아온 ‘고요’를 생각해 보세요. 마음이 침착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꾸중을 들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봉쇄 기간 중에 교회가 문을 닫았다고 보도하는 많은 기사들이 있었습니다. 교회 건물은 문을 닫고, 교회 성사생활은 평소와 같지 못했을 수 있지만, 교회는 열려 있었습니다. 각각 다른 이름을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이웃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라는 현실 앞에서 우리 모두는 분명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올 한해 우리가 타인을 돌보고, 모두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라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수차례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럽에서, 아니 유럽뿐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영토 점령을 위한 포퓰리즘과 민족주의를 목격합니다. 공포가 길러낸 이러한 이기주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응답은 무엇일까요?

“저 또한 우리가 같은 배를 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혹은 비록 다른 배를 타고 있을지라도 같은 바다에서 같은 폭풍우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하죠. 따라서 우리는 서로 힘과 용기를 북돋으면서 서로를 돌보기 위해 힘쓰고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공포는 장벽을 건설하게 만듭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많아지고, 정치 지도자에 의해 이 공포가 이용될수록, 교회는 다른 무엇을 드러내기 위한 소명을 받았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환대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회칙 전반에 걸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양극단을 경계하고 상호의존성에 역점을 두면서 개인과 사회의 조화를 강조하십니다. 17세기 시인이자 성공회 사제인 존 던(John Donne)은 ‘어떤 사람도 그 자신이 전체인 섬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타인과 연결돼 있습니다. 누군가가 아파하면, 다른 사람도 아파합니다. 400년 전에도 그랬고,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드러나는 이 진리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교황님은 회칙 전반에 걸쳐 말씀하십니다.”

“회칙 「Fratelli tutti」의 한 장(제2장)은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비유를 집약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조건 없는 사랑으로 민족주의와 선입견을 극복했습니다. 이 사랑과 돌봄의 관계에는 히브리인, 사마리아인이라는 구분이 없으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 두 사람만 존재합니다. 오늘날 이기주의에 대한 응답은 사랑입니다. 이것이 교황님의 회칙 전반을 관통하고 있죠.”

대주교님은 한 인터뷰에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를 위해 매일 기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산타 마르타의 집 미사에서 이러한 시기에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정치인을 위해 기도하자고 당부하신 바 있습니다. 대주교님은 오늘날 점점 세속화돼 가는 세상 안에서 기도, 혹은 하느님과의 관계라는 것이 어떤 자리를 점유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정치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영국 총리와 다른 정치인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시 인터뷰 후에 몇몇 소셜미디어 기사의 제목에 따르면, 제가 총리를 위해 기도하는 것을 ‘시인했다’고 전하더군요. 사실 저는 그 사실을 마치 비밀스런 잘못을 고백하듯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저의 의무이고 총리와 다른 정치인을 위해 기꺼이,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 생명의 수액입니다. 기도는 아름답고, 내밀하며, 경이롭습니다. 기도는 창조와 재창조에의 참여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가 변화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만약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우리가 더욱 예수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우리의 요구사항이 담긴 쪽지를 보내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기를 청하면서 말이죠.”

평화, 생태, 사회 정의에 관련된 문제는 대주교님과 프란치스코 교황님 두 분이 다른 무엇보다도 힘을 쏟는 주제들입니다. 대주교님은 이미 교황님과 여러 번 만남의 자리를 함께하셨고, 2019년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수단 정치인들과의 만남 이후 함께 수단을 방문하려는 의사를 표하기도 하셨습니다. 대주교님은 교황님과의 관계에서 미래를 위한 어떤 희망을 가지고 계신가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저의 형제적 우정을 마음 깊이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교황님과 저는 비슷한 시기에 각각 교회 지도자의 직무를 시작했고, 많은 공통 관심사와 걱정을 나눴습니다. 저희 둘 모두에게 평화와 화해는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교황님과 제가 함께 남수단의 여러 정치인과 만났던 경험은 제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함께 남수단을 방문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구체적 희망으로 남아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가능하지 않았지만, 남수단과 국제적 차원의 여러 교회들, 가톨릭, 성공회, 장로교는 남수단의 지속적이고 정의로운 미래와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위기를 극복하고) 언젠가 다시 남수단은 방문할 수 있게 되어 그곳의 진전된 평화와 사회적 성장을 축하하고 격려할 수 있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교황님과의 만남 마지막에 교황님은 제게 ‘세 가지 P’, 곧, ‘기도, 평화, 가난(Preghiera, Pace, Povertà)’을 기억해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 P가 우리의 우정을 지속적으로 일치시키길 희망합니다. 서로를 위한 기도와 세상을 위한 기도, 평화와 화해, 그리고 가난한 이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길을 모색하기 위한 우리의 사명 안에서, 우리의 우정이 지속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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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1월 2020, 22:06